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아빠가 아이 교육 책임지는 ‘헬리콥터 대디’ 시대

온종일 아이 주변 맴도는 멘토 아빠, 나침반 아빠, 홍익 아빠

  • 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ern52@hanmail.net

    입력2011-08-22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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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 덕에 대학 갔어요”
    • “요즘엔 어머니회보다 아버지회가 대세”
    • 아버지 대상 교육 프로그램 열풍
    아빠가 아이 교육 책임지는 ‘헬리콥터 대디’ 시대

    과천 관문초등학교 아버지 모임 ‘조아모’ 김규원 부회장과 딸 한슬양.

    회사 부도로 40대 초반에 실직자가 된 한희석씨는 막노동판에서 일한다. 힘든 일상이지만 열과 성을 다해 키우는 세 자녀는 늘 그의 자랑거리다. 특히 큰딸은 지난해 고려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뒤 전 과목 A+ 성적표를 받아와 그를 기쁘게 했다. 딸의 성공을 위해 오랜 기간 함께 땀 흘렸기에 더욱 기뻤다.

    한씨가 딸 교육에 관심을 기울인 건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온 가정통신문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조금 부족하고 그 때문에 교우관계도 원활하지 못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알고 보니 딸은 학급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막막했다. 아내의 벌이까지 합쳐도 월 100만원 남짓한 수입에 자녀는 세 명. 사교육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아빠가 직접 나서겠노라 결심했다.

    “아빠가 있다”

    당장 그날부터 큰딸에게 수업 태도에 대한 조언을 시작했고,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일 교과서를 검사했다. 모르는 게 나오면 수업이 끝나는 즉시 교사를 따라 나가 질문하도록 하고, 아이가 수업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면 각 과목 교사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어찌나 유난했던지 학교에 소문이 퍼져 나중엔 그의 전화를 받지 못한 교사들이 “내 과목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할 정도였다. 논술 교육을 위해서는 매일 신문 칼럼을 스크랩해 책상에 올려놓고 밥 먹을 때마다 그 내용을 소재로 토론을 벌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한씨의 꾸준한 관리 덕에, 중1 때 학급 인원 38명 중 27등을 하던 딸은 중3 기말고사에서 전교 5등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명문대에 진학했다. 한씨의 사례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 성공사례 공모전’에서 학부모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런 아빠가 비단 한씨뿐일까. 그렇지 않다. 한동안 하루 종일 아이 주위를 맴돌며 자녀교육에 ‘올인’하는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이 트렌드였다면, 요즘엔 중장년층 젊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헬리콥터 대디(helicopter daddy)’가 늘어나고 있다. ‘친구 같은 아버지’를 일컫는 ‘프렌디(friend+daddy)’라는 말도 널리 쓰인다.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열성 아빠’ 김수봉씨 사례를 보자. 미국 듀크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딸을 둔 김씨는 10여 년 동안 직접 딸에게 영어를 가르쳤다며, 자신의 교수법을 담은 ‘미 명문대에서 통하는 영어, 나는 이렇게 가르쳤다’는 책을 냈다.

    ‘영재 아빠’로 여러 언론 매체에 소개된 이상화씨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게 불안해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고 2년간 현장 경력을 쌓은 뒤 직접 어린이집을 열었다. 큰아들 재혁이가 18개월 때 일이다. 지금 대전의 한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며 영재 수업을 받고 있는 재혁이는 이때 이미 한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세 살 때 한자 자격증을 땄고, 다섯 살 때는 국가공인 워드프로세스 자격시험을 통과했다. 재혁이는 만 6세가 되기 전 4개의 자격증을 따고, 2500여 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유명해졌다. 재혁이가 두 돌이 채 되기 전부터 이씨가 매일 재혁이와 함께 도서관 나들이를 한 덕분이다.

    “재혁이가 24개월이 됐을 때부터 일상적인 대화를 모두 영어로 했어요. 아이에게 영어 CD를 듣게 하거나 책을 읽게 하면 ‘혼자’라는 느낌을 갖게 될 것 같아 제가 함께 이야기 나누는 방법을 선택한 거죠.”

