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논란

김형욱 겨냥했던 반국가행위법 위헌 판결로 내란죄 저질러도 국립묘지 행 가능

  • 김유림 기자│rim@donga.com

    입력2011-11-22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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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형 선고받은 안현태 전 경호실장 논란 끝 국립묘지 안장
    • 김형욱 전 중정부장 겨눈 ‘반국가행위법’ 때문에 ‘국립묘지법’ 빈틈 생겨
    • 심의위 찬성하면 국립묘지 안장 가능
    • 국가보훈처 “생전에는 논의 대상 아니다”
    제5공화국 경호실장을 지낸 고(故) 안현태씨가 8월6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안씨는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1997년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국가보훈처는 “안씨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죄)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월남전에 참전했고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내며 국가 안보에 기여한 점, 재향군인회 등이 건의서를 제출한 점을 고려해 안장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 결정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이후 국립묘지 안장을 위한 ‘길 터주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묘지는 국가 발전을 위해 공헌한 이들이 명예롭게 잠드는 곳이다. 5·18 구속부상자회 등 시민단체는 “내란죄 등으로 기소돼 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국립묘지를 내줄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은 폐에서 한의용 침이 발견되는가 하면 천식 증세 등으로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고 있다.

    ‘또는’ 때문에 빗겨난 내란죄

    법률상으로 두 전직 대통령은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국립묘지법)’ 제5조에 따르면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 직에 있었던 사람이나 국가장으로 장례된 사람은,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대상이다.



    국립대전현충원은 2004년 전직 국가원수의 서거에 대비해 모두 8위를 안장할 수 있는 국가원수 묘역을 조성했고 현재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이 안장돼 있다. 고 윤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족의 뜻에 따라 각각 충남 서산과 경남 김해에 안장됐다. 고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국립묘지법은 대상자 중 국립묘지 안장을 불허하는 경우를 별도로 명시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거나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따라 파면 또는 해임된 사람 △그밖에 안장대상심의위원회가 ‘국립묘지의 영예(榮譽)를 훼손한다’고 인정한 사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 제79조 1항 1호 또는 3호에 해당하는 사람 등이다.

    이 중 국가유공자법 관련 조항이 논란 대상이다. 국가유공자법 제79조 1항은 범죄 행위가 있던 사람을 국가유공자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호는 국가보안법 위반, 2호는 내란, 내란 목적의 살인, 외환유치, 여적, 간첩, 전시군수계약 불이행 등 형법 위반, 3호는 살인, 존속살해, 미성년자 약취 유인 등 형법 위반, 폭력 등 1년 이상 유기징역 등이다.

    국립묘지법 제4항은 국가유공자법 제 79조 1호 ‘또는’ 3호만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했다. 만약 이 법이 ‘1호부터 3호’로 규정했다면 2호 내란죄로 처벌받은 두 전직 대통령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 하지만 현행법상 2호 내란죄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 포함된다.

    김형욱 겨냥해 만든 ‘반국가행위법’

    왜 굳이 제2호 내란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국립묘지 안장 제외 대상에 넣지 않은 것일까?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보장하려는 의도로 의심할 수 있지만, 이 법의 탄생 과정을 아는 이들은 단순한 행정적 오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두 전직 대통령의 육군사관학교 선배이기도 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관련이 있다.

    국립묘지법이 제정된 2005년 7월 당시 국가유공자법 79조 2호는 삭제된 상태였기 때문에 국립묘지법 5조 4항은 ‘1호 또는 3호’로 명시했다. 국가유공자법 79조 2호가 삭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본래 79조 2호는 1984년 8월 제정된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 제1항에 해당하는 자(이하 반국가행위법)’에 해당했는데, 1996년 초 반국가행위법이 위헌 판결 나면서 자연스럽게 국가유공자법과 관련된 79조 2호도 삭제된 것. 현재의 국가유공자법 79조 2호는 2005년 국립묘지법 제정 이후 만들어졌다.

    반국가행위법은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단 한 사람을 겨냥해 만든 법이다. 김씨는 유신정권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다음은 2005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진상규명위)’의 조사 내용이다.

    김씨는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거쳐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중앙정보부장으로 재직했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였지만 1969년 10월 중앙정보부장에서 해임되고, 1973년 3월 유정회 국회의원 명단에서 제외되자 박 전 대통령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1973년 4월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1977년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 전 대통령을 강력 비난했고, 박 전 대통령의 치부를 고발하는 회고록 출간을 추진했다. 정부는 1977년 민병권 무임소(無任所) 장관을 대통령 특사로 미국에 파견해 김씨를 회유하면서, 김 전 중정부장을 실질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외국정부에 도피처 또는 보호를 요청한 자’와 ‘외국에서 귀국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죄상이 현저히 중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반국가행위법’을 제정한다. 그럼에도 김씨는 회고록 출간을 추진했고,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회유와 협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1979년 10월7일 저녁 프랑스 파리 시내 카지노에서 실종됐다.

