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출판 인생 30년 베스트셀러 1000종 일군 김영사 방식, 박은주 스타일”

‘정의란 무엇인가’ 기획자 박은주 김영사 대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출판 인생 30년 베스트셀러 1000종 일군 김영사 방식, 박은주 스타일”

5/7
한동안 자기계발서가 장악했던 출판계에서 딱딱한 ‘정의론’의 성공이 일으킨 반향은 대단했다. 또 한 번 박 대표의 ‘선구안’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박 대표가 단지 ‘감’만으로 이 책을 성공시킨 건 아니다. 마음이 끌리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 일하는 그의 업무 자세는 ‘정의란 무엇인가’ 출간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2009년 말 미국에서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 원서를 받아들고 그가 가장 고민한 것은 출간 시기. 2010년에는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광저우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스포츠 행사가 연이어 있어 새 책을 내놓을 시점이 마땅치 않았다. 박 대표는 월드컵 위험을 무릅쓰고 6·2 지방선거 직전 책을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선거 기간 다양한 정치적 논의가 폭발할 때 이 책이 하나의 잣대가 돼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정치인과 언론인 등 오피니언 리더가 선거를 앞두고 이 책에 관심을 기울이면 입소문 효과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칼럼니스트가 선거 관련 원고에 이 책을 언급했고, ‘정의란 무엇인가’는 6월 베스트셀러 2, 3위에 오른 뒤 7월부터 부동의 1위가 됐다.

책의 마케팅 콘셉트는 ‘하버드대 교수의 강연’으로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하버드’라는 브랜드가 가진 힘은, 하버드 의대생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닥터스’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적 있는 박 대표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게다가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는 로마시대 원형극장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강의실에서 수백 명의 학생이 빼곡히 모여 있는 상태로 진행된다. 그는 이 사진을 구해 표지에 싣고 젊은 독자들이 딱딱한 주제를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주위에 밝은 주황색 테두리를 둘렀다. 한국판 ‘정의란 무엇인가’는 흰색 바탕에 ‘Justice’라는 제목만 적혀 있는 미국판 책과 표지부터 완전히 다르다. 책 광고 문안도 ‘하버드대 학생들은 정의를 어떻게 배우는가? 하버드가 전 세계에 최고의 강의실을 개방한다’ 등 ‘하버드’를 부각시키는 내용으로 정했다.

좋은 책을 고르는 혜안과 그것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내는 능력. 그래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책을 정말 읽게 만드는 힘. 박 대표가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건 ‘양수겸장’의 명장이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실제로 ‘정의란 무엇인가’는 출간 초기부터 인문서 분야에 관심이 적은 것으로 여겨진 20대 젊은이와 여성들 사이에서 폭넓은 관심을 모았다. 교보문고 인터넷 구입 고객을 기준으로 여성 구입자 비율이 남성을 넘어섰을 정도다. 20대의 구매율도 37%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한국 젊은 독자들의 관심에 크게 고무돼 현재 주니어 김영사와 함께 청소년 버전 ‘정의란 무엇인가’를 준비 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사례에서 보듯, 사장이 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박 대표는 필드 플레이어다. 그는 자신의 업무 중 기획·편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쯤 된다고 했다. 경영에는 힘의 10% 정도만 쏟는다는 뜻이다.



“모든 직원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두면 그 뒤엔 경영자가 할 일이 별로 없잖아요. 명심문이랑 신입직원수칙, 그런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 외에 제가 하는 건 거의 책과 관련된 거예요.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책은 콘셉트 잡을 때부터 참여해 디자인, 제목, 마케팅 전략까지 다 같이 보죠.”

0.1㎜ 예술

물론 보통 책의 기획·편집 업무는 대부분 직원이 한다. 하지만 마지막 10%는 자신의 몫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직원들도 그리 믿는다.

“제가 경력 30년 된 기획자이자 편집자잖아요. 우리 직원들은 길어도 10년 미만이거든요. 책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고민할 때 제가 한마디해주는 게 아무래도 힘이 되니까요.”

그래서 매년 김영사에서 나오는 150여 종의 책 가운데 그가 관여하지 않는 건 단 한 권도 없다. 1995년 재충전을 위해 미국 뉴욕대로 유학을 떠났을 때, 3년간 아예 회사 일을 떠나 있었던 적은 있다. 귀국 후 돌아온 김영사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CEO의 부재에 외환위기 충격까지 겹쳐 66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22억원으로 떨어져 있었다. 1998년 복귀한 박 대표는 과학대중서 ‘앗! 시리즈’를 필두로 연이어 베스트셀러를 내며 김영사 재건에 나섰다. 이후 1999년 55억, 2000년 97억, 2001년 156억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한 매출은 500억원을 바라보는 올해까지 단 한 번도 감소한 적이 없다. 그는 분명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드는 기획자다. 하지만 많이 팔리는 책을 쫓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독자에게 필요한 책을 만들겠다’는 진심이 좋은 책을 만들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5/7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출판 인생 30년 베스트셀러 1000종 일군 김영사 방식, 박은주 스타일”

댓글 창 닫기

2023/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