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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추적

“검찰 모순에는 눈감고 피고인 주장에는 현미경 들이댔다”

대법원에서 뒤집힌 박주원 전 안산시장 수뢰 의혹

  • 한상진 기자│greenfish@donga.com

“검찰 모순에는 눈감고 피고인 주장에는 현미경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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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증거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논란이 제기됐다. 박 전 시장 측은 “현직 시장이 백주 대낮에 돈 넣은 보따리를 공공장소인 카페에서 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임씨가 박 전 시장을 6월4일 보았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임씨가 박 전 시장을 봤다는 장소에는 화단이 조성돼 있어 멀리 있는 사람을 식별하기 힘들며, 인터넷을 통해 사진만 봤을 뿐 일면식도 없는 박 전 시장을 임씨가 단번에 알아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전 시장 측은 임씨의 업무용 수첩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졌다. 일단 증거로 제출된 수첩은 원본인 업무일지에서 상당부분 옮겨 적는 식으로 사후에 변조된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임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검찰에 압수될까봐 업무일지 내용을 수첩으로 옮기고 원본은 폐기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는 수첩이 사후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1, 2심 법원은 박 전 시장과 관련된 혐의에 대해 임씨의 수첩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특히 법원은 임씨의 수첩에 당시 타던 렌터카 번호(2007년 4월9일자에 기재된 ‘대림아크로텔, 렌터카, 서울38허****’)가 적혀 있는 것에 의미를 뒀다. “렌터카 번호까지 적어놓은 걸로 보아 수첩의 내용은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몇몇 D사 직원도 임씨가 항상 업무용 수첩을 가지고 다녔다고 진술해 임씨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이 수첩의 진실성은 때로는 믿고, 때로는 믿지 않는 태도를 보여 논란을 불렀다. 박 전 시장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수첩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법원이 또 다른 피의자인 안산시 공무원 김모씨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 수첩의 변조 혹은 오류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 1심 판결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보자) 임OO 작성의 업무용 수첩 중 2007년 4월15일란에 ‘도시국장’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그 무렵 (안산시 공무원) 김OO은 안산시 상하수도 사업소장이었고, 2008년 2월22일에야 도시국장이 되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한 임OO의 업무용 수첩 기재 내용을 신빙하기 어렵다.”

제보자인 임씨가 당시 김 회장 측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는 것도 제보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었다. 임씨는 2009년 6월경 D사에서 해고된 뒤 앙심을 품고 김 회장에게 “회사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식으로 금품을 요구하다 도리어 김 회장 측으로부터 공갈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있었다. 박 전 시장 측은 이를 근거로 임씨의 자작극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법원은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 검사의 공소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 모순, 의문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에는 불신의 전제에서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법원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은 심리과정에서 선입견 없는 태도로 검사와 피고인 양편의 주장을 경청하고 증거를 조사하여야 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헌법상 요구되는 형사재판의 원리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하여야 한다.”

쟁점 2 ‘핵심 진술의 번복’

김 회장은 사건 초기 박 전 시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다 임씨의 진술이 나오자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다. 뇌물공여 장소인 ‘카페’를 특정한 것도 임씨가 아닌 김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2007년 2~3월경 박 전 시장을 문제의 카페에서 만났는데, 박 전 시장이 ‘시장 선거를 치르느라 빚이 2억~3억 정도 있는데 힘들다’는 말을 해서 사업을 잘 봐달라는 취지로 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6월4일 8000만원을 건네면서 ‘사업에 신경 좀 써달라. 이것 좀 갖다 쓰소’라고 말하자 박 전 시장은 ‘어유,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가방을 받아갔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러나 1심 재판이 진행되던 중 김 회장은 느닷없이 박 전 시장과의 대질심문에서도 인정했던 금품제공 사실을 번복했다. “2007년 4월9일 5000만원을 줬다”는 진술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당시 김 회장의 바뀐 진술은 이랬다.

“검찰에서 5000만원을 박 전 시장에게 준 부분을 진술하였으나 (제보자인) 임씨가 계속 (내가) ‘빨간 보자기를 들고 갔다’고 하고 (D사가 정·관계에) 17억원가량 로비를 했다고 검찰이 추궁을 하니까 각박한 심정에서 그렇게 진술한 것이다. 5000만원에 대해서는 기억이 왔다갔다 한다. 전혀 기억에 없다. 빨간 보자기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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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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