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급쟁이 의식 VS 사장 의식
지금까지 김영사가 출간한 책은 3000여 종. 그중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책이 1000여 권에 달하니 ‘가장 많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유하고 있는 출판사’라는 세간의 평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니 이제 물어볼 차례다. 요즘은 ‘가족 같은 조직’보다 ‘집은 집, 회사는 회사’ 선을 긋고 사원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조직에서 오히려 창의적인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소속한 사회의 발전이 진정 나의 발전의 길임을 알아서, 김영사의 발전을 통하여 나의 발전을 꾀하고 나아가 우리의 가장 높은 목표를 달성한다”니, 이 ‘다짐’에 정말 모든 사원이 공감하는지 말이다. 박 대표는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왜 이 회사에 다니는가”라고 반문했다.
“제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게 월급쟁이 의식이에요. 회사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하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단지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한다면 너무 불행하지 않을까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중 가장 빛나는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할 이유가 없죠. 저는 누구에게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라고 말해요. 스스로 살아 움직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렇게 해서 행복해지라고. 명심문에서 세상의 근본은 ‘나’이고 목표는 ‘나의 행복’이라는 게 그런 뜻이에요.”
박 대표가 그렇게 일했다. 이화여대 수학과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그는 졸업 뒤 동기들이 기업 전산실 프로그래머 등으로 진출할 때 “평생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자신이 없어서”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 방에서 헤르만 헤세와 니체 키에르케고르를 즐겨 읽었을 정도로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대학 시절 철학을 부전공하기도 했다. 1979년 공채로 입사한 평화출판사는 작은 규모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출판사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을 거기서 배웠다.
“주인으로 일하라”
“사장이 아침마다 일의 진척을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편집장한테 우리가 먼저 회의를 해서 매일 할 일을 보고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했죠. 그런데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냐고, 하고 싶으면 미스 박이나 하라는 거예요.”
그날부터 아침마다 혼자 업무보고를 했다. 사장이 쓸 만하다 싶었는지 점점 중요한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 되자 사장이 하는 일은 그도 다 할 수 있게 됐다. 출판계에는 ‘평화 미스 박이 일 잘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1982년 김영사 창업주 김정섭 당시 사장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회사를 옮겼다. 백성욱 전 동국대 총장의 제자로 재가 수도자였던 김 사장은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었다. 그렇지 않아도 삶과 죽음, 우주와 인간, 영원과 무한 등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던 박 대표는 매일 아침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가는 길에 그와 선문답을 주고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던 김 사장이 그의 책상 위에 툭, 금강경을 두고 갔다. 불교 집안에서 자라 불교책을 제법 읽었던 박 대표로서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그날부터, 그러니까 1984년부터 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금강경을 읽었다. 지난 27년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108배도 함께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