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호

누가 안철수를 두려워하는가

  • 입력2011-09-21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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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교수가 학교(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로 돌아갔다. 옳은 선택이다. 그가 폭발적인 지지여론을 내세워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백두대간에서 돌아온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압박했다면 어렵잖게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아무리 ‘아름다운 관계’라 할지라도 여론지지율 50%가 5%를 누르는 것은 모양 사납지 않다. 한쪽이 야박할 일도, 다른 한쪽이 섭섭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안 교수는 가볍게(?) 양보했다. “박원순 변호사가 우리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분”이라는 이유였다.

    안 교수가 양보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안-박(安-朴) 단일화 합의 이틀 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변호사는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산입니다. 결심을 신중하게 하는 분인데 만일 그분이 결심을 했다고 하면 그분으로서는 이번이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을 활용할 유일한 시기라고 봅니다. 저와 충돌해서 다시는 그분에게 기회가 없게 되는 것보다 당선이 아슬아슬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그분이 원하시면 그쪽으로 밀어드리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안 교수는 이틀 뒤 박 변호사를 만났고, 그의 말을 들어보고 흔쾌히 물러났다. 불과 20분 만이었다. 아무 조건도 없었다. 박 변호사가 답했다. “시장 자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세상,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애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이 아름다운 관계를 계속 유지해가며 우리 시대를 새로운 시대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제 눈으로 세상을 본다. ‘제 눈’은 각자의 가치판단과 이념, 이해관계 등을 반영하고 제게 유리하고 익숙한 잣대로 현상을 해석하고 재단한다. 그것의 집단적 표출이 정치의 언어다. 예컨대 안-박 단일화를 ‘좌파 단일화 정치 쇼’로 매도한 한나라당 대변인의 공식논평은 현 보수여당의 기본 시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당 원희룡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자꾸 그런 식으로 공격해서 상대를 흠집 내려고 하니까 국민으로부터 한나라당이 정신 차리지 못하고 당리당략에 빠져 있다고 비난받기 딱 알맞은 것이다. 기득권에 골몰하는 낡은 정치에 대한 분노를 강남좌파의 쇼라고 매도하는 한 앞으로 한나라당은 어떤 선거에서고 어렵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그 속내야 어떠하든 “안철수 교수가 제자리로 돌아가 우리 사회에 더욱 기여할 수 있게 되었음을 환영한다”는 정도의 품격 있는 논평을 할 수는 없었을까. 지역·이념·계파의 구(舊)정치질서를 초월하는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하는 안철수 신드롬의 의미를 제대로 보고 읽었다면, 자기 당 최고위원까지 분노하는 저급한 논평을 버젓이 내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안-박 단일화를 ‘박원순 서울시장―안철수 대통령’의 역할분담에 따른 정교한 시나리오로 보는 ‘정치 쇼’ 주장 또한 저급하기는 매한가지다. 안 교수는 “사전에 각본이 있었다면 자연스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지만, 공작정치와 음모론에 익숙한 자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존경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서울시장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공직을 권력을 누리는 자리로 여겨온 지가 누천년(累千年)의 일일진대 어찌 그들만을 탓하겠는가. 하지만 이제 국민은 사익(私益)을 위해 공직을 탐하는 자가 아니라 공익(公益)을 위해 헌신(獻身)할 수 있는 인물을 원한다. 안철수 신드롬이야말로 그 결집된 원망(願望)의 소산일 것이다.

    여기에 보수―진보, 우파―좌파의 진영논리, 내 편 네 편이 우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안철수 신드롬에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구태의연한 잣대를 들이댔을 뿐이다. 안철수는 우파인가, 좌파인가? 우리 편인가, 아닌가? 한나라당은 안철수가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며,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하자 대뜸 좌파 공격 모드로 돌아섰다. 정체성이 무엇이냐며 안철수를 의심하던 민주당은 그의 반(反)한나라에 안도하고,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촉발은 한나라당이 했지만 그 혜택을 민주당이 받을 자격은 없다”는 비(非)민주에 당혹했다.

