2011년 4월호

황주리 화가

가보지 않은 세상의 모든 길 걷고 싶다

  • 입력2011-03-25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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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주리 화가

    황주리<br>●1957년 서울 출생<br>●이화여대 서양화과, 뉴욕대대학원 졸업<br>●석남미술상, 선미술상<br>●산문집 ‘날씨가 너무 좋아요’, 개인전 ‘꽃보다 사람’(2010년) 등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인간’을 읽은 기억이 난다. 미친 독재자들의 싸움으로 첨단 핵무기 한 방에 인류가 멸망하고 마는 이야기였다. 단 두명의 남자와 여자가 살아남아, 외계의 우주인들에 의해 유리관에 갇혀 애완 인간이 되는, 절망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두뇌가 덜 발달한 동물을 우리가 잡아먹고 학대하고 실험하듯이, 먼 외계에 사는 지능이 더 발달한 외계 생물체에 의해 인간 또한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상상만 해도 섬뜩하다.

    사람들은 동물이 아니라 지능이 떨어지는 같은 인간에 대해서도 똑같은 잔인함을 보여준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생활보호연금을 빼돌리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늘 잔인함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휴머니즘은 인간을 규정하는 본성이 아니라 이 냉정하고 메마른 세상에 단비처럼 뿌려지는 드물고 귀한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9·11테러가 일어났던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바로 옆 아파트에서 10년을 살았던 내게는 지구 몰락의 이미지가 가끔 악몽처럼 떠오른다. 어디인들 안전한 곳이 있으랴? 꼭 인간들의 전쟁이 아니더라도 기상이변과 홍수와 가뭄과 지진으로 지구는 늘 위험하다.

    게다가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풍조 탓에 이대로 간다면 몇 백 년 뒤에는 한국 땅에 아무도 살지 않을 거라는 신문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출산율이 높아지면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란 내게는 정말 신기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자식이 안정된 노후 생활의 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래도 자식은 다음 세상을 위해 우리가 심는 한 그루 사과나무가 아닐 수 없다. 아무도 아이를 낳지 않아 노인들만 가득한 세상을 상상해본다. 감동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자신밖에 모르는 늙음의 속성을 혐오하면서 우리 자신도 그렇게 늙어간다.

    진실로 감동하는 순간은 우리 생에 많이 찾아오지 않는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진정한 감동의 순간은 첫 아기를 낳을 때가 아닐까? 아마 둘째 아기도 셋째 아기도 그럴 것이다. 나처럼 출산의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에게도 창조의 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순간이다.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할 때, 게다가 그 그림이 내 마음에 꼭 들 때, 그때 나는 감동한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내게 잠깐 그 손을 빌려주신 것만 같은 고마움에 사로잡힌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언제나 겁이 많고 어벙하기 짝이 없던 내가 선생님 손을 꼭 잡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풍경이 요즘 문득 꿈속처럼 떠오른다.

    학교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이였던 내게 네모반듯한 학교 운동장은 너무 삭막하고 외로웠다. 소풍날 비가 오면 정상수업을 한다는 것을 다른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왜 나만 몰랐을까? 아무도 나오지 않은 약속 장소로 갔다가 늦은 시간에 교실에 도착한 나를 보고 아이들은 막 웃었다.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다른 건 못해도 괜찮단다.’ 선생님은 아마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의미 있는 칭찬의 말 한마디,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환하게 밝혀주는지 당신은 아는가?

    그렇게 나는 고마운 위로의 말들을 거름 삼아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가끔 내가 죽으면 내가 그린 이 자식 같은 그림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불면의 밤을 맞기도 한다.

    언젠가는 그 누구에게나 이 지구에 머무르는 마지막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릴 때마다, 오늘의 소중함이 공기처럼 물처럼 절실하게 다가온다. 아직은 아깝게 세상을 떠난 지인이 많지않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 자신도 이 세상 마지막 날을 맞을 것이다. 그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을 우리는 늘 잊고 산다. 어느 날 새벽 문득 눈을 떴을 때, 그날이 바로 오늘이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고마울 때가 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나는 매일 아침 전전긍긍한다. 그림을 한 점이라도 더 그려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의 아름다운 새벽 길들을 하염없이 헤매야 할까? 헤매다가 예쁜 찻집에 머물러 커피도 한잔 마시면서?

    나는 남은 생애 안 가본 세상의 모든 길을 걸어보고 싶다. 언젠가 가본 길들도 다시 가보고 싶다. 여행처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없다. 여행은 지는 해를 잡으려는 몸짓이고, 그 햇살의 온도를 오래 간직하는 일이다. 여행하는 마음은 사물을 소유하는 일보다 눈길로 만져본 풍경의 소중함을 깨닫는 마음이다. 갈 수 없는 북한 땅의 구석구석도 언젠가 다 밟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여행은 내 삶의 버킷 리스트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내게 아주 욕심 많은 삶의 버킷 리스트가 하나 있다. 살아 있는 날 동안 그리고 싶은 그림을 실컷 그리고 난 뒤, 그 자식 같은 그림들을 영원히 걸어둘 아주 예쁜 미술관 하나 짓고 싶다. 그곳이 서울이라도 좋고, 뉴욕이라도 좋고, 달나라라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후세의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러 꼭 들러 가는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 나의 삶을 담는 바구니 속에는 그림 그리는 일과 여행하는 일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말고, 또 뭐가 담길까? 나이가 들어 혹시 내가 아주 오래 살게 된다면, 나는 세상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아주 착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나이가 들어 늙은 나를 보러온다면, 빳빳한 5만원짜리 지폐가 담긴 세뱃돈 봉투를 마련할 것이다. 우리 할머니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기도, 사진을 찍기도 미안할 만큼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아침과 수없는 대낮과 저녁과 밤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을 행복으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 아무래도 그것이 나의 버킷 리스트 일순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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