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사상이나 신념보다 중요한 건 죽음 앞에 놓인 사람 구하는 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1-07-19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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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따’는 왜 자살하는가
    • 쌍용차 해고 노동자는 정신적 피폭자
    • “당신을 만나니 고문당하길 잘했다 싶네”
    • 다 버리고 홀가분해지기
    • 인생의 ‘바닥’에서 깨달은 행복의 비결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사람이 관계에서 배제당할 때 느끼는 고통은 아주 날카로운 것에 온몸이 찔리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비유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뇌에서 정말 그런 통증을 느낀다는 거지요. 우리 사회는 그것에 너무 무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가장 강해 보이는 해병대원에게조차 마음이 있다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아요.”

    해병대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로 세상이 떠들썩한 때였다. 정혜신(48)씨와 마주 앉자마자 ‘군대’ 얘기가 나왔다. 그는 부대 안에 팽배하다는 ‘기수 열외’ 등 왕따문화와 연이은 군인들의 자살 소식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화제는 자연스레 ‘사람’으로, ‘마음’으로 이어졌다.

    정씨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문제가 된 군부대와 다르지 않다. 사람을 별것 아닌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 마음의 상처쯤은 알아서 해결하기를 강요하는 문화가 곳곳에 있다. 그것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죽음의 원인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로 인한 사망률 1위, 자살 사망률 증가 속도 1위 국가다. 7월 초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전 국민이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인 듯하다”고 보도했다. 치솟는 이혼율,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입시에 짓눌린 학생들, 근무시간 뒤에도 폭음을 권유하는 남성 위주 기업문화 등을 근거로 들었다. 우리는 지금 불행한 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비정상적인 상태인 건가. 정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고 있어요. 표현하지 못할 뿐 고통받고 있지요. 사회에서 개인이 받은 심리적인 상처는 결코 저절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혼자 지치고 나가떨어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카운터 리액션(반대 급부)이 돌아와요. 해병대 사건처럼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그가 “우리 사회는 지금 이머전시(응급)상황”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팔로어가 3만3700여 명에 달하는 정씨의 트위터 자기소개란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국가공권력에 의한 고문 피해자들의 심리 치유에 몰입 中’이라고 쓰여 있다. 고문 피해자는 1980년대에 간첩 누명을 쓰고 끌려가 고초를 겪은 이들을 가리킨다. 쌍용차 해고자는 2009년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맞서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농성하다 강제 진압된 이들이다. 정씨는 매주 월요일 오후마다 고문 피해자를, 토요일엔 쌍용차 해고자와 그들의 가족을 만나고 있다. 집단상담을 통해 이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그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다. 이들의 정신적 고통에 무감한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글도 자주 남긴다.

    사람이 죽고 있다

    “무슨 생각으로 그 사람들을 만나는 거냐고 묻는 이가 많습니다. 사상이나 신념의 문제로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단순합니다. 가장 급한 사람, 정신과 의사가 꼭 필요한 사람이 그들이기에 만나러 가는 거지요. 그들 바로 앞에 죽음이 있어요. 그걸 막고 싶은 겁니다.”

    특히 쌍용차 해고자 상담에 대해, 그는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정씨가 이들을 만나기 시작한 건 지난 봄부터다. 해고자 임무창씨가 돌연사했다는 기사를 읽은 게 계기가 됐다. 임씨의 부인이 지난해 자살한 터라 두 자녀가 고아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정씨는 “정신과 의사로서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쌍용차 파업사태가 마무리된 뒤 2년 사이에 해고자와 그들의 가족 가운데 15명이 세상을 떠났다. 임씨는 그중 13번째다. 죽음의 행렬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4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이 발표한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93명 중 80%가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 최근 1년간 자살률은 일반인의 3.74배, 심근경색 사망률은 18.3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는 이런 결과의 원인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를 지목했다.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을 망가뜨리다 끝내 파국으로 이끌고 가는, 정신과 질환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병이다.

