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들이 도대체 뭔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바닥에 깔아둔 돌을 덥히는 고릿적 난방 방식 아닌가. 그게 도시에서 도대체 가당키나 한가. 그러나 구들을 그리워하는 이는 여전히 많다. 나는 구들장에 몸을 푹 ‘지지는’ 것이 피로를 푸는 데는 최선이라 여기는 이도 봤고 부침개를 먹으며 구들장에 느긋하게 엎드려 노는 것이 행복의 정점이라고 말하는 이도 만났다. 한 번도 구들방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도 일단 구들방에 들어가면 즐겁게 뒹군다. 한국인의 몸세포 안에는 수천 년 동안 구들에 몸을 눕힌 기억이 각인돼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구들에 관한 즐거운 기억이 셀 수 없이 많다. 그건 깊은 아궁이와 고래(구들 아래 불과 연기가 통하는 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불길과 은밀하고 따뜻하던 굴뚝과도 연동되는 추억이다. 메주를 쑤고 조청을 고고 식혜를 담그는 날의 방바닥의 온도는 집안에 가득한 냄새들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구들은 한국인의 의식주에서 의(衣)를 뺀 식(食)과 주(住)의 근본이라고 말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구들은 급격히 우리에게서 사라져버렸다. 땔나무가 지천인 시골에서조차 전통적 의미의 구들방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천 년 구들장에 몸을 지지면서 추위를 이겨온 우리가 찜질방 말고는 갈 곳이 없어졌다. 창원 인근에서 사업을 하던 안진근(61) 선생이 구들에 주목한 건 그런 이유였다. 아니 그는 자신의 구들사랑을 ‘팔자’라고 말한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 인간에게 절망했을 때,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 구들방에 누워 한숨 자고 나면 절로 힘이 불끈 솟는 것을 경험하곤 했다. 절집과 황토와 땔나무와 아궁이에 특별히 이끌렸다. 그러니까 이번 호 ‘여기 사는 즐거움’의 ‘여기’는 일정한 지역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DNA에 각인된 ‘구들’이 되겠다.
칠불사 아자방의 비밀
“하동 칠불사에 아짜방[아(亞)자방]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지예. 한 번 불을 지피면 온기가 100일을 가는 방이라고 소문이 났지예. 무슨 아궁이가 백일 동안 열기를 보존할 수 있을까. 구들을 도대체 어떻게 놓았는가. 그게 늘 궁금했어예. 스물 몇 살부터 칠불사에 가서 얼씬거렸지예. 칠불사 아짜방은 2000년 전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구들인데 단공선사라는 분이 만들었다고 전해지지예. 해마다 아짜방에 가면서 하나씩 비밀을 벗겨냈어예. 한 번 불을 지폈는데 열기가 백일 동안 간다면 누가 믿겠어예. 그러나 스님들이 거짓말할 리도 없고, 무슨 비밀이 있긴 있겠다 싶었지예.”
구들에 관한 책을 찾아보고 칠불사에 가서 불도 때보고 하면서 안씨는 차츰 아자방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자방의 크기는 48㎡, 한 열다섯 평쯤 된다. 참선하는 스님 서른 명이 빙 둘러앉을 수 있는 큰 방이고 칠불사에서 가장 중요한 방이다.
“옛 기록을 찾아봤더니 장정이 나무를 가득 얹은 지게를 지고 화실(火室)로 들어갔다는 내용이 나와예. 열기가 백일 동안 갔다는 것은 백일 동안 식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백일 동안 탈 수 있을 만한 나무를 화실 안에 미리 꽉 채워놨다는 뜻이더라고예. 불 조절을 해야 하니까 아궁이 양쪽에 보조아궁이가 있어서 거기서 공기 조절을 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놨더라고요. 열역학적으로 봐서 하루에 땔감 1㎏을 땐다면 100㎏을 넣어서 100일을 땐 거지, 1㎏으로 100일까지 갈 수 있게 한 건 아니더란 말이지예. 그런 구조란 사실 있을 수 없지예.”
안씨는 처음 아자방을 구경 간 지 30년 만인 2009년 11월 드디어 아자방의 해체수리를 맡았다. 주지이신 통관스님이 은밀히 아자방의 구들을 새로 놓겠다는 제안을 했을 때 그는 가슴이 뛰었다. 흙과 돌을 걷어내면 거기 신비한 구조가 드러날 것을 기대했다. 스님과 다른 구들장이들의 입회하에 그는 방바닥을 뜯어내고 흙을 걷고 구들장을 들어냈다. 자연석 돌마저 걷어낸 후 고래가 놓인 위치와 구조를 살폈다.
“구들의 축열 기능과 열 분배 구조를 내 눈으로 확인했지예. 규모가 크고 고래 놓인 것이 복잡한 것 말고는 사실 큰 비밀은 없었어예. 고대인이 어찌 이런 난방법을 생각했던가 싶은 경이로움은 있었지만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