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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출판 인생 30년 베스트셀러 1000종 일군 김영사 방식, 박은주 스타일”

‘정의란 무엇인가’ 기획자 박은주 김영사 대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출판 인생 30년 베스트셀러 1000종 일군 김영사 방식, 박은주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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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인생 30년 베스트셀러 1000종 일군 김영사 방식, 박은주 스타일”

가회동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김영사 사옥의 박은주 대표.

기자를 만난 날도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108배로 하루를 시작한 참이었다. 두 손을 한데 모으고 몸을 구부려 온전하게 자신을 낮춘 뒤 절을 마치면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금강경’을 읽는다. 금강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지금껏 2만일 넘게 읽어온 덕에 이제는 저절로 뜻이 통한다. 다음 순서는 명상에 드는 것이다. 탐욕이나 이기심에 물들지 않도록 마음의 때를 씻는다. 108배와 명상을 마치고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7시쯤. 이때부터 차를 마시며 하루 일정과 계획을 점검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6시쯤 퇴근하는 박 대표는 잠들기 전 또 한 차례 108배와 금강경 독송으로 하루를 정리한다고 했다.

한창 책 만들기에 재미가 붙었던 그 시절, 김영사에서 그는 마음을 다해 책 만드는 자세에 대해서도 배웠다. 한번은 서점에 납품한 책을 전량 회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콘텐츠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디자인과 제본 상태가 김 사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 수만 권의 책을 만들지만 독자들에게는 각각 단 한 권뿐인 책이다. ‘이만하면 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1989년 1월4일, 만 31세로 김영사 주간이던 박 대표는 불쑥 회사 사장이 된다. 김 사장이 신년식에서 “오늘부터 박 주간이 사장이다. 여러분이 잘 공경하고, 따라주기 바란다”며 작별 인사를 한 것이다. 그에게 의견을 물은 적도, 미리 뜻을 비친 적도 없었다.

“아주 간단히 그 말씀만 하고 나가시더라고요. 당신이 앉았던 자리를 그대로 제게 물려주셨죠. 그 후 다시 회사에 오시거나 업무에 관여하신 적이 없어요. 지금은 전북 부안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가끔씩 혈연도 인연도 없는 제게 회사를 물려주신 마음이 뭐였을까 깊게 생각하곤 해요. 그분은 정말 제게 스승이에요.”

31세 여사장



아무 준비 없이 사장이 되다니, 처음엔 잠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즐거워졌다. 그의 말마따나 “늘 사장처럼 일해왔기 때문에”두렵지 않았던 게다. 게다가 이제는 마음은 사장이어도 몸은 직원인 탓에 눈 감고 지나가야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고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가 처음 한 건 사내에서 ‘미스’ ‘미스터’라는 호칭을 없앤 것이다.

“그때 저는 주간이면서도 늘 ‘미스 박’이라고 불렸거든요. 당시 문화가 그랬어요. 남자는 직책을 불러주고 여자는‘미스’라고 하고. 그게 불편해서 사장이 되자마자 싹 없앴어요. 모두를 직책이나 이름으로 불렀죠. 또 후배한테도 존댓말 하는 문화를 만들었고요. 경리 보는 어린 여직원이 다른 사람들 뒷일 봐주느라 제 일은 못하는 게 안타까워서 ‘자기가 사용한 컵은 스스로 닦자’ ‘책 발송 업무를 한 뒤에는 주위를 깨끗이 치우자’ 같은 규칙도 정하기 시작했어요.”

‘김영사 신입 직원이 알아둘 일’은 그때부터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졌다. 박 대표는 “회사에서는 모든 사람이 마음 편하게 지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규칙이 없으면 나이 어리거나, 직급이 낮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누군가 불편을 겪게 된다. 청소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하지 않으면 하는 사람만 하게 되지 않나”라고 했다. 회사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도록, 모두 평등하게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그가 23개에 달하는 사내 규칙을 만든 이유다. ‘명심문’도 그 과정에서 나왔다.

“제가 사장에 취임했을 때만 해도 직원이 10명 남짓했거든요. 그때는 눈빛만으로도 ‘즐겁게 일하자’ ‘좋은 책 만들자’ 하는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가 커지고 사람들이 바뀌면 점점 그게 어려워지잖아요. 20년 전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정리를 하기 시작한 거지요. ‘이게 김영사의 정신이다, 우리는 이런 철학 갖고 이렇게 일한다’ 그런 걸 공유하고 싶었어요. 머리로만 아니라 마음속으로요. 깊이 체화되도록 하기 위해 암기 시험을 시작한 거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어느 날 갑자기 사장이 됐는데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신난다”고 생각했다는 사람. 그는 일도 재밌게 했다. 취임 첫해에 김우중 전 대우회장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이하 ‘세계는 넓고~’)를 펴낸 것. 출간 6개월 만에 100만부가 판매된 이 책은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이자 최단기간 최다판매라는 기네스 기록도 남겼다. 곧이어 출간한 ‘빵장수 야곱’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세계는 넓고~’와 함께 그해 베스트셀러 순위 1~3위를 싹쓸이했다. 박 대표 이름 앞에 ‘미다스의 손’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이때부터다. “첫해부터 줄줄이 대박을 치다니, 정말 타고난 기획자이신가 보다” 말을 건네자 “그게 바로 사람들의 오해”라고 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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