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를 찾아서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1-08-19 16: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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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를 찾아서

    ‘그리스인 조르바’<br>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482쪽, 1만800원

    마침내 나는 서가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꺼내 들었다. 독자여, 이제야 불멸의 자유인 ‘조르바’를 소개함을 용서하시라. 굳이 이유를 밝히자면, 나는 그리스로 향하지 않고는 조르바를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7월14일 오후 9시, 아테네 남서쪽의 외항(外港) 피레우스 항구. 크로노스 팰리스 호가 위용을 자랑하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태양은 번갯불처럼 뜨거웠고, 어둠은 늦게 찾아왔다. 세계에서 몰려온 엄청난 이방인들 틈에 끼어 크레타행 크로노스 호에 승선했다.

    연일 40℃에 육박하는 태양의 잔광 속에 후끈한 열기와 땀 냄새, 그리고 멀리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어우러져 야릇한 전율을 일으켰다. 5층 객실에 짐을 풀고, 8층 선상으로 올라갔다. 물결은 잔잔하고, 미풍이 불고 있었다. 어느덧 바다 저편, 아니 하늘 저편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저 달이 지고 해가 뜰 즈음이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나고 묻힌 크레타에 도착할 것이었다.

    항구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죽기 전에는 읽으리라, 마음먹는 소설들이 있다. 너무 유명해서 읽기도 전에 내용을 거의 알아버린 소설들, 예를 들면 호머의 ‘오디세이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단테의 ‘신곡’, 스탕달의 ‘적과 흑’과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우리는 호머에 의해 고대 그리스와 그 사람들을, 보카치오와 단테에 의해 14세기 이탈리아와 그 사람들을, 스탕달과 플로베르에 의해 19세기 중반 프랑스와 그 사람들을,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해 19세기 말 러시아와 러시아 사람들을, 그리고 카잔차키스를 통해 20세기 그리스와 그리스 사람들을 비로소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그리스란, 20세기를 거쳐 현대의 그리스란, 조르바를 통하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조르바란 누구인가.

    나는 주머니에서 단테 문고판을 꺼내 들었다. … 어디를 읽는다? ‘지옥편’의 불타오르는 암흑? … 인간의 희망이 최고의 감정 기준이 되는 대목으로 들어가? 나는 마지막을 취했다. … 문득 방해를 받고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두 개의 눈동자가 내 정수리를 꿰뚫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급히 유리문 쪽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앞의 책 중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서사적인 골격은 작가(카잔차키스의 분신)이자 크레타 섬의 갈탄광산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사업을 도모하려는 ‘내’가 만나고 겪은 조르바라는 그리스 사내 이야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초인(超人)에 관한 야망과 충동에 사로잡혀 이 세상일에 만족 못한 채, 온통 책/문자의 세계에 빠져 살아온 인간. 반면 조르바는 문자로 기록하거나 기록된 책/문자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운 본능과 직관을 좇으며 살아온 인간. ‘나’의 정확한 나이는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며, 카페에서 내가 전하는 조르바의 나이와 첫인상은 아래와 같다.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 하나가 유리창을 코로 누른 채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겨드랑이에다 다소 납작해진 보따리를 하나 끼고 있었다.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냉소적이면서도 불길같이 섬뜩한 그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 그는 나를 가늠해보는 것 같았다. 자기가 찾아다니던 사람인지 아닌지 보는 것 같았다. 시선이 만나자 그 낯선 사람은 힘차게 팔을 뻗어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탁자 사이를 지나 내 앞에 우뚝 섰다. “여행하시오?” 그가 물었다.

    -앞의 책 중에서

    단테의 ‘신곡’, 그중에서도 ‘인간의 희망이 최고의 감정 기준이 되는 대목’을 읽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나 대뜸 ‘여행하시오?’라고 물은 조르바에게 ‘나’는 책을 덮고, 앉으라고 말한 뒤, 샐비어 술을 한 잔 권한다. 그러자 그는 콧방귀를 뀌며 샐비어 대신 럼주를 외친다. 럼주를 홀짝거리는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타고난 성질과 그간 살아온 바대로 호쾌하고 거칠게 내뱉는다.

