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새로 선보인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6종에서 여러 오류가 발견된다.
- 교열 전문가 황치영씨의 지적에도 교육과학기술부는 두 손을 놓고 있다.
- 고교 한국사는 일본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해 내년부터 필수과목으로 바뀐다.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6종.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교열 전문가 황치영(67)씨가 올해 새로 선보인 고교 한국사 검정교과서 6종(삼화출판사, 비상교육, 법문사, 천재교육, 미래엔컬처그룹, 지학사)을 꼼꼼하게 분석하자 수많은 오류가 드러났다.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내용뿐만 아니라 바뀐 명칭이나 외래어 표기법, 맞춤법이 어긋난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심지어 같은 교과서 내에서 통일되지 않은 용어 쓰기도 빈번히 나타났다. 그럼에도 교육과학기술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황씨가 발견한 오류 중 대표적인 사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관한 내용에서 오류를 찾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85년 1월1일부터 ‘경국대전’을 ‘시행’하도록 하라는 성종의 명이 있었다. 그런데 비상교육 출판사만 ‘1485년 시행’이라고 정확히 기술했고, 나머지 출판사는 연도가 틀리거나 ‘시행’을 ‘완성’이라고 잘못 표기했다.
“‘경국대전’은 법전이므로 그 법 내용을 백성이 따르는 것, 즉 시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485년 1월1일부터 시행하라고 했다면 그전에 완성돼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1485년에 ‘완성’됐다고 표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는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과 관련한 내용에서도 오류를 지적했다. 지학사 교과서에는 “팔만대장경은 이를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199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55쪽)”라고 씌어 있다. 하지만 그는 1995년에는 장경판전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그는 ‘지정’되었다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되었고, 팔만대장경(판)은 2007년에 와서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경국대전’‘완성’이냐 ‘시행’이냐
비상교육 교과서에서 ‘야연사준도’라는 그림을 “김종서가 4군을 개척하고 함경도에 있을 때의 고사를 조선 후기에 그린 것(80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4’군을 ‘6진’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세종 때 4군을 개척한 것은 최윤덕이고, 김종서가 개척한 것은 6진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것 이외에 새로 바뀐 명칭이나 외래어 표기법 등에 따라 바로잡아야 할 부분 또한 많았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이나 불국사삼층석탑의 경우 ‘원각사지 10층 석탑’‘불국사 3층 석탑’처럼 숫자를 사용하고 띄어 썼는데, 숫자를 한글로 바꾸고 띄어 쓴 것을 붙여 써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문화재청에서 사용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고구려 건국 지역을 언급하지 않은 삼화출판사를 제외한 5종 교과서에서 고구려 건국 지역을 모두 ‘동가강 유역’이라고 기술한 것에 대해서도 황씨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비류수 위에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고구려라 하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비류수는 청나라 때 동가강으로 불리다 현재는 훈장강으로 이름이 바뀌었죠. 따라서 ‘동가강’이 아니라 고구려 시대 명칭인 ‘비류수’나 현재 명칭인 ‘훈장강’이라고 써야 옳습니다.”
그는 청나라 외교관으로 ‘조선책략’을 쓴 황준헌(黃遵憲)과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 소련 측 대표인 시티코프(Shtykov)에 대한 잘못된 표기도 꼬집었다. 먼저 중국인 이름은 신해혁명(1911) 이전은 한자음으로, 이후는 중국 현지음으로 표기한다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황준헌’이라 표기하는 것이 맞는데, 6종 교과서 모두 ‘황쭌셴’으로 적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출판사 미온적 대응
다음으로 2005년 변경된 러시아어 표기법에 따르면 자음 앞 ‘sh’는 ‘시’로 표기해야 하므로 ‘Shtykov’는 ‘시티코프’라고 적어야 옳다. 그런데 시티코프를 언급한 4종 교과서 중 3종은 ‘스티코프’로, 1종은 ‘슈티코프’로 잘못 표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티코프가 비록 ‘외래어 표기 용례집’에 나오진 않지만, ‘푸시킨(Pushkin: 용례집에도 나오고 대다수가 맞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과 읽는 원리가 같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쓴다면 올바르게 표기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외에도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중국 이름은 붙여 쓰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고 띄어 쓴 경우도 있었다. 특히 법문사와 미래엔컬처그룹이 띄어 썼고, 지학사의 경우 띄어쓰기에 일관성이 없었다.
황씨는 오류를 발견한 뒤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는데 일부 출판사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만들라는 대로 만들었다”는 변명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교과부에도 찾아갔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교과부의 미온적인 대응이 수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수많은 사회단체의 수정 요구에 출판사가 일일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오탈자나 띄어쓰기 같은 단순 수정은 출판사와 저자 재량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내용 수정은 교과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에 그 절차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세계일보에 황씨의 지적이 처음 기사화된 후에도 ‘경국대전’, 팔만대장경, 고구려 건국 지역, 황준헌, 시티코프와 관련해서만 지학사가 수정했다고 밝혔으며, 나머지 출판사들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출판사 측에서 “수정했다”고 하더라도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년 교과서에 이 내용이 반영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국검정교과서협회 관계자는 “‘경국대전’ 관련 내용에 대해 제대로 표기한 비상교육을 제외한 5곳의 출판사 중 3곳만 수정·보완 승인 요청을 했고, 2곳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직 교과부는 승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필자는 교과부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고, 검정교과서협회 측으로부터 “교과부가 ‘아직까지’ 전문가들을 통해 검토 중이다”는 말만 들었다. 황씨는 “지난해 3월 초등학교 사회과 부도 교과서의 표기 오류 및 오탈자를 잡아내어 교과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지난 3월 나온 개정판을 보니 3분의 1정도만 반영되고 나머지 지적한 부분은 그대로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교과부가 잘못된 부분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에 좀 더 적극적이길 기대하고 있다.
꼼꼼한 검정체계 필요
고등학교 역사 교사 김모(42·남)씨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거나 잘못된 내용을 고쳐야 할 때 교과서에는 그런 것들이 잘 반영되지 않거나 너무 늦게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교과서 오류 문제의 요인으로 집필자들의 안일함과 정부 검정 체계의 허술함을 꼽았다. 한국사 교과서는 교사와 교수로 구성된 18명의 연구위원이 13종을 대상으로 내용과 표기·표현 등의 오류를 점검한 뒤, 11명의 검정위원이 심사해서 6종으로 압축했다. 국정교과서 시절 전문가 60여 명이 1권을 집중적으로 점검한 것과 비교하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한국사가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바뀐다. 일본과 중국 등의 역사 왜곡에 맞서 역사 교육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다. 황씨는 “이런 때일수록 기본적인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며 오류 없는 역사 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