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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의 藝人 탐구 ⑧

임권택

“칸에서 작품상 기대했다가 감독상 받고 맥 빠졌지”

  • 한상진 기자│greenfish@donga.com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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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향 떠나던 날 어머니의 마지막 말…“저놈 눈 봐라”
  • ● “누가 그러대. 나에겐 동심이 없다고, 그래서 영화가 그렇다고…”
  • ● 결혼하고 애 낳아 길렀지만 여전히 떠돌이 인생
  • ● 저질 쓰레기 영화 만들며 생긴 때 빼는 데 10년 걸렸다
  • ● 궁색한 티 낸 적 없는 ‘우리 사모님’…“연기는 못했어”
  • ● “강수연 며느릿감? 그거는 안 돼. 술이 너무 세가지고.”
임권택
임권택(76) 감독의 말투는 어눌했지만, 또 정확했다. 구차한 설명 같은 게 없었고, 꼭 할 말만 꺼냈다. 그는 대화 도중 말문이 막혀도 뭐시기니 거시기니 하면서 대충 눙치고 넘어가지 않았다.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임 감독은,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시간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적확한 표현을 떠올린 다음에야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풀어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의 여백은 묘하게도 인터뷰에 긴장감을 더했다. 기자의 손아귀에 자주 힘이 들어갔다.

이런 식의 화법은 임 감독의 영화와도 닮아 있다. 군더더기 없고 감정의 낭비가 없는, 그 어떤 대사보다 강한 영상과 음악이 보는 이의 동공을 꽉 채우는 그의 영화들처럼. 떠올려보니 ‘서편제’가 그랬고 ‘취화선’이 그랬었다.

숫자에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임 감독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까지 총 101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했으니, 50년 동안 영화를 만든 셈이다. 그동안 수많은 상을 받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달빛 길어 올리기’는 한지(韓紙)에 미친 사람들의 얘기를 담은 영화다. 조선왕조실록 복원사업을 맡은 7급 공무원(박중훈), 한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감독(강수연), 먹고살기 위해 한지를 만드는 쟁이들의 얘기가 버무려졌다. 우리 것에 미친 사람들이란 임 감독의 오래된 주제의식이 판소리(서편제, 천년학), 그림(취화선)을 넘어 이번에는 종이에 꽂힌 셈이다. 임 감독 인터뷰는 자연스레 이 최근작에 대한 것으로 시작됐다.

한지에 빠지다



▼ 한지라는 좋은 주제를 다뤘는데,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괜찮으세요?

“그건 뭐, 그런 일이 하도 많으니까, 괜찮아요. 그게 뭐 어쩌다가 만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백 작품이 넘었으니까.”

▼ 그래도 흥행을 기대하셨을 텐데.

“생각 안 했어요.”

▼ 실패할 줄 아셨어요?

“예. 나는 그동안 한번도 흥행 성과를 맞힌 적이 없어요. 서편제 때도 사람들한테 ‘흥행은 못할 거다’ 그랬으니까. 그래도 매번 기대는 하죠, 마음속으론. 그런데 이번엔 ‘힘들겠다’ 생각했지요. 할리우드 영화에 길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재미없었을 거예요.”

1993년 개봉한 서편제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관객 100만명을 넘긴 영화다. 관객수를 집계하는 방식이 어설펐을 때니까 아마 통계(103만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편제는 임 감독의 전작인 ‘장군의 아들’(1990년)이 대박(단성사 한 곳에서만 68만명)이 난 뒤 제작사인 태흥영화사가 보너스 차원에서 임 감독에게 제작비를 대준 영화라고 알려져 있다.

▼ 감독님 정도 되면 관객이 만명이 들든, 100만명이 들든 초연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도 않아요. 왜 그러냐면, 어찌됐든 제작비를 쓰는 거 아니에요? 누구 돈이 됐든. 그래서 흥행을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든 흥행이 될 수 있게끔 애쓰고 그러는 거지, 미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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