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하규섭(50)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오래전부터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을 씻기 위한 사회운동을 벌여왔다. 2004년 협회 창립 때부터 회원으로 활동하다 지난해 회장으로 취임한 것. 지난 3월 국회에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하 자살예방법)’이 통과되면서 그의 노력은 1단계 결실을 보았다. 이 법안은 자살예방 기본계획과 시행계획 수립, 자살실태조사 및 정보관리체계 구축, 자살예방센터 설치, 자살 위험자 지원 및 정신건강증진 대책 마련, 자살예방 상담과 교육, 자살유해정보 예방체계 구축, 자살자 및 자살시도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법 제정 후 정부가 시범운영을 시작한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센터장을 맡아 자살예방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마련 등을 위한 또 다른 활동을 시작한 하 회장은 감개무량한 듯 보였다. 그는 “법 제정을 위해 함께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자살 급증
▼ 자살예방법 제정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신 걸로 압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네. 17대 국회 때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자살예방 관련 법안을 제출했지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된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임두성·강창일·윤석용 의원 세 분이 각각 대표로 나서 법안을 발의했지만 심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잘 될까 마음 졸였죠. 그런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 신상진 의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힘을 보태면서 일사천리로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기쁘고 감사해요.”
▼ 애초에 법안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이 법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자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몰라요. 신 의원만 해도 지난해 9월 우리 협회가 ‘세계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 초대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날 우리 회원들의 설명을 듣고 ‘자살예방법 제정이 이렇게 시급한 현안인지 몰랐다. 국회에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거지요. 그동안 자살예방이 왜 중요한지 열심히 알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절감합니다.”
하 회장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라는 이슈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정부가 나서서 자살 ‘예방’ 정책을 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994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10명이 채 안 되는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자살자 수보다 적었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자살률이 서서히 높아지더니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급상승했다. 자살이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며, 사회 흐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무렵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자살률이 올라갔지만 대부분 외환위기가 지난 뒤 예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만 잠시 떨어지는 듯 보이던 자살률이 2000년대 이후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2000년대 중반에는 자살자 수가 인구 10만명당 20명 수준이 됐다.
“이때 연구자들이 심각성을 느끼고 자살예방협회를 만든 거예요. 2004년부터지요. 정부도 자살예방 5개년계획을 수립했습니다. 현재 2차 5개년계획이 진행 중이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자살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자살사망률 증가 속도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따라올 나라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