    현재 재혁이의 영어 실력은 미국 초등학교 4~5학년생 수준이다. 이씨는 “미국 초등학교 5~6학년생 수준이면 우리나라 수능시험에서 영어 과목 만점을 받는다더라”며 뿌듯해했다. 재혁이의 꿈은 외교관. 이씨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쓴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를 선물하고, 외교와 관련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빠짐없이 챙겨주는 등 재혁이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머니회? 아버지회!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는 ‘열성 아빠’들이 늘면서 학부모 사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학교마다 으레 있는 어머니회와 별개로 ‘아버지회’가 속속 결성되고 있는 것. 경기도 과천시 관문초등학교 ‘조아모(좋은 아버지 모임)’는 지난 4월, 평소 자녀교육에 관심 많던 아버지 8명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이 모임의 올해 목표는 ‘절친 아빠-멘토 아빠-나침반 아빠-홍익 아빠’. 아이와의 소통을 통해 먼저 친해진 다음,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고, 나아가 인생의 지침이 되며, 마침내 아이를 봉사와 나눔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존재로 키우자는 뜻을 담은 것이다. 모임 회장 민성욱씨는 초등학교 6학년과 2학년에 다니는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요즘 젊은 아버지들은 가정에 무심하던 과거의 아버지와 다르다. 아이를 매우 사랑하고 친해지고 싶어 한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학교에서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의 바람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교사, 학생 모두 행복한 ‘해피 스쿨’이 되는 것”이다.

    아빠가 아이 교육 책임지는 ‘헬리콥터 대디’ 시대

    관문초등학교에서 열린 1박2일 뒷뜰야영 참가자들.

    광고기획사 대표로 ‘조아모’ 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김영도씨는 아들과 딸이 각각 5학년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제대로 해준 게 없다. 아버지 모임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못 해준 걸 다 해 준 듯해 뿌듯하다”고 했다. 딸 혹은 아들과 단둘이 영화 보기, 아이가 싫어하는 일 강요하지 않기 등을 꾸준히 실천 중이다.

    부회장 김규원씨는 초등학교 6학년 딸과 단둘이 체험학습과 역사 기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는 “대학 입시가 입학사정관제로 바뀌면서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리더십을 길러주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모임에 가입하면서, 아이가 전교회장 등 학생 대표가 되는데 내 활동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품었다”고 말했다.

    이런 ‘열성 아빠’들이 모인 아버지회는 학교에서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조아모’는 7월 학교 운동장을 빌려 자녀와 함께 하는 1박2일 체험캠핑 ‘뒷뜰야영’ 행사를 열었다. 23명의 아버지와 자녀를 포함한 가족·교사 등 100여 명이 참가한 행사다. 김영도씨의 딸 지원양은 “야영하는 날 새벽에 비가 엄청 많이 왔다. 아빠가 빗속에서 이리저리 뛰면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모습에 감동했다. 아빠와 많이 가까워진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한 ‘2010 학부모 학교 참여 우수 사례’에서 우수상을 받은 서울 신동중학교의 ‘신동아버지회’는 지난해 7월 47명의 전문직 종사 학부모를 직업별 특별강사로 초청해 직업세계에 대해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신동아버지회’의 공식 회원은 70명. 하지만 각종 모임 때는 100명 이상이 참석한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명예교사, 동아리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능을 기부하는 아버지들까지 포함하면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버지 수는 700~800명에 달한다.

    아빠 회사 체험하기

    서울 신사중학교도 5월 ‘진로의 날’ 행사를 열고 아버지 15명을 학교로 초청해 직업세계에 대한 특강을 진행했다. 둘째 아들이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아버지회’ 회장 박봉권씨는 성형외과 의사로, 이날 의료계에 대한 특강을 맡았다.

    “학부모가 학교에 신경 쓰는 만큼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아이에게 아빠는 항상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려 한다”고 말하는 박씨는 외교관을 꿈꾸는 큰아들을 위해서도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술대회 등 해외 세미나에 참석할 때 종종 아이와 동행하고, 해외에 나가면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 하면서 아이가 외국 사람과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도록 하는 식이다.

