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쇼핑호스트인 유난희씨는 GS홈쇼핑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 ‘리얼스토리 with 유난희’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이 쇼핑호스트인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홈쇼핑 방송을 보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문구가 ‘매진 임박’ ‘다시 오지 않는 기회’ ‘오늘 단 한 번’ ‘이 구성, 이 가격 마지막’이다. 홈쇼핑 방송을 보면서 물건을 사는 사람도, 그냥 구경만 하는 사람도 가장 궁금해한다. 진짜 매진 임박이냐고, 정말 매진되느냐고.
답을 드리면 사실이다. 모두 다 사실이다. ‘매진 임박’도 사실이고 ‘매진’도 사실이며 ‘다시 오지 않는 기회’도 ‘이 구성, 이 가격 마지막’도 모두 사실이다. 모두 매진돼 30분에 1만개의 물건이 팔리기도 한다. 상상하지 못했던 판매가 이루어지고 매번 매출 신기록이 나온다. 지금 홈쇼핑 방송에서 쇼핑호스트들이 말하는 매진 임박이라는 멘트는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게 아니라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멘트다. 불과 16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희소성에 대한 소비자 욕구 자극
1995년 8월1일 한국에서 처음 홈쇼핑 텔레비전(HSTV-현 CJ오쇼핑) 방송이 시작되던 날, 나는 그 첫날 방송을 진행했다. 그때 방송에서 소개한 상품은 목재로 조각해 만든 벽걸이 뻐꾸기 시계였다.
“디자인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한 마리의 새가 시간 맞춰 아름다운 소리로 시간을 알려줍니다. 집에 뻐꾸기 새 한 마리 들여놓으세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홈쇼핑 방송 초창기인 1995년에는 매진 임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가격을 저렴하게 판매해서 집 현관까지 가져다주니 사람들은 당연히 좋아하고 살 거라고 믿었다. 억지스럽고 과장된 멘트보다 상품의 좋은 점을 설명하고 지금 왜 구입해야 하는지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판매는 저조했다. 매진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은 1분에 3000만원의 매출도 나오지만 그때는 하루 종일 판매해도 500만원이 될까말까 했다. 홈쇼핑TV를 보는 사람이 없었으니 500만원의 매출도 신기할 뿐이었다.
케이블TV가 낯설었던 그 시절 물건을 직접 만져보지 않고 TV를 통해 산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던 때였다. TV 화면만 보고 물건을 사라고 하니 제대로 된 바보상자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게다가 물건을 받지도 않았는데 돈부터 입금하란다. 물건을 먼저 받고 돈은 나중에 주는 외상이라는 건 봐왔어도 돈을 먼저 내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러니 TV에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몇 개 없는 물건이니 사라고 재촉하는 쇼핑호스트들은 사기꾼처럼 보였을 것이다. 홈쇼핑TV는 돈만 받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거라고들 생각했다.
홈쇼핑 초창기이던 어느 날 내가 방송에서 판매한 상품을 주문한 어느 시청자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나를 알아본 아주머니는 대뜸 어제 TV에서 주문하고 돈 입금했는데 얼굴 본 김에 지금 물건을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정말 배송해주는 거 맞느냐며 내가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인적사항도 적어갔다. 혹시 돈은 받아놓고 물건 안 보내줄까봐….
지금은 하루 이틀 만에 배송이 이뤄지지만 택배 자체도 생소했던 그 시절엔 상품배송에 보통 1주일이 넘게 걸렸다. 그러니 돈 입금해놓고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물건이 집으로 배송되기 전까지 1주일 동안 시청자들은 혹시 돈 떼였을까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소비자의 불안감과 의심 그리고 홈쇼핑에 대한 인식 부재로 점철된 홈쇼핑 방송은 아무리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해도 매출은 바닥을 맴돌 뿐이었다.
그런 홈쇼핑 매출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쇼핑호스트에게 주어졌다. 쇼핑호스트는 어떻게 해서든 판매액을 올려야 했다. 판매액이 저조한 쇼핑호스트는 퇴출되기 때문이다. 퇴출당하지 않으려면 매출을 올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당시 공중파 방송국에서 일하던 어느 선배는 TV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나를 보고 참으로 특이한 방송을 한다며 방송계의 외인구단이라고 불렀다. 외인구단 단원으로서 나는 A급 타자가 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했다. 어떻게 해야 상품이 팔릴까? 좋은 상품을 있는 그대로만 보여주고 판매를 독촉하는 것으로는 의심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역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