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의 운명은 무엇일까. 그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애증(愛憎)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분은 떠났고 참여정부는 과거다. 그분도 참여정부도 이제 하나의 역사다. 그냥 ‘있는 그대로’ 성공과 좌절의 타산지석이 되면 좋겠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평가 받고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분도 그걸 원하실 것이다.”
5월21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김제동 토크콘서트’에 출연한 자리에서도 그는 ‘운명론’을 피력한다. ‘운명이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는 김제동씨의 말에 “생각해보면 제 삶의 길목에서 노 대통령을 만났고 그분을 만난 것이 결정적인 변곡점이 되어 이후의 삶을 이끌어왔다. 변호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는데 청와대도 가게 됐고 결국 지금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하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문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 곁에 가장 오랫동안 있었던 측근일 것이다. 청와대 민정·시민사회수석비서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을 쭉 지켜봐왔기에 노무현 시대의 빛과 빚을 함께 이어받는 일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인지 모른다.
유시민과 ‘노무현 계승’ 경쟁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을 ‘후계자’로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꼽혀왔다. 유 대표는 “참여정부의 자산은 국가와 전체 국민의 것이다. 우리는 참여정부의 부채만을 승계하겠다”(3월19일 당 대표 수락연설)고 말했다. 자신이 ‘친노’라는 점을 밝히는 동시에 노무현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문 이사장이 노무현의 계승을 놓고 유 대표와 경쟁을 벌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물결을 타고 ‘문재인 대선출마론’이 친노 세력을 중심으로 야권에서 번지고 있다.
문재인 대선출마론은 유 대표의 침체와 맞물려 나왔다. 유 대표는 4·27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야권후보 단일화를 자기 방식대로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자당 소속 야권단일후보가 본선에서 패배한 뒤 위축되는 모양새다. 그 사이에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 이사장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리얼미터’가 6월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문 이사장은 대선주자 지지율 6.6%를 기록하며 2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0.7%로 1위를 유지했고, 2위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2.6%를 기록했다. 유시민 대표가 9.3%로 3위를 차지했지만 문 이사장과의 격차가 2.7%포인트로 좁혀졌다. 나머지 여야 대선주자들은 문 이사장 아래였다.
리얼미터의 5월 셋째 주 조사의 지지율 3.3%, 5월 넷째 주 조사의 지지율이 5.4%로 지속적인 상승세다.
5월 넷째 주 조사의 ‘진보진영 대선주자 호감도’ 항목에서 문 이사장은 유 대표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의 결과도 비슷하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문 이사장이 정치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그의 잠재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 이사장이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것은 5월1일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2주기 고유제 행사에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부터다. 그는 기자들이 차기 대선 도전 여부를 묻자 “답변하기 난감하다. 나라의 위기감이 큰 만큼 이런저런 가능성을 찾고 있는데 나도 압박을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라면 손사래를 치던 이전과는 다른 자세였다.
이후 5월30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는 “내가 혹시 도움이 된다면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차기 대선과 관련한 거의 유일한 인터뷰였다. 이때를 전후해 그는 야권의 잠룡(潛龍) 반열에 올라섰고 여론조사기관들이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대상에 그를 포함시켰다.
문 이사장에게는 다른 대선주자들과 마찬가지로 팬클럽이 있다. 인터넷에 팬클럽 카페도 개설돼 있다. ‘문재인 변호사님을 사랑하는 모임’(문사모)이 그것이다. 6월13일 현재 이 카페의 회원 수는 2957명. 문 이사장의 일정, 활동사진 등을 게시해놓고 있다. 서울, 경기, 부산·울산, 강원, 충청, 광주·전라, 제주에서 ‘지역화합방’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