    김현태 신사중학교 교무부장은 “우리 학교는 5년 전 서울지역 학교 가운데 가장 먼저 아버지 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학부모 40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아버지 직장에 아이들이 찾아가 직접 진로를 탐색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성봉 서울시교육청 진로교육과장은 “요즘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할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성취 동기가 생기기 때문에 교육청 차원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아버지 직장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장려하고 확대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열성 아빠’가 많아지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기구, 학교와 학부모 관련 단체들도 앞 다퉈 아버지교육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호응도 뜨겁다. 지난 7월 전북교육청은 ‘닮은 듯 다른 두 남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1박2일 해양캠프를 열었다. 도내 중고생 아들과 아버지 80명이 참석했다. 서울 용산구청은 6월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와 연계해 4주에 걸쳐 ‘열린 아버지학교’를 열었다. 주 1회, 하루 4시간의 강의였지만, 아버지 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서울시교육청의 ‘2010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 성공 사례 공모전’에서 학부모교육기관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서울 영원초등학교는 지난해 ‘아버지학교’를 열면서 정원을 30명으로 제한했지만 신청자는 49명에 달했다.

    재단법인 ‘행복한 학부모’가 7월 개최한 제1회 아버지학부모포럼에도 주최 측 목표 인원 50명의 2배가 넘는 아버지가 몰려들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손석현씨는 건설업체 대표로 초등학생과 고교생 두 아들을 뒀다. 전국 건설 현장을 다니며 일하느라 아이들 양육을 아내 손에 맡겨왔다는 그는 “큰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갈등이 생겼다. 아내의 권유로 참석했는데, 강사로 나선 문용린 교수의 ‘행복한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독단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아이들과 대화가 잘 안됐던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와 대화가 없었던 게 생각나고, 자식에게도 똑같이 한 것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포럼 참석 후 손씨는 마침 방학을 맞은 아들과 틈날 때마다 배드민턴을 치고, 자신이 일하는 건설 현장에도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는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본 아들이 다가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전에는 얼굴이 마주치면 말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는데 지금은 진로문제를 상의할 정도로 가까워졌다”며 뿌듯해했다.

    포럼에 앞서 재단 측은 대기업 직장인 106명(남 78명, 여 27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학부모 교육수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32.1%가 학부모 교육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88.7%는 ‘자녀교육 및 학교 참여 관련 학부모 정보제공과 교육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매우) 필요하다”고 답했다. 나아가 ‘회사 근처에서 학부모 교육을 실행할 경우 참여 의사’를 묻는 질문에 83%가 “있다”고 답해 자녀교육을 위한 학부모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학부모 교육의 필요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는 ‘자녀에 대한 이해’ ‘자녀 인성지도’ ‘자녀 진로지도’ ‘자녀 학습지도’ 순으로 꼽았다. 그 외 ‘교육정책 및 학교 이해’와 ‘학부모 학교 참여’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달라지는 아빠들

    8월 셋째 주 수요일 진행될 ‘아버지 학부모포럼’ 제 2회 행사 때는 아버지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대담이 마련돼 있다. 현재 참가신청자는 ‘선착순 100명’을 넘어섰다. 이정호 재단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에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며 학부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아이가 A급이라도 학교가 B급이면 아이도 B급이 된다. 우리 아이에게만 공들인다고 해서 결코 A급이 될 수 없다. 학교가 A급이 되려면 교육 환경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학부모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해 매월 셋째 주 수요일마다 ‘아버지 학부모 포럼’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이 총장은 변호사로, 나이 마흔에 얻은 첫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다 ‘행복한 학부모’ 재단 발족에 참여하고 사무총장까지 맡았다. 그는 10여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명문대생의 어머니 살해 사건과 수능시험 정보공개 관련 소송 등을 진행하며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국선변호사로 활동하며 소년범 사건을 수임해온 그는 “아이가 여러 번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재판을 받게 되면 판사에게 ‘꼭 부모 교육을 명령해달라’고 부탁한다”고 밝혔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남이 보면 친아빠가 아니라고 할 것”이라는 아내의 핀잔을 들을 정도로 엄하게 자녀를 대했던 그는 가족과 함께 1년간 미국 연수를 다녀오면서 교육관이 바뀌었다. 대학 이전의 학창 생활은 ‘인생에 꼭 필요한 교양과목을 배우는 시기’라는 걸 깨닫고, 이제는 공부하라고 말하는 대신 함께 운동하고 대화를 많이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학부모정책팀’을 신설하고 지난해 학부모지원과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학부모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학부모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학교를 중심으로 한 아버지 모임은 전국적으로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아버지가 자녀교육에 참가하는 건 21세기 트렌드”