    “2009년 파업 때부터 늘 마음에 걸렸어요. 저분들 심리적인 상처가 클 텐데 어쩌나 싶었죠. 자살이 이어지다 임무창씨가 돌연사했다는 기사까지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든 치료를 시작해야겠다 싶어 평택 쪽에 연락을 했어요. 희망자를 모아달라고요.”

    심리 치료의 힘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파업 당시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쌍용차 해고자들은 경찰특공대에 의해 진압됐다. 77일간 극단적인 폭력의 공포를 겪다가, 결국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얻어맞으며 끌려나왔다. 이때 육체적 상처보다 깊은 정신적인 내상(內傷)을 입었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라고 여겼던 믿음이 부서진 데서 온 충격은 쉬 회복되지 않는다.

    “PTSD는 가벼운 병이 아니에요. 당시 관련자 중 많은 분이 쌍용차라는 말만 들어도, 쌍용차 정문만 봐도 가슴이 내려앉고 두통이 오기 시작한다고 고백해요. 나중엔 ‘쌍시옷’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거예요. 지금도 꿈을 꾼대요.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최루탄이 떨어지고, 회사 동료였던 사람이 자기를 향해서 새총을 쏘는 겁니다. 지금 자살뿐 아니라 돌연사, 심장마비 같은 스트레스 질환으로 사망하는 분도 참 많은데 다 젊어요. 몸집 크고 힘도 세요. 그런데 쓰러지는 겁니다. 지금 그들의 상태는 정신적으로 피폭을 당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저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고통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건 ‘도망’이다. 사력을 다해 그때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 가장 친했던 회사 동료, 이웃조차 만나지 않는다. 그러니 정씨를 만날 리도 없다. 3월 초 첫 상담을 하러 평택에 갔을 때 모인 사람은 8명이 전부였다. 상담을 원하는 부인들까지 더해 13명으로 집단 상담 팀을 꾸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인인 MC 김제동은 평택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연예인을 보러 모인 이들에게 정씨는 딱 10분, 심리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가수 박혜경과 자원봉사모임 ‘레몬트리공작단’은 매주 평택에 와서 쌍용차 해고자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봉사를 한다. 이때 정씨는 또 10분쯤, 왜 심리치료가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심리 상담 강요가 또 다른 폭력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그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이가 많아졌고, 집단상담장 앞을 서성이며 다른 이들의 상담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도 생겼다. 8주 과정의 첫 코스를 마친 뒤에도 그는 매주 토요일 평택을 찾고 있다. 지금은 2기 팀을 꾸려 오전 10시부터 12시30분까지는 해고 노동자, 오후 2시부터 4시30분까지는 해고 노동자의 아내를 만난다.

    “극단적인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게 돼요. 너무나 남루하고 더 이상 초라할 수가 없고, 정말 버러지만도 못하다는… 그런 느낌을 아주 뼛속 깊이 새기게 되지요. 지금 쌍용차 분들이 그래요. 말씀을 나눠보면, 이분들이 죽고 싶다고 하는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살 충동과 전혀 달라요.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갖게 마련인 심리적인 긴장, 죽을까 말까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어요. 굳이 살 이유가 없으니,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상태인 거죠. 다들 자기도 모르는 새 넥타이 매듭에 목을 걸고 있거나, 옥상 위에서 뛰어내리려 하다가 깜짝 놀란 경험을 갖고 있어요. 문제는 저한테 그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해고자 중에서는 심리적인 힘이 아주 강한 분들이라는 거죠. 그 말조차 안 하는, 심리 상담 장소에 나타날 생각조차 못하는 나머지 2000여 명은 지금 어떤 상황일까…. 생각하면 아찔할 수밖에요.”

