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와 독자는 여론조사 결과에 관심을 기울인다.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여론조사 보도는 언론학자 메이어(Meyer)가 말하는 ‘정밀 저널리즘(precision journalism)’과 관련이 있다. 정밀 저널리즘은 과학적인 통계기법을 활용하는 보도로서, 단순한 사실전달 보도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다.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뉴스를 추구하는 데 의의가 있다. 조사 테크닉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통계 소프트웨어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기자도 통계와 설문조사 알아야
정밀 저널리즘은 주로 통계와 설문조사를 이용한다. 미국 ‘디트로이트 뉴스’는 음주 운전자 4만여 명의 판결기록을 통계프로그램으로 분석해 짐작과는 달리 시골 판사가 대도시 판사보다 훨씬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은 환경문제까지 설문조사 방법을 이용해 보도한다. 사회과학이 새로운 성격의 뉴스를 도출하는 셈이다.
선거철이 되면 우리 언론도 여론조사업체와 외주계약을 맺고 후보 지지도, 정당 지지도 등을 공표한다. 조사 전문위원, 미디어연구소 기자 등 조사 전문가를 고용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과 미국에선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정밀 저널리즘이 활성화되는 추세이므로 유능한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 조사방법에 대한 얼마간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리서치 테크닉, 질문지 설계, 표본오차, 통계 도구 등에 대해 직접 프로그램을 작동시키지는 않더라도 원리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 취재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론조사에도 부작용이 있다. 잦은 여론조사로 인해 오히려 유권자가 헷갈리기도 한다. 같은 시점, 같은 조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들에서 지지도 1, 2위의 순위가 바뀌는 등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표본 추출이나 질문지 구성이 문제가 된다. 일부 여론조사는 특정한 응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지는 등 정교한 조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우리의 선거관련 여론조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특정기간 조사결과 공표를 금지하도록 한 규정일 것이다. 이른바 편승효과(bandwagon effect)를 의식한 조치일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규제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투표일 6일 전인 10월20일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했다. ‘깜깜이 선거’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말이 많았다.
캐나다에서는 투표 전날 정오부터 투표 종료시까지 여론조사를 금지하는 규제가 대법원의 위헌판결로 1998년 폐지됐다. “여론조사 보도 금지는 캐나다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게 캐나다 대법원의 판결요지였다. 미국도 금지 규정이 없다. 한국과 비슷하게 특정기간 여론조사 공표를 금하는 나라는 호주, 브라질, 프랑스, 이탈리아 정도다.
출구조사(Exit poll)란 투표소에서 투표를 막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를 상대로 설문지를 돌려 어느 후보를 선택했는지를 실시간 조사하는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투표현장에서 조사가 가능하지만, 우리는 투표소에서 100m 떨어진 곳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거리 규정이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년 선거보도 ‘빅 이벤트’
과학적이라고는 하지만 여론조사 실패 사례도 있다. 미국 ‘시카고 트리뷴’은 1948년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공화당의 듀이 후보가 민주당의 트루먼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확실시된다고 보도했다. 결과가 정반대로 나와 이 신문은 망신을 당했다. 그러나 1960년 갤럽이 ‘케네디가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점차 신뢰를 회복했다.
최근 우리나라 공중파 텔레비전의 대선, 총선, 지방선거 출구조사 방송은 방송사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가늠하는 ‘빅 이벤트’가 되고 있다. 4개 종합편성채널이 새로이 출범하고 총선, 대선이 잇따라 열리는 내년에는 각 방송사의 선거보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언론은 더 정확하고 더 기발한 통계와 설문조사 보도를 개발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