    여야에 비한다면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의 평가가 객관적으로 들린다. 이 대통령은 KBS 좌담회에서 안철수 교수의 모습을 보고 “아!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변화 욕구가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을 우리 정치가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과연 이 대통령이 안철수 신드롬을 객관적 관전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김민전 경희대 교수의 말은 인용할 만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공직은 고소영·강부자로 희화화(戱畵化)됐다. 그 반대편에 전문성과 도덕성, 공적 마인드를 가진 안철수 원장이 등장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안 원장을 초대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객관적 관전자가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공직을 고소영·강부자로 상징되는 사익추구 집단에 배분함으로써 공공성(公共性)의 위기를 자초했다. 더 심각한 것은 연고(緣故) 및 보은(報恩) 인사가 임기 후반기까지 끊이지 않으면서 공공성의 악화가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대통령 임기 끝나기 전에 어떡하든 한 자리 차지하려는 자들이 여전히 줄을 서 있다는 세간의 풍문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公正) 공생(共生)의 의제는 오히려 불신과 냉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이 정권의 권력 엘리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도덕성과 진정성, 공익을 위한 헌신과 실천의 모습을 안철수라는 인물을 통해 찾은 것이 안철수 신드롬의 본질이라면 대통령은 정치권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처지가 못된다. “안철수 태풍에 정당정치의 뚜껑이 날아간”(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 데는 대통령의 책임이 누구 못지않게 크기 때문이다.

    야권 또한 전혀 대안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민주당은 당내 분란으로 내부 리더십마저 흔들리는 처지이고, 진보정당들은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을 계속해 국민 눈 밖에 난 지 오래다. 안철수는 결국 보수의 위기와 진보의 공백이 부른 이상적 대안일 수 있다. 그랬던 안철수는 “누구도 민심을 쉽게 얻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저에게 보여주신 (국민의) 기대 역시 우리 사회 리더십에 대한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남기고 대학으로 돌아갔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아직 그의 이상이 뿌리내리기에는 현실의 우리 정치 풍토가 너무 척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한국사회의 소중한 자산이 공격받고 상처 받아 망실(亡失)될까 하는 우려에서다.

    안철수는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세 가지의 판단 기준이 있다고 했다. 첫째, 내가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지. 둘째,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인지. 셋째, 실제로 내가 일을 잘해서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지.

    그는 첫째 기준인 서울시장직에 의미를 느꼈다고 했다. “또다시 이상한 사람이 서울시를 망치면 분통 터질 것이며, 정말로 자격 없는, 정치적 목적으로 시장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출마 고민을 시작했다고 했다. 셋째 기준인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풀렸다고 했다. 행정능력도 자신 있고 서울시의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되었다고 했다. 다만 둘째 기준인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서울시장직을) 할 수 있는 일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했다. 행정·정치를 하게 되면 최소한 10년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만이 아니고 그 이후로도 정치인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점이 고민이라고 했다(이상 오마이뉴스 인터뷰).

    의문이 남은 상태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의 판단 기준 또한 주관적인 것이다. 검증대에 오르면 그의 기준과는 다른 여러 잣대가 동원될 것이다. 더구나 무소속으로 야당 후보와 경쟁하다가 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자리를 차지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하루아침에 ‘공공의 적’으로 몰락할 수도 있었다. 안철수와 박원순의 입지는 다르다. 박원순의 경우 어떤 형식이든 야권 단일후보가 되는 것이 당위다. 민주당의 1순위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가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민주당의 자체 경선은 맥이 빠졌다. ‘범(汎)야권후보 박원순’으로의 단일화가 요식행위에 그친다면 흥행도 기대하기 어렵다. 안철수 효과가 선거가 있을 한 달여 뒤까지 위력을 보인다는 보장은 없다. 여론과 실제 투표 행위는 다르다. 그 결과에 따라 ‘안철수 주가’도 등락할 것이지만 어차피 그의 손을 떠난 장세(場勢)다.

    안철수는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요?”라고 했다. 대권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부동의 1위였던 박근혜를 위협하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일시적인 거겠죠”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다른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 안철수는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이미 한국 정치의 중심에 진입했으니까.

    누가 안철수를 두려워하는가
    全津雨

    1949년 서울 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저서 :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안철수는 젊다. 이제 마흔아홉이다. 공적 헌신을 통해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가 자신의 고민을 정리하고 새롭게 준비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안철수는 그를 두려워하는 인물, 정치세력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큰몫을 했다. 안철수가 상징하는 공공성과 진정성, 헌신성 및 공감(共感)의 소통 노력을 외면하는 정치인, 정치세력은 다수를 차지하는 20∼40대의 유권자에게서 외면당할 것이다. 누가 안철수를 두려워하는가? 안철수가 두려운 이들은 과연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은 이제 한국 정치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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