    ‘와락’ 안아주기 위해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정씨는 “성장판이 닫히기 전 아이들은 심리적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평택에서 만난 여섯 살짜리 한 아이는 버스를 타지 못했다. 네 살 때 아빠가 경찰버스에 실려 가는 걸 본 충격 때문이다. ‘레몬트리공작단’에서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려가려고 버스를 대절했는데 그 아이는 끝내 못 갔다. 또 다른 한 아이는 파업이 끝난 뒤에도 1년 정도를 옷을 입을 때마다 허리에 무장을 했다. 막대기와 장난감 칼 등을 꽂고, 엄마에게 “내가 나중에 크면 꼭 경찰특공대를 죽여주겠다”고 약속한다는 것이다. “경찰특공대가 잠자고 있을 때 큰 바위로 내리치면 될까”하며 구체적인 계획도 세운다.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는 아이에게서 심리적인 내상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다섯 살 난 한 아이는 세 살 난 동생을 내내 업고 다닌다. ‘레몬트리공작단’이 도시락을 주면 아빠 것까지 챙긴다. 정씨가 보기엔 그 나이에 벌써 부모를 돌보려 하는 마음, 그 정서도 상처로 인해 생긴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부모는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지죠. 내가 못나서 저런 상처를 입혔구나…. 더 큰 아이들,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의 가출·비행문제도 심각합니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거예요. 평택에 사는 사람들, 쌍용차 파업 문제에 연관됐던 사람들이 지금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거죠. 국가 정책이나 노사 문제, 그런 건 제 관심사가 아니에요. 모든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고, 그것이 다쳤을 때는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 특히 그런 상처가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 경우에는 많은 사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씨의 바람은 평택에 이 아이들을 ‘와락’ 안아줄 수 있는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세우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 60여 개국에 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 PTSD를 치유하기 위한 전문센터가 있다. 파병 군인이나 대량 살상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끔찍한 자연재해를 겪은 사람들, 혹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과도한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공간이다. 우리나라에 그런 공간이 마련된다면 지금 평택에, 아이들을 위해 지어져야 한다는 게 정씨의 생각이다.

    그의 계획에 여러 사람이 힘을 보태고 있다. 평택시가 5000만원 지원 계획을 밝혔고, 독지가들도 성금을 보낸다. 그중 그가 가장 마음 뭉클하게 받아든 건 매주 월요일 집단 상담을 통해 만나고 있는 고문 피해자들이 보낸 돈이다. 군사정권 시절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하고 구속·수감됐던 이들. 그들이 최근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나라에서 지급한 보상금을 추렴해 ‘와락’ 건립 기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분들에게 그 돈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기에 많이 놀랐어요. 다들 지난 수십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산 분들이잖아요. 지금도 10만원, 15만원 하는 지하셋방에서 사는 분들께 이 돈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걸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겁니다.”

    고문 피해자 집단 상담

    그는 “고통 받아본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크다”고 했다. 또 당신들이 심리 상담을 통해 오랜 상처를 털고 일어났기에 ‘와락’이 평택에 왜 필요한지 그 누구보다 절실히 느꼈을 거라고도 했다. 그 마음을 받아들었기에, 평택을 향하는 정씨의 어깨는 한층 무거워졌다.

    그가 고문 피해자를 처음 만난 건 2005년, 시민단체 관계자로부터 이른바 ‘진도 가족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8년간 옥살이를 한 박동운씨를 소개받으면서부터다. 뒤늦게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박씨는 한평생 아무 이유 없이 ‘빨갱이’로 몰린 상처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상태였다. 국회 국가보안법 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기로 하고 의료적인 자문을 얻기 위해 그를 찾아온 것이다. 정씨는 직접 청문회 자리에 나가 박씨를 상담했다. 당시 광경을 기록한 한 기사에는 박씨가 국회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 땅은 죽어도 피하고 싶소. 아프리카 토인으로 태어나서 흙바닥을 파먹어도 이 땅에는 안 살라요. 그 고문을 당하고도 내가 어찌 살아났는지…”라고 했다고 돼 있다.

