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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화제

건축가 김원, 경기도 구리시에 박완서 자료관 짓는다

콘셉트는 품격·내실, 겉치레 싫어한 고인 뜻 따라 공공도서관 부속 건물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건축가 김원, 경기도 구리시에 박완서 자료관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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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원, 경기도 구리시에 박완서 자료관 짓는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도서관에 마련된 박완서 작가 자료실. 구리시는 이 공간을 ‘자료관’으로 확대 이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떠올린 키워드는 ‘박완서의 네 남자’다. 선생은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아버지 대신 믿고 의지하던 오빠를 또 잃었다. 가정을 꾸리고 안정을 찾은 뒤엔 남편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아들마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뒀다. 선생은 생전에 한 글에서 “내 새끼 중의 하나가 봄의 절정처럼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이 세상에서 돌연 사라졌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도 곧 뒤따라가게 될 테고, 가면 만날 걸,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만나서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포옹도 오열도 아니다. 때려주고 싶다. 요놈, 요 나쁜 놈, 뭐가 급해서 에미를 앞질러갔냐 응? 그렇게 나무라면서 내 손바닥으로 그의 종아리를 철썩철썩 때려주고 싶다. 내 손바닥만 아프고 그는 조금도 안 아파하고 싱글댈 것이다. 나는 내 손바닥의 아픔으로 그의 청동기둥 같은 종아리를 확인하고 싶다”고 적었다. 김 대표는 이런 글을 읽으며, 예전에 미처 몰랐던 고인의 삶을 ‘공부하며’ 요즘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했다.

“생전에 선생을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함께 식사한 기억도 있고요. 그런데 그 조그만 부인의 따뜻하고 수줍은 모습 속에 이런 아픔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자기한테 소중한 것을 누군가가, 하나씩 순서대로 빼앗아간 것 아닙니까. 아버지부터 아들까지 차례차례. 그때마다 당신의 하늘이 무너졌을 거예요. 그 경험을 하면서 어떻게 그토록 고운 글을 썼을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 같은 게 있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삭였을까, 그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깹니다. 당분간은 선생의 삶에 대해, 또 네 명의 남자에 대해 좀 생각해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전남 보성군의 태백산맥문학관도 설계한 인물이다. 이때 그는 산줄기를 끊어 거대한 동굴을 파고 건물을 땅 밑으로 집어넣었다. “‘태백산맥’처럼 뼈아픈 이야기를 기념하는 공간을 만들면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문학관에서 건축이 아니라 아픔, 분단,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학관 양옆으로 유리 탑을 올리고 밤마다 벌겋게 불을 밝힌 것은 억울한 원혼들, 수많은 죽은 이의 영혼이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떠 있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문학관은 이렇게 작품과 작가의 삶을 담는 공간이다. 규모가 작을지언정, 자료관일지언정 박완서 선생을 위한 공간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시간이 갈수록 아름답게

건축가 김원, 경기도 구리시에 박완서 자료관 짓는다
김 대표는 “아직은 자료관을 통해 선생의 문학을 보여줄지, 아니면 삶을 보여줄지 결정하지 못했다. 이 자료관이 사실상 문학관과 같은 구실을 하는 거라면 그 안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돌아갈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이 ‘박완서 자료관’에 기대하는 내용을 알아보고 하나씩 생각의 갈래를 정리하려 한다”고 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지금은 ‘토평도서관 내 박완서 자료관’으로 시작하지만, 언젠가는 그 공간이 ‘박완서 자료관이 있는 토평도서관’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작가의 딸 호씨의 바람도 그렇다. 그는 자료관이 소박하지만 정성과 진심이 담긴 공간, 세월이 흐르고 깊이가 담길수록 아름다워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에밀리 브론테나 괴테의 문학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작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그곳이 바로 거창한 문학관이 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후손들의 삶은 이어지고, 작가를 잊지 못하는 추모객들은 그곳을 찾아오고…. 그렇게 서로의 시간과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레 영원히 작가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남게 된 거죠. 저는 어머니도 그렇게 기념되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어머니의 집에 계속 사는 건 어쩌면 그 소임을 하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이곳까지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주고 있어요. 언젠가 제가 세상을 떠나면 누군가 또 이 역할을 하게 되겠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곳이 어머니의 기념관이 된다면,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구리시는 토평도서관 인접 부지를 매입해 ‘박완서 자료관’ 규모를 좀 더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역시 기본 바탕은 ‘품격과 내실’이다. 한국 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대작가이면서도 늘 몸을 움츠린 채 수줍게 웃던 고인의 미소만큼, 따뜻하면서도 아름다운 공간이 완성될지 지켜볼 일이다.

신동아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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