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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⑨

중세 암흑시기에 이슬람은 문명을 밝혔다

대수학, 눈 해부, 세계지도, 과학서적 번역 운동

  • 김능우│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아랍문학 aminkim@hanmail.net

중세 암흑시기에 이슬람은 문명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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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라비아반도 주변 지역을 정복한 후 아랍인이 처음 세운 이슬람 우마이야 제국은 최초의 아랍 도서관 문을 열었다. 연금술, 의학 등 과학 분야 관련 그리스어 기독교 서적을 수집, 보관하면서 서서히 문명의 디딤돌을 놓았다. 우마이야조(朝)의 뒤를 이어 집권한 압바스조 시대(750~1258년)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그 유례가 드문 ‘과학 황금시대’를 이룩했고, 8세기 후반부터 15세기까지 지속된 중세 아라비아 과학 발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문명의 주인공이 바뀌는 가운데 인류는 과학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면서 과학을 발전시켰고, 이슬람 문명은 중세 문명을 담당한 주역이었다. 아라비아 숫자나 세계 지도, 알칼리 등의 화학용어 등은 이슬람 문명이 전해준 과학문명의 결실이었다.
중세 암흑시기에 이슬람은 문명을 밝혔다

압바스 왕조 한때 수도였던 사마라(이라크 북부지역)의 대형 미나레트.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지은 모스크 부속건물이다. 높이 36m.

지역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겠지만, 인류는 고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앞서 창출된 지식의 가치를 고려해 그것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수하는 과정을 통해 과학지식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왔다.

인류 과학의 출발은 보통 기원전 4000년경 발생한 중동지역의 고대 오리엔트 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과 인더스 문명, 중국 황하 문명 등 강을 낀 고대 문명에 두고 있다. 특히 이집트인과 수메르인은 수학, 자연과학, 의학 등 과학지식을 탄생시킨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과 가까운 그리스는 고대 오리엔트 문명을 계승하면서도 독창적인 문명을 창출해 이후 서양 문명의 모체가 되는 그리스 문명을 이룩해 냈다.

민주적 제도와 자유로운 정신을 바탕으로 한 그리스는 고대 오리엔트의 언어를 이용해 개발한 알파벳 문자를 통해 지식을 넓혔고 문학, 철학, 예술 외에 자연과학에서도 놀라운 성취를 거두었다. 그렇게 축적된 그리스의 과학지식은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년)의 동방 정복을 통해 오리엔트의 건축술, 의술 같은 실증적 지식과 결합해 세계화된 헬레니즘 과학으로 발전했다. 당시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수학, 역학, 천문학 등을 포함하는 헬레니즘 과학의 중심지였다. 로마 시대에는 주로 그리스의 과학과 기술이 응용됐으며, 여전히 활동하던 그리스 과학자들에 의해 고대 과학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후 중세에 들어와서 유럽은 봉건제도와 기독교 교의의 지배하에 과학기술을 포함하는 그리스 고대 문명의 지적 성과가 빛을 잃는 암흑시대(400~ 1000년경)를 맞이했다. ‘천상의 왕국’을 꿈꾸는 기독교 신학의 영향으로 중세 과학은 ‘비참한 모양’을 면치 못했으며, 그리스 사상과 과학지식은 학문에서 배제됐다. 인류가 4000년 이상 쌓아왔고 그리스가 종합하고 발전시킨 엄청난 과학지식이 자칫 역사에서 매몰될 뻔한 시기가 바로 중세였다. 소중한 그리스 과학 유산이 사라질 위기의 시기에 고전 문명 지식의 파수꾼을 자처한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이슬람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7세기 초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슬람 국가의 터전을 다지기 시작한 아랍인들은 우마이야조, 압바스조가 통치하는 두 제국을 연이어 세웠다. 그들은 종교를 세계관의 중심으로 삼으면서도 학문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바그다드에 수도를 정한 압바스조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그리스를 비롯해 페르시아, 인도의 고대 과학 지식을 모으고 보완해 최고 수준의 학문을 이룩했다. 이 글은 이러한 압바스조가 지녔던 학문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살펴봄으로써, 고대 문명의 계승과 통합 및 인류 과학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슬람 문명이 수행한 역할과 그 위상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400~1000년 기간이 중세 유럽에서 학문의 암흑기라고 한다면, 750~900년의 기간은 이슬람 문명권의 핵심 세력인 압바스조가 이끄는 학문의 전성기였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 인류가 쌓은 학문의 성과를 유럽이 방치하던 기간에 아랍인들은 그것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열의를 다해 그것을 수집, 보관, 보충, 심화하는 학술 작업에 몰두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유일신 종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중세 동안 서구 유럽에서 과학은 기독교 신학에 억눌려 퇴보한 데 반해, 동쪽의 바그다드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지식을 생산했다. 그러한 차이는 이슬람의 관용적 특성과 이슬람 영토의 확대, 이슬람 제국 통치자들의 개방적 태도 등에서 생겨났다.

무함마드 “지식을 구하라”

우선 이슬람은 지식 탐구를 공개적으로 권장하는 입장을 취하는 종교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서는 그러한 취지로 “지식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같을 수 있느냐?”(39: 9)라는 구절이 있으며, 예언자 무함마드도 자신의 언행록 ‘하디스(Hadith)’에서 “지식을 구하라. 중국에 가서라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다” “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보다 값지다” “학자는 예언자들의 진정한 후계자”라며 지식탐구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리고 1년에 한 차례 세계 각지에서 온 무슬림들이 성지 메카에서 모이는 ‘핫즈(Hajj·순례)’ 또한 다양한 사고와 학문, 문화를 교류하는 세계적 시장으로 여겨졌다. 물론 이슬람 교의에 대한 지식을 우선시하지만 이슬람교는 전반적인 학문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향후 무슬림들이 이슬람 국가 발전에 필요한 지식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하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이는 과학 지식은 단지 교회에 봉사해야 한다며 학문을 등한시한 중세 기독교의 태도와는 대조되는 진취적인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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