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작년 상하수도 처리 기준 올렸지만 실제 수리 없었다
- 73년간 최대순간풍속 상위 10건 중 6건은 2000년 이후 발생
- 눈앞에 자연재해 호들갑 떨면서 금방 '먼 나라 이야기'
- 내진설계확인서 위조한 건축사의 안일함
7월27일 집중호우로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이 무너졌다.
지난 1년만 돌아봐도 이상기후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초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곤파스가 한반도 서해안에 상륙해 서울을 비롯한 중북부 지역이 큰 피해를 보았다. 곧이어 추석 연휴에 서울에 집중 호우가 내려 광화문광장이 침수됐다. 겨울에는 영동지역에 엄청난 폭설이 내려 도로가 끊기고 마을이 고립되고 배가 가라앉았다. 올 7월 말에는 이틀간 461㎜라는 기록적인 물폭탄이 중부권에 쏟아지면서 전국적으로 40여 명이 숨지고 사상 초유의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했다.
과거 같으면 ‘기상이변’이라 할 만한 기상 현상이 이제는 ‘일상’이 됐다. 그런데도 자연재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그저 자연의 힘에 경이로움을 품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복되는 자연재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보다는, 임시방편적인 대책만 쏟아진다.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
건축이나 토목 구조물의 구조설계기준은 태풍, 폭설, 지진 등과 같은 자연재해에도 건물이나 구조물이 안전하게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일정 강도 이상의 바람, 적설, 지진하중 등을 고려해 설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건물이나 구조물은 그 수명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 이러한 하중에 대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통 50년, 100년 주기 이상의 큰 하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일반적으로 건축물 또는 구조물의 파괴는 거의 태풍 등 강풍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설계기준에서 바람하중은 강풍에 의한 파괴를 방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산정된다. 우리나라에는 해마다 2~3개의 태풍이 연례행사처럼 온다.
기상청은 최근 하루 최대풍속이 가장 컸던 10대 태풍을 발표했다. 다행인 것은 현재까지 발생한 태풍의 경우, 건축구조기준에서 제시한 설계 값이 실제 측정된 값보다 컸다는 점이다. 즉 건축구조기준을 지킨 건축물이라면 현재까지 불어온 태풍의 최대순간풍속을 견딜 수 있다.
눈(雪) 역시 마찬가지다. 적설하중은 보통 재현기간 100년을 기준으로, 설계 대상 건축물의 용도와 중요도에 따라 설계된다. 설계 기준에서 제시하는 적설하중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측정된 기상 자료보다 대부분 상위에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최근 태풍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발생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풍의 경우 73년간 최대순간풍속이 컸던 상위 10건 가운데, 2000년 이후 발생한 것만 6건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안전불감증
학계 전문가, 해당 분야의 엔지니어들은 구조설계기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가 자연재해 또는 천재지변이라고 이야기하는 기상 현상들을 예측하고 미리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풍이 강해짐에 따라 기준값을 늘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미 있는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건축물이 구조설계기준에 따라 정확히 설계되고 정당한 인허가 절차에 따라 승인되고, 시방서에 따라 원칙대로 시공된다면 당연히 그 건축물은 안전해야 한다. 하지만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나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처럼 기존 법이 지켜지지 않아 끔찍한 참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현행 하수도법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장(특별시장·광역시장·시장 또는 군수)은 하수의 유역별로 20년 단위 ‘하수도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5년마다 그 타당성을 검토해, 결과에 따라 공공 하수도의 시설규모 및 배치, 방류 지점 등을 고려해 공공하수도를 설치해야 한다.
1983년 처음 하수도 기본계획이 수립된 이후 현재 서울 지역의 하수도 시설은 10년 설계 빈도로 시간당 75㎜ 이내의 비를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과거에는 이 정도 수준이면 빗물 관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 기준으로는 더 이상 폭우를 감당할 수 없다. 지난해 추석 연휴 폭우를 겪은 뒤 서울시는 이 기준을 시간당 95㎜(30년 설계 빈도)로 상향 조정했지만, 기준만 올렸을 뿐 현재까지 서울의 하수관은 대부분 시간당 71~75㎜의 우수를 처리하는 규모다.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이밖에도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안전불감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건물 옥상에 철탑 구조물을 세우면서도 대부분 태풍을 생각하지 못한다. 폭설과 태풍 때문에 비닐하우스 붕괴가 걱정된다면 그에 대비해 비닐하우스를 좀 더 튼튼하게 지어야 한다. 비용 부담도 없다. 적은 비용으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별도 대책을 마련하면 된다. 파이프를 강한 것을 쓴다든지 더 내구성 강한 자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자가용을 마련하면 대부분 자동차 손해보험에 가입한다. 스스로 위험에 대비하겠다는 속셈이다. 그러나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이나 자가 소유 건물을 개보수하거나 신축할 경우에는 전문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시공업자에게 전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공업자는 비용절감을 위해 대부분 인허가상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전문 엔지니어를 찾기보다는 본인의 경험을 내세워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기준을 무시하고 시공한다. 그러다보니 건물의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설계기준(보험)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주기적으로 건강 진단을 받는다. 평생 병원에 드나들지 않던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건강진단을 받는다. 그런데 건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병이 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건물은 그저 막연하게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안전하게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면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건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 든다. 그래서 정기적인 건강진단이 필요하다.
건물도 나이를 먹는다
지난 3월, 건축 설계와 인허가를 담당하는 건축사 100여 명은 3층 이상 건물 건축 허가를 받을 때 제출하는 내진설계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이 무더기 적발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했다. 가뜩이나 이웃나라 일본이 심각한 지진 피해를 당해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나오는 시점에서, 전문 기술자의 안일한 태도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정부에서 1988년부터 도입한 내진설계확인서는 요식 행위를 위한 절차는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 대중, 심지어 다수 건축사까지 우리나라가 지진 안전지대라고 믿고 내진설계확인서를 요식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상이변이나 건물의 안전에 대한 태도가 이중적이다. 자연재해가 코앞에 닥쳤을 때는 호들갑을 떨며 이성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먼 나라 이야기인 듯 비합리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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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기본과 원칙을 외면해서는 어떤 훌륭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결국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정해진 기준과 원칙을 지키며 자연재해에 맞서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한다면 그 피해는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기준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실무 건축구조기술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건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엔지니어를 장사꾼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인허가를 담당하는 실무자들도 법과 기준에서 요구하는 원칙에 충실하게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승인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원칙 없는 일부 엔지니어들이 기본 원칙에 충실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