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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논란

김형욱 겨냥했던 반국가행위법 위헌 판결로 내란죄 저질러도 국립묘지 행 가능

  • 김유림 기자│rim@donga.com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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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실형 선고받은 안현태 전 경호실장 논란 끝 국립묘지 안장
  • ● 김형욱 전 중정부장 겨눈 ‘반국가행위법’ 때문에 ‘국립묘지법’ 빈틈 생겨
  • ● 심의위 찬성하면 국립묘지 안장 가능
  • ● 국가보훈처 “생전에는 논의 대상 아니다”
제5공화국 경호실장을 지낸 고(故) 안현태씨가 8월6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안씨는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1997년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국가보훈처는 “안씨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죄)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월남전에 참전했고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내며 국가 안보에 기여한 점, 재향군인회 등이 건의서를 제출한 점을 고려해 안장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 결정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이후 국립묘지 안장을 위한 ‘길 터주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묘지는 국가 발전을 위해 공헌한 이들이 명예롭게 잠드는 곳이다. 5·18 구속부상자회 등 시민단체는 “내란죄 등으로 기소돼 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국립묘지를 내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은 폐에서 한의용 침이 발견되는가 하면 천식 증세 등으로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고 있다.

‘또는’ 때문에 빗겨난 내란죄

법률상으로 두 전직 대통령은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립묘지법)’ 제5조에 따르면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 직에 있었던 사람이나 국가장으로 장례된 사람은,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대상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은 2004년 전직 국가원수의 서거에 대비해 모두 8위를 안장할 수 있는 국가원수 묘역을 조성했고 현재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이 안장돼 있다. 고 윤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족의 뜻에 따라 각각 충남 서산과 경남 김해에 안장됐다. 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국립묘지법은 대상자 중 국립묘지 안장을 불허하는 경우를 별도로 명시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거나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 △그밖에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榮譽)를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 제79조 1항 1호 또는 3호에 해당하는 사람 등이다.

이 중 국가유공자법 관련 조항이 논란 대상이다. 국가유공자법 제79조 1항은 범죄 행위가 있던 사람을 국가유공자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호는 국가보안법 위반, 2호는 내란, 내란 목적의 살인, 외환유치, 여적, 간첩, 전시군수계약 불이행 등 형법 위반, 3호는 살인, 존속살해, 미성년자 약취 유인 등 형법 위반, 폭력 등 1년 이상 유기징역 등이다.

국립묘지법 제4항은 국가유공자법 제 79조 1호 ‘또는’ 3호만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했다. 만약 이 법이 ‘1호부터 3호’로 규정했다면 2호 내란죄로 처벌받은 두 전직 대통령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하지만 현행법상 2호 내란죄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 포함된다.

김형욱 겨냥해 만든 ‘반국가행위법’

왜 굳이 제2호 내란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국립묘지 안장 제외 대상에 넣지 않은 것일까?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보장하려는 의도로 의심할 수 있지만, 이 법의 탄생 과정을 아는 이들은 단순한 행정적 오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두 전직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선배이기도 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관련이 있다.

국립묘지법이 제정된 2005년 7월 당시 국가유공자법 79조 2호는 삭제된 상태였기 때문에 국립묘지법 5조 4항은 ‘1호 또는 3호’로 명시했다. 국가유공자법 79조 2호가 삭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본래 79조 2호는 1984년 8월 제정된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 제1항에 해당하는 자(이하 반국가행위법)’에 해당했는데, 1996년 초 반국가행위법이 위헌 판결 나면서 자연스럽게 국가유공자법과 관련된 79조 2호도 삭제된 것. 현재의 국가유공자법 79조 2호는 2005년 국립묘지법 제정 이후 만들어졌다.

반국가행위법은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단 한 사람을 겨냥해 만든 법이다. 김씨는 유신정권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다음은 2005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진상규명위)’의 조사 내용이다.

김씨는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거쳐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했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였지만 1969년 10월 중앙정보부장에서 해임되고, 1973년 3월 유정회 국회의원 명단에서 제외되자 박 전 대통령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1973년 4월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1977년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 전 대통령을 강력 비난했고, 박 전 대통령의 치부를 고발하는 회고록 출간을 추진했다. 정부는 1977년 민병권 무임소(無任所) 장관을 대통령 특사로 미국에 파견해 김씨를 회유하면서, 김 전 중정부장을 실질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외국정부에 도피처 또는 보호를 요청한 자’와 ‘외국에서 귀국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죄상이 현저히 중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반국가행위법’을 제정한다. 그럼에도 김씨는 회고록 출간을 추진했고,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회유와 협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1979년 10월7일 저녁 프랑스 파리 시내 카지노에서 실종됐다.

반국가행위법은 제정 이후 5년간 시행되지 않았지만, 김씨 자서전이 일본에서 ‘권력과 음모’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직후, 재판이 시작됐다. 김씨는 ‘반국가행위법’으로 인해 1982년 3월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에 전 재산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은 피고 궐석 상태로 진행됐다. 부인 신영순씨 등 가족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 대지 400여 평과 중구 신당동 대지 500여 평 등 재산을 몰수당하고 도미(渡美)했다. 1991년 서울가정법원이 김 전 중정부장에 실종 선고를 내려 그는 법적으로 1979년 10월7일 사망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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