    박씨의 삶은 충격적이었다. 끔찍한 고문을 당했고, 이유 없는 옥살이를 겪었고, 간신히 출소한 후 만난 가족까지 그를 ‘빨갱이’라고 피하는 고통을 토해내며 박씨는 많이 울었다.

    “PTSD는 정신질환 중 유일하게 가해자가 있는 질병이에요. 내가 못나거나 무능하거나 비관적인 성격이 있어서 그런 상처를 입는 게 아니에요. 아무리 씩씩하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압도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망가지고 말지요. 전쟁 고문 강간 같은 게 그런 겁니다. 이 문제를 치료하려면 가해자를 처벌하고, 사회적으로 피해자를 지지해줌으로써 그의 죄의식, 무능력함에 대한 자책을 없애줘야 해요.”

    그래서 정씨는 이때부터 고문 피해자 문제를 세상에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트위터를 통해 쌍용차 해고자들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그는 정부를 향해 “이들의 고통에 신경 쓰지 않는 건 사이코패스의 행태와 다를 게 없다”고 했다.

    “사이코패스의 정의가 그거예요.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능력이 없는 것. 국가 폭력으로 사람이 마음을 다쳤는데, 그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는데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런 잔인함에 대한 분노는 정당한 거라고 생각해요.” 동시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박씨를 10회에 걸쳐 상담 치료한 것. 이 과정에서 다른 고문 피해자들을 위한 집단상담 치료 아이디어가 나왔다.

    물론 당사자들은 거부했다.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 하는 전형적인 PTSD 증상 때문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들을 상담 테이블에 앉히기까지 걸린 시간이 3년. 마침내 모인 6명으로 팀을 짜 매주 한 번씩 집단 상담을 하기 시작한 게 2008년의 일이다. 정씨는 “그동안 정신과 의사로 살면서 마음의 고통 있는 사람을 1만명 이상 만나왔지만, 그중 누구도 고문 피해자들처럼 처절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했다.

    한 피해자는 일가족 7명이 동시에 간첩사건으로 잡혀가는 바람에 여든 넘은 아버지가 혼자 길거리를 떠돌다 굶어죽었다. 사춘기 자식이 ‘간첩 새끼’라는 놀림을 받다 자살한 경우도 있다. 가족들이 산 징역수를 합치면 100년이 넘는 이도 있다. 지난 30년간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도망쳤던 이들은 정씨를 만나고도 한동안 마음을 열려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때 얘기를 왜 해야 하냐고 하는 분이 많았어요. 힘들었던 걸 얘기 하면 지나간 세월이 돌아오느냐고, 간신히 덮어놓은 거 왜 다시 헤집느냐고 하시는 거죠.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려면 일단 끄집어내야 해요. 맹장염이 생기면 살을 째고 뜯어내듯이 마음의 상처도 고통을 직면하고 털어내야 치유할 수 있어요.”

    상처에 직면하기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의 ‘대한민국’ 비판
    정씨는 “정신분석은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사람이 본래적으로 갖고 있는, 자기 안의 치유 능력을 발견하도록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의는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더 깊숙이 내면으로 들어가 뿌리까지 접근하도록 이끄는 구실을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사람은 궁극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본래의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게 바로 치유다. 정씨는 지난 3년 동안 고문 피해자들의 마음 안에 응축돼 있던 분노와 무기력감, ‘인간 존엄의 바닥과도 같은 체험’을 끄집어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상담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들이 자기 주위 고문 피해자들을 또 데려오면서 치유는 계속 이어졌다. 정씨는 지금 여섯 번째로 구성된 팀을 상담 중이다.

