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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한나라당 국회의원

왕오천축국전과 직지심경 모셔오기

조윤선 한나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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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미술, 역사, 문학, 음식과 술이 어우러진 여행

남동생이 대학 입시에 떨어졌을 때 나는 사법시험에 떨어졌다. 향토사학자가 무색할 정도로 역사 유적 답사를 좋아하셨던 친정아버지와 절을 찾아 기도를 다니셨던 친정어머니는 그 무렵 자주 함께 절에서 주말을 보내셨다.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위해 절에서 주무셨지만, 애주가인 아버지는 절집 근처에서 민박을 하셨다. 절에 다녀오면 아버지는 늘 절의 역사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함께 민박집 음식이며 술맛 얘기를 하셨다. 몇 년이 지나 그 시절 이야기가 가족들의 ‘안줏거리’가 되었을 때 내가 제안을 하나 했다. 우리 셋이서 우리나라 산사와 그 앞의 민속주에 대한 책을 하나 쓰자고.

한때 산사를 찾아가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손에 들고 저자의 궤적을 따라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김병종의 ‘화첩기행’은 곳곳의 예인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 기행문이다. 복원된 민속주를 찾아다니며 술 담그는 이야기, 술 빚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도 있다. 틈으로 본 우리 건축, 명묵(明默)의 건축, 풍경을 담은 그릇, 정원, 고택 이야기도 각각 책으로 엮여 나왔다. 이런 책들을 길잡이 삼아 아름다운 곳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느끼며 오감을 다 동원한 입체적인 여행을 차근차근 하고 싶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힘 되어 주기

예술의 변방에서 태어난 우리의 예술가들은 그 중심 무대로 나가기 위해 참으로 고단하고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국경이 없는 예술의 세계에서 국내에만 안주했다가는 아무도 그 존재를 기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의 예술가들과 똑같은 재능을 가졌음에도 나설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해 잊힌 예술가가 숱하게 많다. 젊은 미술가들이 해외의 거장과 함께 전시를 하고, 해외 미술관에서 그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젊은 음악가들이 해외의 거장과 한 무대에 서고, 우리 작가가 쓴 시나리오나 만화가 할리우드에서 영화가 되도록 돕고 싶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인맥과 재력이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사실 이런 일은 어느 한 사람이 전부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꺼이 후원해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촉매가 되고 허브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건 나의 버킷 리스트이면서 지금 조금씩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국제음악제(SIMF)의 준비를 맡아 해외의 거장과 국내의 젊은 음악가가 협연할 수 있는 자리를 꾸미고 있다. 문화예술 부문에 기부하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어 굳이 정부의 재정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민간의 두둑한 후원을 늘려나갈 수 있는 메세나법도 다시 준비하고 있다(이 법안은 지난해 세수(稅收) 감소 문제로 폐기돼버렸다). 태동한 지 100년이 되도록 법 하나 없는 만화계를 위해 만화진흥법을 발의하려 한다. 많은 사람이 이 길에 동참하면 좋겠다.

왕오천축국전과 직지심경 모셔오기

오래전 프랑스에서 갖고 있는 우리 유물이 돌아올 뻔한 적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반환을 약속했지만 담당자인 도서관 직원이 끝까지 반대해 오지 못했다. 그 유물을 보는 우리 측 고위인사가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전문가도 대동하지 않고 그 유물을 보통 책장 넘기듯 훌렁훌렁 넘기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규장각 시설을 둘러본 프랑스 담당자는 그 열악한 보존 환경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유물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논리는 먹히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귀한 유물일수록 잘 보전할 수 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갖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애정이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보존 설비는 수준에 오른 것 같은데 사랑을 쏟을 마음의 준비가 아직 덜 되어 있는 탓이다. ‘한국에 있으면 저렇게 사랑받을 것이 여기 있어 뒷전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도록 할 길을 찾자.

이렇듯 긴 호흡의 버킷 리스트를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숙제는 묵직하지만 그 어떤 것에서도 받을 수 없는 충만을 얻을 내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해 낼 수 있는 더 큰 행운을 감히 기대한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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