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적 시민단체 출신 인사 대거 정치 참여 선언
- 참여연대 “당선자의 공약 실천 과정을 똑똑히 지켜볼 것”
- 최근 1~2년 사이 현직 물러난 직업 운동가 10여 명
- 참여정부 경험의 반면교사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박원순 시장이 종로구 안국동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의 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시민이 일상적인 생활 정치의 주체가 돼야 합니다. 정치에 등을 돌릴 게 아니라 시민 각자가 정치인이 돼야 합니다. …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가치와 정책, 커뮤니티 조직으로 2012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에 기여할 것이며 2014년 지방자치의 혁신을 이뤄낼 것입니다. 대안적인 시민정치주체 형성을 통해 현재의 정치토대를 근본적으로 바꿔낼 것입니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시민의회, 시민정부를 구성하여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가겠습니다. -2011년 3월 ‘내가 꿈꾸는 나라’ 발족선언문
한국 시민운동은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 경실련은 1970~80년대 체제 밖에서 이뤄지던 노동자·학생 중심의 사회변혁운동을 체제 내 운동으로 전환시켰다. ‘시민운동’이라는 이름도 종래의 민중·민주화운동과 구별 짓는 의미에서 직접 붙였다. 이들의 금과옥조는 취지선언문에 밝혔듯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순수한’ 시민운동. 그것이 기존의 정치운동세력과 다른 시민운동의 정체성이며, 권력과의 싸움에서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힘이라 믿었다.
이후 20년 넘게 이어져온 시민운동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당대의 시민운동가들이 속속 정치에 뛰어드는 추세다.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남윤인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하승창 전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등이 함께 만든 ‘내가 꿈꾸는 나라’(내꿈나라)는 발족선언문을 통해 ‘2012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에 기여할 것이며 2014년 지방자치의 혁신을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현재의 정치토대를 근본적으로 바꿔낼 것’이라고도 했다. 선명한 ‘정치 참여’ 선언이다.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
박원순 서울시장의 탄생은 이를 좀 더 분명히 확인시켰다. 박 시장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낙천낙선운동·소액주주운동 등을 이끌었고, 이후에도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에서 시민운동을 계속한 시민운동계의 대표주자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박 시장의 당선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21세기 정치의 대전환, 즉 시민정치라는 ‘메가트렌드’를 입증한 것”이라며 “한국 사회와 정치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사건이고, 또한 21세기 정치의 지구적 변화 추세를 선도하는 사건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박 시장 역시 자신이 시민운동세력의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됐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11월10일 내꿈나라 창립식에 참석해 “내꿈나라가 나를 시장으로 당선시켰다”며 “정치와 시민운동은 다르게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정치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시민운동가의 정치 참여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970년대부터 여성운동에 참여해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을 지낸 이미경 민주당 국회의원은 이 경력을 발판 삼아 15대 국회에 진출했다. 지금은 4선 의원으로 정치권의 주류다. 신지호·조전혁 한나라당 국회의원처럼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진출한 이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 자격으로 기존 정치권에 ‘수혈’됐다는 점에서 지금의 흐름과 거리가 있다. 최근의 특징은 시민운동가들이 스스로 단일한 정치세력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기존 정당에 파트너십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무소속으로 선거전을 완주한 박 시장이 민주당 출신 정치인을 서울시정 스태프로 참여시키는 데서 드러나듯, 최근의 시민운동은 기존 정치권에 수렴되는 것을 거부할 뿐 아니라 나아가 기존 정당을 흡수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며 서울 광화문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 시위 군중.
한국형 ‘무브온’
내꿈나라의 설명도 비슷하다. 내꿈나라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최근 몇 년 사이 시민의 정치적 행동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촛불집회 등을 통해 정치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나타났다. 그러나 현재의 정당 체제는 그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기존의 시민단체 역시 ‘정치적 중립성’에 갇혀 거리에 나온 시민의 정치적인 의견을 담아낼 수 없었다. 이제는 이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 열망을 실현시킬 조직이 필요하지 않을까, 미국의 ‘무브온’처럼 시민이 원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조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한 것이 내꿈나라”라고 설명했다.