    “이 경험이 쌍용차 해고자들을 찾아가게 만든 것 같아요. 제가 평택에 간다고 하니 고문 피해자 선생님들도 궁금해 하시더군요. 상담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셔서 해고자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함께 들어오시게 했어요. 상담 내내 우시더군요. 해고자들이 얘기할 때는 ‘그래 젊을 때 내가 저랬지 지금 얼마나 힘들까’ 하면서 우시고, 부인들 상담할 때는 ‘아 30대에 우리 와이프가 저랬겠구나’ 하며 우시고.”

    그 눈물이 ‘와락’을 위한 성금으로 이어진 셈이다. 기부의 경험을 통해 고문 피해자들은 오랜만에 ‘피해자’ 자리에서 벗어났다. 쌍용차 해고자들 역시 이들을 만나며 힘을 얻었다. 자신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도 살아남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본 것이다. 이들은 함께 북한산 등산을 하고 막걸리를 나눠마셨다. 그때 한 젊은 해고자가 ‘선생님들을 뵙고 나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자 고문 피해자 한 분이 ‘당신을 만나니 내가 고문당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시더군요. 보통 말씀이 아니죠. 돌아보면 30년 동안 사회 바닥에서 버러지 같은 대우를 받고 살았잖아요. 모두가 무시하고 외면했는데 그렇게 찢길 대로 찢긴 삶이 누군가에게 생존의 희망이 됐다는 게 얼마나 기쁘셨겠어요. 농담이었지만, 당사자가 그런 우스개를 할 수 있게 된 걸 보며 저분들의 심리적인 상처가 많이 치유됐구나 싶어 뿌듯했어요.”

    욕구대로 사는 법

    그래서 정씨는 고문 피해자 상담과 쌍용차 해고자 상담을 다녀오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했다. 의사로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듣는 일도 괴롭지 않다.

    “가끔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하고 싶다는 분들이 찾아와요. 직접 들어와 촬영을 했던 분도 있는데 오래 못 버티고 다 포기하죠. 상담 과정에서 그들의 상처를 듣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면서요. 한 감독은 ‘쌍용차 해고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느낀 설움을 얘기하는데,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던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 견딜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돌아보면 그도 젊은 시절 상담실에서 끔찍하고 압도적인 얘기를 들으면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사람이 저런 일까지 겪었다는데 내가 뭘 해줄 수 있나 느끼는 순간, 무력감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는 의사로서의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고백하다가 나의 반응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내면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걸 느낄 때 행복하다. 그러고 나서 분명히 달라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되찾을 때 기쁘다. 그런 피드백을 받는 것보다 더 나를 들뜨게 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앞으로 더 많은 이를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10여 년 동안 계속해온 공적인 글쓰기를 중단하기로 했다. 정씨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무렵부터 여러 사회 문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람들의 상처를 진단하는 칼럼을 써왔다. 언론매체와 개인 블로그 등에 발표한 이 글들은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이런 작업을 정리 중이다. 지난 6월, 5년 넘게 이어온 그림 에세이 연재를 끝냈다. 한 신문에 고정적으로 써온 칼럼도 마무리하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심리 상담에 관한 책 한 권을 탈고하고 나면 당분간 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난다. 글 쓰는 데 시간을 쓰는 게 아깝다”는 이유다.

    전국 각지에서 쏟아지는 상담 요청을 소화하기 위해 전문 상담 인력을 키우는 가칭 ‘정혜신 상담학교’도 준비 중이다. 직접 커리큘럼을 짜서 현장에 들어가 즉시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용적인 상담 인력을 길러내려 한다. 연내 평택에 ‘와락’ 센터를 개관할 수 있도록 뜻과 힘을 모으는 것도 현재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일이다. 정씨는 “요즘 남편이 나를 보며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하고픈 일을 찾아 즐겁게 해나가며 놀라운 에너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에 있으면 명문대 졸업하고 굉장히 좋은 직장에 들어간 뒤 ‘알고 보니 이건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며 찾아오는 사람을 많이 만나요.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면 평생 삶이 불행할 수밖에 없지요. 정신 건강의 첫걸음은 자신의 욕구를 분명히 이해하는 거예요.”

