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금서들.
때때로 책들은 위험하다. 특히 부자와 야만의 권력 집단에는 치명적이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과 권력의 힘을 빌려 성가시고 ‘몹쓸’ 책들을 검열하고 숨통을 끊어놓는다. 소위 ‘금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정금(正金)과 같은 지식이나 사상으로부터 사람을 차단시킴으로써 ‘이성을 무지와 불합리라는 잡초 더미’(니콜라스 J. 캐롤리드스, 마거릿 볼드, 돈 B. 소바, ‘100권의 금서’)에 묶어놓는다. 그래야만 제가 가진 돈과 권력의 안녕이 담보되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책들은 자주 불태워졌다.
“인화성 강한 물질로 만들어진 책은 불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책들의 화형식이 있기 전부터 불태워진 장서들이 있었고, 우연이든 아니든 간에 그들이 출판한 책들과 함께 화형당한 출판업자와 인쇄인도 있었다.”(브뤼노 블라셀, ‘책’)
그렇다. 책이 자주 불태워진 것은 그것이 불에 타기 좋은 종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지고, 종이 위에 세상을 혁신시킬 만큼 위험한 지식과 사상이 적혀 있는 까닭이다.
금서는 권력자들이 이념과 사상을 독점하고 통제하며 생겨난다. 권력자들은 국가의 안위를 위협한다고, 혹은 사회의 미풍양속을 거스른다고 낙인을 찍어 금서를 만든다. 금서란 ‘어느 곳에서나 있으면서도, 아무 데도 없는’ 책이다. 금서는 사상 통제, 사회 통제의 한 방법적 장치요 기술이다. 금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어떤 책이 금서가 되는 것은 대략 다음 네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많은 책이 정치적 이유에서 금서가 됐다. 이른바 정치적 검열이다. 독일의 나치 정권이 그랬고, 소련의 스탈린 공산정권이 그랬고,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그랬다. 그들은 권력의 안위에 위험이 될 만한 사상이나 정보, 생각과 의견이 널리 퍼지는 걸 막기 위해 책들을 검열하고 책 만드는 사람을 억누른다. 그 뒤를 잇는 게 종교적 검열이다. 이단이라고 불리는 것들, 소수자들이 믿고 따르는 종교 경전들이 금서가 됐다. 그 다음은 ‘외설’과 ‘음란물’로 규정된 책들이다.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네게 거짓말을 해봐’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끝으로 사회의 풍속과 통념에 반하는 책들이 검열을 당하고 금서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 ‘표현, 인종 문제, 약물 사용, 사회 계층, 성 정체성 등 독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여긴 여러 가지 사회적 견해 차이 때문에 검열’(니콜라스 J. 캐롤리드스, 마거릿 볼드, 돈 B. 소바, 앞의 책)당한다.
있지만 없는 책 ‘금서’
금서는 금지의 규범과 모럴, 그리고 금서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에 대한 저항의 역사도 함께 만든다. 책들은 금지되고 불태워졌지만 그 소동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남는다. 금서들은 권력의 음모를 넘어서서 살아남고, 어떤 책들은 불멸의 고전으로 추앙받는다. 놀라지 마시라. ‘성서’와 ‘코란’도 한때는 금서였다. ‘성서’는 중세의 영국과 스페인에서 금지되고, 20세기에는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금지됐다. 1926년 소련 정부는 ‘성서’를 포함한 일체의 종교서적을 도서관에서 치우도록 했다. 중국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친 문화대혁명의 시기에 ‘성서’를 불태우고 교회의 문을 닫도록 명령했다. 1215년 가톨릭은 ‘코란’을 금지하고 이슬람교도를 탄압하는 법을 선포했다. 1995년 말레이시아 정부는 ‘코란’을 금서로 정했다. 20세기의 소련과 중국에서도 ‘코란’을 연구하고 읽는 것이 금지됐다. 지금은 널리 읽히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도, 조지 오웰의 ‘1984’도, 몽테뉴의 ‘수상록’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금서였다. 금서는 역설적으로 그 사회의 정치사상의 자유의 수위와 함께 그 지형도를 드러낸다. 나쁜 권력일수록 금서를 양산한다. 그러니까 금서목록이 길면 길수록 그 시대는 사상의 자유가 그만큼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