무브온은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린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라인 시민단체로 단기간에 50만명의 서명을 받으며 ‘탄핵 반대’를 이끌어 화제가 됐다. 2008년 대선에서도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지지해 그의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고원 교수는 “한국 사회의 무브온은 이미 거리에서 탄생한 상태였다”고 했다. 촛불집회에 대한 설명이다. ‘촛불’이 한국 사회에 메가톤급 영향력을 발휘한 첫해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사고를 당한 미선·효순 양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시초다. 이후 촛불은 2004년 탄핵반대집회와 2008년의 미국쇠고기 수입협정 반대 집회 등에 다시 등장하며 ‘일반 시민의 평화적이고 저항적인 정치 참여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시민운동가들은 촛불의 힘이 사안별로 단절돼 나타나고 현실 정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의 정책 개발과 어젠다 세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행정·입법·사법·언론에 이은 ‘제5의 권력’으로 평가받던 시민단체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급격히 위축된 것도 ‘시민운동의 변화’ 모색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시민운동 진영에 정치조직이 전격적으로 출연한 것은 2010년부터. 배우 문성근씨는 ‘시민의 힘으로 야당을 통합시켜 2012년 대선에서 민주·진보 정부를 세우자’며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같은 해 7월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민단체가 참여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6·2지방선거 이후 시민운동의 진로 모색’이라는 제목의 정책 포럼을 열고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을 구체적으로 모색해보기로 결의”했다. 이후 같은 주제의 포럼과 세미나가 여러 차례 열렸다. 박원순 캠프 사무처장을 맡았던 오성규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지난 5월 열린 한국NGO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방법은 정치다 … 문제는 시민운동에 덧씌워진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굴레가 워낙 강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반사와 같이 시민운동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시민운동은 이미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고, 뉴라이트 단체들의 정치활동은 거의 경계가 없는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또 “미국의 무브온의 경우를 볼 때 서구사회에서도 시민운동과 정치적 역할에 대해 큰 경계를 긋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원순 시장의 출마와 내꿈나라의 창립은 시민사회 내부의 오랜 논의와 모색을 통해 이뤄진 셈이다.
시민운동 세대교체
한 운동가는 “시민운동사회의 세대교체도 이런 변화에 힘을 더했다”고 귀띔했다. 최근 시민단체를 이끄는 주역은 1970년 안팎에 태어나 1990년을 전후해 대학에 입학한 40대 운동가다. 지난 1~2년 사이 거의 모든 단체에서 기존의 ‘대표 선수’가 물러나고 ‘젊은 피’가 전면에 나서는 인사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현재 시민운동사회에서는 1967년생인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비교적 고령에 속한다. 녹색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환경연대, 환경정의 등의 사무 총괄자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시민운동이 활성화된 후 대학을 졸업해 시민단체 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10여 년간 운동가로 경력을 쌓아온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남윤인순 전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오성규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 운영위원장, 최승국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 등 10여 명의 상임대표와 사무처장급이 현장을 떠났다. 이들은 현역에서 물러난 뒤 ‘신(新) 신사유람단’을 꾸려 지난 6월 미국·유럽의 시민운동 현황을 살피는 연수를 다녀오는 등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왔다. 고원 교수는 “시민운동의 역사가 20년이 되고보니 운동 초기부터 활동해온 이들은 혈액순환의 관점에서라도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할 때가 왔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새로운 사회적 구실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고민했고, 그것이 정치 참여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직 시민운동그룹은 이를 근거로 시민정치조직과 선을 긋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이 참여연대·경실련·환경운동연합 등을 거명하며, “이들 단체가 내꿈나라를 통해 정치 행동에 나섰다”고 보도한 데 대해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내꿈나라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전직으로, 시민운동계 선배일 뿐이다. 현재 시민단체에 적을 두고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운동하는 사람에게는 권력을 감시하고, 새로운 정책과 의제를 제안해 실현되도록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정치 쪽으로 넘어간 사람은 후자, 즉 운동이 주장하는 정책을 정치적으로 실현시키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명확히 역할이 다른데 시민운동단체가 정치에 참여한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이런 때일수록 운동은 더욱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단체 내부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했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총장도 “경실련은 지금껏 한 번도 권력 획득을 목표로 운동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경실련이 내꿈나라 등에 참여한다는 일부 보도는 정파적 중립성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경실련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해당 매체는 기사에서 경실련을 제외하는 정정보도를 냈다. 이 해프닝은 최근 시민운동계 내부에서 정치 참여 문제를 얼마나 민감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적 중립성