    “닥치는 대로 하죠. … 광산에서 일했지요. … 그런데 악마가 끼어들고 말았지요. 지난 토요일 밤에 공연히 그래 보고 싶어서 그날 시찰 나온 우두머리를 붙잡아 팼지 뭡니까? … 젊은 양반,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이야기 아시겠지?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을 보고 철자법 배우겠다는 생각은 당신도 안 하시겠지? 물레방앗간 집 마누라 궁둥짝, 인간의 이성이란 그거지 뭐.”

    -앞의 책 중에서

    조르바가 내뱉은 ‘인간의 이성’이라는 정의가 그동안 ‘내’가 읽어온 책에는 없었지만,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고, 그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인데다가 벌레 먹은 나무처럼 풍상에 찌들어 있지만, 내면에서 솟구치는 거침없는 야성의 언어와 몸짓에 점점 매료되어 길동무로 사귀게 된다. 크레타 섬으로 가는 길에 새로 사귄 이 길동무가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그의 옆구리에 끼고 있던 보따리 속에 들어 있던 ‘산투르’라는 악기다. 산투르는 조르바라는 한 인물의 기질과 성격을 창조하는 데 기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와 리듬, 나아가 그리스인의 혼을 일깨우는 비범한 소재다. 알렉시스 조르바. 그는 어디에, 또 누구와 있든 언제나 산투르와 함께했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산투르를 켜며 춤을 춘다.

    “스무 살 때였소. 내가 그때 올림포스 산기슭에 있는 우리 마을에서 처음 산투르 소리를 들었지요. 혼을 쭉 빼놓는 것 같습니다. 사흘 동안 밥을 못 먹었을 정도였으니까. … 있는 걸 몽땅 털어 몇 푼 더 보태 산투르를 하나 샀지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바로 이놈입니다. … 산투르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 때는 산투르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앞의 책 중에서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곡괭이와 산투르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손’, ‘나’는 조르바야말로 그동안 찾아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임을 깨닫고는, 벅찬 마음으로 갈탄광산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의한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주겠소. …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에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앞의 책 중에서

    7월15일 새벽 5시30분. 피레우스 항을 출발한 크로노스 팰리스 호는 크레타 이클라리온 항에 도착했다. 배가 항구에 닿자, 반기듯 갈매기들이 활기차게 날고 있었다. 갈매기 날갯짓 속에 동명(同名) 영화에서 조르바 역할을 맡은 앤터니 퀸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부조키(그리스 식 만돌린) 가락에 추임새를 넣어 춤추던 모습이 어른거렸다. 앤터니 퀸 주연의 영화 덕분에 원작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뒤늦게 전세계 독자에게 알려져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정독을 요하지 않는다. 어디를 펼쳐 읽어도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들과 장면들로 황홀해진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한두 가지를 꼽자면, 갈탄광과 새로 벌인 벌목 사업에서 쫄딱 망한 뒤 파도 치는 해변에서 조르바와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춤추는 장면. 그리고 모든 것을 거덜내고 사라졌던 조르바가 죽은 뒤 세르비아로부터 날아온 편지 속 사연. 편지 말미에 조르바는 자신의 분신인 산투르를 ‘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7월15일 오후 4시30분. 크레타, 베네치아인들이 쌓은 메갈로카스트로(大城郭)에 올랐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의 살아 있는 심장을 품은 채 대성곽의 돌 기단 위에 잠들어 있었다. ‘최후의 유혹’으로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한 탓에 그의 묘석에는 석비(石碑) 대신 가로세로 길쯤한 나무 십자가가 엉성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모습이 꼭 ‘키가 크고 몸이 마른’ 조르바가 날개 큰 새 알바트로스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춤을 추고 있는 형상처럼 보였다. 나무 십자가가 길쯤하고 앙상한 대신 푸른 하늘과 대기, 그리고 멀리 짙푸른 에게 해가 좀 더 많이 눈에 들어와 보였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등지고 묘석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해독할 수 없는 그리스어로 비명(碑銘)이 거기 새겨져 있었다. 성곽을 내려오는 길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펼쳐보니 다음과 같은 뜻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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