    반국가행위법은 제정 이후 5년간 시행되지 않았지만, 김씨 자서전이 일본에서 ‘권력과 음모’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직후, 재판이 시작됐다. 김씨는 ‘반국가행위법’으로 인해 1982년 3월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에 전 재산 몰수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은 피고 궐석 상태로 진행됐다. 부인 신영순씨 등 가족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 대지 400여 평과 중구 신당동 대지 500여 평 등 재산을 몰수당하고 도미(渡美)했다. 1991년 서울가정법원이 김 전 중정부장에 실종 선고를 내려 그는 법적으로 1979년 10월7일 사망처리됐다.

    1996년 1월 헌법재판소는 반국가행위법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법이 죄형법정주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위배했다는 것. 이 때문에 2000년 국가유공자법 내 반국가행위법 관련 조항이 삭제돼, 현재 내란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법률상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하게 됐다. 이 일련의 과정을 두고 한 법조인은 “육군사관학교 선배 김형욱 때문에 생긴 반국가행위법이 없어지면서 국립묘지법에 틈이 생겼고, 이 덕에 후배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립묘지에 안장될 근거가 생긴 꼴”이라고 평했다.

    김씨의 사망에 중앙정보부가 관여한 사실은 2005년 5월 국정원 진상규명위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진상규명위는 김씨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를 받은 이상열 당시 중정 주(駐)프랑스 공사 등에 의해 파리 현지에서 살해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살해를 지시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못했다.

    盧, 측근 통해 국립묘지 안장 의지 밝혀

    8월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현재 ‘1호 또는 3호’라는 법조항을 ‘1호부터 3호’로 고쳐, 내란범죄자를 안장 배제 대상자에 포함하자는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10월 말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내란·외환죄는 국가존립을 위험하게 하는 범죄로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내적안정을 해친다”며 개정안 개정 취지가 타당하다는 논의가 오갔다. 관련법이 개정되면 내란죄로 처벌받은 전, 노 전 대통령도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된다. 조 의원은 이와 함께 사면·복권된 자 역시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다는 내용의 법을 신설하자고 제안했으나 이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더라도 두 전직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다. 고 안현태씨와 같이 가족이 국립묘지 안장을 신청해 국가보훈처 안장대상심의위원회의(이하 안장심의위)가 승인하는 경우에도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기 때문. 이때 안장심의위 위원 15명 중 과반수가 회의에 참석해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위원 15명 중 정부당연직이 8명이고 민간위원은 7명이다. 국가보훈처는 안장심의위원 15명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으나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당연직 8명은 국가보훈처 차장, 법무부 법무심의관, 국방부 인사기획관, 행정안전부 의정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장,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정책관, 국무총리실 일반행정정책관, 국가보훈처 보훈선양국장 등이다. 그리고 민간위원 7명은 학계(2명), 보훈단체(2명), 시민단체(2명), 연구계(1명) 등에서 위촉한 것으로 파악됐다.

    안씨의 경우 서면(e메일)으로 진행된 심의에서 15명의 위원 중 9명이 답신을 해, 그중 8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했다. 정부당연직 8명 중 6명은 안씨 국립묘지 안장에 찬성했다. 나머지 2명은 표결에 불참했다. 민간위원 중 안장을 찬성한 사람은 2명이었고 1명은 반대했다. 나머지 4명은 불참했고 그중 3명은 항의 표시로 심사위원직 사의를 표명했다. 국가보훈처가 심의위원들에게 안건자료를 보내면서, 재향군인회, 성우회 등이 제공한 ‘안장 찬성의견서’는 첨부하고 반대 자료는 첨부하지 않은 것 역시 논란이 됐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심의위원 15명 중 참여한 9명 중 8명이 찬성했으므로 3분의 2가 넘었다”며 국가보훈처의 처리가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심의위원회의 공정성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보훈처는 1980년 신군부에 협력을 거부했다가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약 2년 반 복역했던 고 강창성 전 의원에 대해 국립묘지 안장을 부결했다. 당시 국가보훈처는 “금고 2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신군부에 저항한 강 전 의원은 안장이 거부되고,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던 안 전 경호실장은 안장이 허용된 것.

    이를 두고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국립묘지 안장은 워낙 민감하고 번복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정부에서 임명된 경우 개인 소신을 지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국민 법감정을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심의위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보훈처는 두 전직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과 관련해 논의하지 않고 있다. 국립묘지정책과 관계자는 “사망 이후 유족의 신청이 있은 후에 안장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아직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논의는 없다”며 “아직 살아있는 분들의 국립묘지 안장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그들을 욕되게 하는 것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한편 두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의미에서 국립묘지 안장을 허(許)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육군 중령 출신 모 인사는 “이미 법의 심판을 받았고, 대통령 직을 성실히 수행한 것 자체는 뒤집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임무를 다했다면 사후 국립묘지 안장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간 측근을 통해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되고자 하는 뜻을 피력해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체 추징금 2628억원 가운데 2382억원가량을 납부했다. 220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아 533억여원을 납부한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비교적 성실하게 납부해온 것.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비자금으로 만든 회사를 되찾기 위해 동생 재우씨와 조카를 상대로 한 주주확인 청구 소송을 올 7월 취하한 것 역시 국립묘지 안장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유원일 의원은 “현행법과 제도하에서는 두 전직 대통령 사후에 팽팽한 여론 충돌이 불가피하다”며 “시간에 쫓겨 ‘나쁜 전례’를 만들기 전에 지금부터 국민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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