    홀가분하게

    그는 자녀 셋을 모두 영국 서머힐 학교에 보냈다. 1921년 개교한 세계 최초의 대안학교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자유의사에 따른다. 일곱 살에 이 학교에 들어간 막내아들은 4년 동안 한 번도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는 아이의 뜻을 존중했다. 큰아이가 서머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도 그 선택을 따랐다. 지금 그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아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그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간단해요. 자신이 되는 거지요. 사람은 본래 완전하고 행복하게 태어납니다. 여러 욕망과 상처, 콤플렉스가 덧대지면서 본능적인 균형감각을 잃고 불행해지는 거예요. 불필요하고 부적절하게 갖고 있는 걸 다 털어내고 본래의 자기 모습을 직면하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는 이 상태를 ‘홀가분’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거추장스럽지 않고 가볍고 편안한 상태.’ 온전한 자신으로 있는 그 상태는 정신분석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치유의 형태와 같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해 자신을 왜곡하는 일을 멈출 때, 그리고 실패를 경험한 후에도 자신을 탓하지 않을 때, 인간은 비로소 온전히 혼자 서게 된다”고 말하는 정씨는 지난해 서울에 심리 카페를 열고 이름을 ‘홀가분’이라고 지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차를 마시며 다양한 심리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자아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의 자연스러운 감각, 내 안에 있는 욕구가 막히면 인간은 병이 들어요. 이게 아닌데, 내가 원하는 건 따로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내 감각을 깨워 그것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야 해요.”

    정씨도 레지던트 시절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 2년에 걸쳐 1주일에 두 번씩 정신분석을 받았다. 의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며, 월급의 절반 이상을 자신의 치료비로 쓴 시절이었다.

    “돌아보면 제 유년 시절은 온통 잿빛이었어요. 환자로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제 상처와 고통을 생생하게 다시 느꼈죠. 환자적인 감정이 끓어올라 낮에 정신과 회진을 돌 때 많이 힘들었어요. ‘본질적으로 이 사람들과 내가 다른 게 뭔가. 나도 이 안에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는 상담을 받는 2년 동안 폭우로 대중교통이 끊겼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의사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생활이 정신분석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신의 삶과 문제에 몰두한 그 시간을 거치면서 마침내 정신적으로 건강해졌다. 정씨는 “정신과 의사로서 내가 장점을 갖고 있다면 ‘바닥까지 환자가 돼본 경험’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 경험을 통해 “모든 정신적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는 지금도 정신적으로 평온하고 균형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주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그를 돕는 것은 다른 의사가 아니라 남편이다. 정씨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 ‘홀가분’의 서문에는 남편을 향한 그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나의 치유자이자 심리적 구루이다. 나는 일상의 특별한 순간마다 그에게 묻지 않은 적이 없고, 그 또한 그런 순간 나에게 힘을 보태지 않은 적이 없다. … 내가 후드가운을 눌러쓰고 트레이너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긴장된 호흡을 조절하며 경기장에 입장하는 권투선수라면, 그는 수많은 관중의 함성과 열기를 온몸으로 앞서 맞으며 길을 터주는 나의 수석 코치다. 수천 명의 함성으로 소란한 상황에서도, 상대의 맹렬한 공격으로 휘청거리는 순간에도 나는 그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구분해 감지할 수 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정씨가 원하는 건 정신과 전문의로서, 남편이 자신에게 그러하듯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받는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본래의 모습을 찾고 행복을 느끼게 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도 행복할 수 없죠. 지금껏 제가 상담한 1만여 명의 사람은 모두 다 완전히 달랐지만, 그 자체로 존중받을 자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지켜야 할 것은 재물이나 재능, 외모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 그 자체인 거죠. 우리나라가 그 개별성을, 서로 다른 마음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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