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시골 외가에 내려가 농사짓는 모습을 봤어요. 텃밭을 가꾸면 재밌겠다 싶어 모임을 시작했죠. 원래는 회원 열 명이 한 고랑씩 맡아 일구는 작은 동호회였는데 지난해 여름 부임한 송인택 지청장이 관심을 기울이시면서 규모가 커졌어요. 지금은 1320여㎡(약 400평)의 땅을 개간해 40여 종의 과일·채소를 재배합니다.”
김 검사는 송 지청장이 “인내와 열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수사와 농사는 닮은 점이 많다. 속이 꽉 찬 열매를 거두기 위해 땀 흘리는 농부의 마음을 알면 수사도 더 잘할 수 있다”며 텃밭 회원들을 독려한다고 했다. 그리고 농사 경험도 풍부해 아침마다 밀짚모자 쓰고 장화 신은 채 텃밭에 나갈 뿐 아니라 사비를 털어 농기구를 마련할 정도로 관심을 쏟는다고 한다.
도심에서 텃밭을 가꾸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26년째 세탁소를 운영하는 박달병씨는 8년차 ‘농부’다. 단독주택 마당을 텃밭으로 일군 뒤 아내와 번갈아가며 아침저녁으로 돌본다. 그는 “지난해 배추 20포기를 수확해 김치를 담갔다. 대문을 타고 올라가는 호박 넝쿨에서 자란 호박으로 호박즙을 만들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박씨의 동네는 오래된 단독주택이 밀집한 지역이라 마당과 대문 앞, 옥상 등 자투리 공간에 텃밭을 만든 가정이 많다. 박씨네는 그중에서도 텃밭 잘 가꾸는 집으로 소문이 나 최근 강동구가 선정하는 ‘개인 텃밭 가꾸기 우수자’로 뽑혔다. 부상으로 텃밭상자 3개를 분양받기도 했다. 박씨는 “구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상자, 흙, 퇴비 등을 공급해줘 고추, 상추, 부추 등을 길러 먹고 있다. 가끔 구청 직원들이 농사를 잘 짓나 점검 나오는데 정성들여 가꿔서 내년에는 더 많은 텃밭상자를 분양받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목표는 텃밭 상자 여러 개를 옥상에 올려, 옥상을 텃밭으로 만드는 것이다.
상자로 만드는 텃밭

도심 텃밭에서 수확한 유기농 먹을거리들.
강동구청은 지난해 민선 5기 이해식 구청장이 취임한 뒤부터 ‘1가구 1텃밭 갖기’ 프로젝트를 전개 중이다. 이후 관내 5개동에 총 15개의 텃밭이 조성됐고,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텃밭(주말 농장 포함)도 16개가 됐다. 강동구가 조성해 분양한 도시 텃밭을 가꾸는 가구는 현재 1600개에 달한다. 강동구는 관내 낙엽퇴비장에서 친환경 퇴비를 만들어 ‘로컬푸드 육성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농가 305곳에 보급하고 있다. 또 구청이 운영하는 지렁이사육장에서 지렁이를 키워 구민들에게 퇴비 제작용으로 분양할 예정이다. 지렁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해 만드는 ‘분변토’는 식물의 생장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동구청 지역경제과 친환경도시농업팀 주성호 주임은 “관내 동 주민센터, 경로당, 유치원, 개인주택 등에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자텃밭도 보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3200여 개가 전달됐다. 우리 청사 옥상에도 10여 개의 상자텃밭을 두고 직원들이 기르고 있다. 올해는 폭우가 많이 내려 상태가 좋지 않지만 다행히 고추와 피망은 싱싱하게 잘 자란다”고 했다. 강동구청 직원들은 과별로 창문 난간에 상자텃밭을 놓고 채소를 기르기도 한다.
“30~40대 젊은 부부와 60대 이상 노년층이 텃밭에 가장 관심이 많아요. 주말이면 3대가 함께 나와 텃밭을 가꾸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주 주임의 말이다. 강동구에서 올해 도시 텃밭 4평을 분양받은 박영란씨는 텃밭 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평소 환경과 안전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채소를 직접 길러 먹으니 안심돼서 좋고, 대학생 아들이 일손을 도우며 농부와 농사일에 대해 점점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기쁘다”고 말했다.
매년 도시 텃밭에서 ‘겉절이 담그기’ 등 체험 행사를 진행 중인 강동구청은 ‘2011 전국기초자치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공약이행 부문에서 ‘친환경 도시 농업’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잠깐 농부’로 사는 즐거움
서울 서대문구 홍제2동 주민센터 옥상에는 주민들이 직접 가꾸는 대형 상자텃밭이 조성돼 있다. 김금란 주민자치위원장은 “모종을 심은 뒤 꽃피고 열매 맺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신기하고 예쁠 수가 없다. 센터 옥상 텃밭을 주민들과 함께 돌보고 가꾸면서 사는 재미를 느낀다”고 웃었다. 이정우 동장은 “지난해 이곳에서 수확한 고추, 상추, 열무 등을 관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에게 보냈다. 올해는 노인정에 보냈는데 텃밭을 통해 나눔이 확산되는 것 같아 더 뿌듯하다”고 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도시에서 텃밭을 가꾸는 사람은 약 70만명에 달한다. ‘주말 농장’에서 벗어나 내 집, 내 마당, 내가 사는 동네에서 텃밭을 가꾸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인터넷에는 텃밭 관련 쇼핑몰과 동호회, 개인 블로그와 카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자신을 ‘랩 하는 프로그래머’로 소개한 경북 안동의 한 남성은 같은 제목의 블로그에 자신의 ‘옥상 텃밭’ 체험 일기를 사진과 함께 올려놓았다. “취미 삼아 또 가족 먹을거리용으로 옥상에서 자그마하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오후 시간대나 주말에 저는 아주 잠깐 농부로 변신한답니다. 오늘은 꽃이 완전히 피었네요. 곧 고추가 열릴 듯합니다. 상추는 묵직하게 자랐어요. 집에서 삼겹살에 채소를 먹을 땐 걱정이 없답니다”라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