박원순 시장, 김기식 내꿈나라 공동대표 등 ‘시민세력의 정치 참여’ 전면에서 활동 중인 이들을 배출한 참여연대 역시 ‘시민운동 단체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쪽이다. 박원순 시장이 출마를 결정했을 때 참여연대는 내부논란 끝에 ‘선거캠프에 참여하려면 사직해야 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바 있다. 박 시장 당선 후에도 “박 당선자는 시민운동 출신으로서, 스스로 시민단체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공언해왔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공약했다. 박 당선자를 지지한 시민들은 오늘 이 시간부터 당선자가 약속한 공약 하나하나의 실천 과정을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며 ‘권력 감시와 견제’의 자리에 설 것임을 천명했다. 박 시장이 당선 후 꾸린 ‘희망서울 정책자문단’에 합류한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팀장은 “시민단체 활동가의 시정 자문기구 참여는 이명박·오세훈 시장 시절에도 있던 일이다. 운동가로서 비판할 것이 있으면 비판하고, 협조할 일이 있으면 협조할 뿐, 정치에 참여하는 건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새로운 도전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등장과 시민정치조직의 탄생이 시민운동 진영에 줄 부담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당시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시민운동계의 인물과 의제를 대거 수용했고, 시민사회도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민단체와 정부의 유화관계는 양쪽 모두에 독이 됐다. 시민단체는 ‘정부의 2중대’라는 비판과 ‘유착’에 대한 의혹을 샀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재정을 받아 사업을 진행한 시민단체가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진보적인 시민단체의 구실이 커지자 보수 인사들이 ‘자유주의연대’등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운동 단체를 잇달아 설립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시민사회가 분열되면서 사회 전체가 이념 갈등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참여’를 강조한 노무현 정부의 정국 운영에 큰 부담이 됐다. 노무현 정권 말기 시민운동 세력이 연정 제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에 대한 의견 차이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참여정부는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렸다. 한 운동가는 “당시 시민운동사회가 기울인 원칙적인 ‘견제와 비판’ 노력이 개혁 세력의 정치 능력에 대한 회의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데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과 함께 ‘필드’에서 일했던 진보적인 시민운동단체는 현재 똑같은 딜레마에 놓여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정에 대한 칭찬은 ‘유착 의혹’을 낳아 역풍을 불러올 수 있고, 비판은 시민사회 전반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일부 시민단체(NGO)는 ‘Non Governmental Organization(비정부기구)’이 아니라 ‘Near Governmental Organization(근(近)정부기구)’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서 이런 현상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또 “더 큰 문제는 시민이 시민단체를 정치인 양성소로 여기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며 “이 경우 누가 그들의 권력 비판을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이라고 믿겠나. 시민단체 출신의 정치 진출은 장기적으로 시민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진걸 팀장은 “제도 권력에 접근하는 순간 누구나 예외 없이 감시·견제 대상이 된다는 원칙을 지킨다면 문제될 것 없다고 본다”며 “좋은 뜻을 갖고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일해온 이가 그 활동을 끝낸 뒤 다른 분야에 뛰어드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시민운동의 정치 세력화와 운동가 출신 정치인의 탄생은 계속될 전망이다. 내꿈나라에서는 김기식 공동대표 등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승국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도 “녹색후보를 선정해 출마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이던 2001년 11월 발표한 ‘한국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고민과 대안’이라는 글에서 “(시민단체는) 공동체 규범을 지키기 위해 제도나 권력에 대한 비판, 감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 시민사회운동은 원래 시시포스의 운명을 그대로 닮았다. 언제나 배고프고 고달프고 힘겹다. … 모든 것을 이겨내는 길은 이 혼란한 사회, 엄중한 사회적 과제가 부여된 시대를 우리 시민운동가들이 가장 앞선 비전과 가장 철저한 실천력과 가장 높은 도덕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현재 시민운동단체 안팎에서 활동 중인 이들에게는 이 발언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