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함정임의 핫 픽션 터치

새롭고도 친숙한 모험의 세계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새롭고도 친숙한 모험의 세계

2/2
위에서 만난 네 작품은 정통 문학전문출판사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가 지난해와 올해 제정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그야말로 ‘젊은’ ‘소설들’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 두 상에는 기존의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과 차별화된 하나의 장치가 작동되는데, ‘젊은 소설’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이 그렇다. 곧,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언어가 빚어내는 세상, 또는 문학(풍경). 여기에서, 독자들은 작품을 읽기 전 ‘젊음’에 대한 두 출판사가 제시한 기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2010년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을 대상으로 하고, 작가 경력 10년 이내(문학동네)와 7년 이내(웹진문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금-이곳의 본질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는 7편이, 문학과지성사의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11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김애란(31)의 ‘물속 골리앗’은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작품이고, 이장욱(43)의 ‘곡란’은 ‘웹진문지작품상’의 대상작이다. 2011년 한국 소설계의 지형도를 살펴볼 때, 가장 젊은 소설들, 곧 신인작가의 주목받는 작품 18편이 수록된 두 권을 통해 21세기의 분출하는 새로운 에너지와 육성을 접할 수 있다. 특히 아래의 두 작품.

사라지길 원해. 혀끝이 입술에 부딪히지 않고 발음되는 단어들, 입천장에 혀가 닿지 않고 태어나는 부드러운 언어들, 입술 사이에 암초처럼 걸려 빠져나오지 않는 커다랗고 단단한 단어들, 이런 것들이 사전과 인간의 기억에서 모조리 지워졌으면 좋겠어. 아라비아, 암모니아, 에너지, 에스컬레이터, 메머드, 엘리베이터, 안나 카레니나, 옐로, 에어플레인, 윌리엄, 헬로, 27, 예스터데이, 파인애플, 테이블, 탁구…

-정용준, ‘떠떠떠, 떠’ 중에서



어릴 적 아버지는 말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열심히 살지 않으면 뒤처지고 뒤처지면 끝장이라고 말이다. 난 언제나 그게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결국 그 말대로 살아왔다. 단지 뒤처지지 않는 데 인생을 바쳐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거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난 단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애썼다. 이제 와서 이렇게 그 모든 노력을 별것 아니었다는 듯이 말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정말이지 아주 쉬운 일이다.

-김사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정용준의 ‘떠떠떠, 떠’는 ‘말더듬이 서사’로 불릴 정도로 현대 개인의 소통 문제에 집중하고,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는 ‘분노의 서사’로 느껴질 만큼 격렬하게 절망적이고, 격렬하게 반항적이고, 격렬하게 냉소적이다.

신인이란, 달리 말하면, 막 작가가 된 존재, 그리하여 대중적으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신인의 작품을 읽는 일은 설레지만, 인내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강렬하지만, 미정형의 모색기이기 때문이다. 한국 비평계의 거목이자 독보적인 문학사가(文學史家)인 김윤식은 평생 매년 1월1일 발표되는 신춘문예 당선작과 매달 발표되는 신진 및 중견·원로 작가들의 모든 작품을 읽고, 월평을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윤식 스스로 ‘월평 행위’라 일컫는 그의 지속적인 작업이 한국 문학, 그것도 소설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김윤식의 월평을 통해 수많은 신인 작가의 개성이 드러났고, 그 개성으로 소설사에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하는 소설 읽기와 소설평 쓰기. 김윤식의 월평 쓰기가 하나의 소설사를 이루는 장관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이는 1930년대 이원조의 월평 행위로부터 맥을 잇는다. 이들의 월평 행위는, 기본적으로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바탕으로, 작가들의 시대정신이나 태도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소설 작품을 통해 지금-이곳의 현상을 점검하고, 나아가 장차 어떤 세상이 도래할 것인지 가늠하고, 현실과 가까운 미래의 문제에 대해 작가는 어떻게 대처(생각)하는지까지 엿볼 수 있다.

‘인간희극’이라는 총체소설로 인간의 삶과 세상을 묘파한 작가 발자크는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개인성의 작가로 미켈란젤로 베토벤 등의 천재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창조자’의 반열에 올라 있다. 1830년대 전후의 프랑스와 프랑스 사람들을 알기 위해 발자크 소설을 읽는 것처럼, 21세기 지금-이곳의 본질과 현상을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로 2011년 젊은 작가들의 소설 읽기를 권한다.

신동아 2011년 11월호

2/2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목록 닫기

새롭고도 친숙한 모험의 세계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