    아빠가 아이 교육 책임지는 ‘헬리콥터 대디’ 시대
    한때 “자식을 명문대학에 보내려면 할아버지의 돈과 아버지의 무관심이 필요하다”는 우스개가 유행한 적이 있다. 자녀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 붓는 ‘헬리콥터 맘’의 득세와 상대적으로 자녀교육에 소홀한 아버지의 모습을 동시에 비꼬는 풍자였다. 그동안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을 아내에게 맡기는 대신, 막대한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투 잡·스리 잡을 마다않고 사회생활에 몸 바쳐왔다. 그러다 한 번, 아이 교육 문제에 훈수라도 두면 “알지도 못하면서 왜 갑자기 끼어드느냐”는 핀잔을 듣는 게 우리 아버지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문용린 교수는 “이런 상황은 사실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경제권만 아내한테 준 게 아니다. 자녀교육에서도 완전히 소외돼왔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가정 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의 삶과 교육에 같이 관여해야 한다. 아이가 한창 공부에 집중하는 중·고교 때 뒤늦게 관심을 두고 간섭해봤자 효과도 없다”고 했다.

    과거의 아버지는 그러기 힘들었다. 밤낮 없이 일해야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만큼 경제적으로 힘겹고, 직장 문화도 척박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 전반에 여유가 생겼다. 문 교수는 “30~40대 젊은 세대에게는 그들의 아버지가 축적해놓은 풍요가 있다. 부모 세대의 헌신 덕에 좋은 학벌을 갖게 됐고, 부모형제를 부양할 부담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니 생각이나 삶에 여유가 있다. 그런 분위기가 자식에게 눈길을 돌릴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에게 주는 양육 효과와 영향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는 다양한 영양소 못지않게 부모 모두의 사랑이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엄마는 아이들의 병참기지입니다. 배고프면 밥을 먹이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는 등 아이에게 필요한 걸 해주지요. 반면 아버지가 아이에게 주는 건 꿈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바깥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키우고 무지개를 그리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아버지는 아이에게 집이 아닌 사회와 세상을 볼 수 있는 창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버지가 아이에게 꿈을 불어넣는 창문이 되려면 집에서 많이 떠들어야 합니다. 하버드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정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한 아이일수록 어휘력이 좋다고 해요.”

    문 교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아이들의 어휘력을 추적, 조사한 하버드대 연구팀 캐서린 스노우 교수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며 식사한 집 아이일수록 풍부한 단어를 쓸 줄 알고, 이해력이 높다. 독서를 많이 하게 되고, 그것이 텍스트의 이해도를 높여 결국 학업성적도 우수해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버지들은 아이에게 ‘과잉보상’하거나 ‘과잉공격’ 성향을 보여왔어요. 가정과 자녀에게 평소에 소홀했던 걸 만회하기 위해 비싼 선물과 풍족한 용돈을 주는가 하면, 아이의 생활태도나 성적에 대한 불만을 어느 날 갑자기 터뜨리는 식이었지요. 아버지가 더 이상 자녀교육에서 소외되지 않고 ‘과잉’을 벗어나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우선 아이와 대화해야 합니다. 대화를 하기 전 반드시 아이 기분을 살피고 아이를 행복하게 만든 다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야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어요.”

    문 교수에 따르면 아이와 대화하려면 아이를 알아야 하고 아이가 뭘 원하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어떤 방면에 소질이 있고 무슨 꿈과 열망을 품고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남자라고 자녀교육에 무심하게 사는 건 구시대적인 생활방식입니다. 요즘 젊은 아버지들 사이에서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움직임이 시작되는 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에요. 21세기의 트렌드는 아버지가 가정 운영과 자녀교육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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