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제(上帝)는 기독교의 유일한 실체로서의 신이 아니라, 만물 가운데 최선의 상태에 있는 존재다. 중국 전통에서 이런 인물은 성인이라 불렸다. 성인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있는 인물이었다. 성인과 평범한 사람이 본질에서 하나인 것처럼, 홍수전의 배상제회에서 신과 인간은 본질에서 하나다. 신과 인간은 동기(同氣) 이며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은 동기간(同氣間)의 사랑이다.
- 중국인들의 너무나 강한 현세중심적 사고는 하늘에 살던 신마저 지상으로, 인간 쪽으로 끌어내렸다. 유학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한 가족주의는 하느님마저 한 가족으로 만들고, 그 하느님 역시 강한 가족주의 정서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 하느님은 자식을 위해 모든 편의를 돌봐주는 아버지로서 아들의 집을 수시로 드나든다. 하느님이 드나들며 보살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지상천국이었다.
태평천국의 난을 배경으로 한 영화 ‘명장’.
기독교는 몇 백 년에 걸쳐 중국의 문을 두드리며 중국인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그 노력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의 선교 노력은 성공적인 결실을 보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가장 빛나던 시대가 있었다. 19세기 중반기에 중국을 풍미한 상제교(上帝敎)와 그 종교집단이 건설한 태평천국이라는 나라에서였다. 당시 선교사들도 그런 의견이었지만, 현대 기독교인들이 보면 ‘이건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받아들이고 유일신 하느님을 믿었으며 십계명을 지켰다. 사후 심판과 천당에서의 영생도 믿었다.
사대부 기독교와 농민 기독교
그런데 그들은 지상에도 천국을 건설했다. 천상 천국에서의 생활이 지상 천국에서의 생활과 그리 다른 것으로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들의 천국은 지극히 현세 중심적인 중국인들의 태도가 가미되어 빚어진 것이었다. 즉 이들의 기독교는 중국의 기독교였다. 또한 명(明) 말에 지식인들이 신도였던 기독교와 달리 농민이 신도였다. 기독교는 중국을 만나 본래의 모습과는 꽤 다른 모습으로 단장하고 중국 농민에게 다가갔다. 중국 농민의 기독교가 어떤 토양에서 싹트고 성장해서, 중국 농민들에게 어떤 길을 열어주었는지, 왜 지금은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지 알아보자.
중국에 처음 소개된 기독교는 당나라 때 들어온 경교(景敎·Nestorianism)로 알려져 있다. 200여 년간 중국인 신자를 보유하며 존속했다고 하는데, 사료의 부족으로 자세한 상황은 알 길이 없다. 그 다음의 선교는 명나라 말기, 예수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중국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중국에 20년 동안 거주하면서 한문과 중국어를 익혔다. 명나라 황제는 그가 진상한 자명종에 반해 북경에 정주하는 것을 허락하고, 나아가 교회를 세우는 것도 허락했다고 한다. 당시 마테오 리치는 사대부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했으며, 그가 중국어로 편역한 ‘천주실의(天主實義)’ 역시 유가적 세계관과 교양을 가진 사대부를 대상으로 한 책이었다.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물아일체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선교의 걸림돌로 보고, 인간은 신에 의해 심판받는 비자립적 존재라고 역설한다.
이 세계관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기라는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물론 보편원리인 이의 존재가 있지만, 이 보편원리조차 이 기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에 깃드는 것으로서, 개별자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이 현실을 벗어나 있는 것이 아니다. 논리상으로 모든 개인은 이라는 보편원리를 자신의 그릇 속에 간직하고 있는 완전체다. 이들은 본성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밖에서 선을 구할 필요도 없고 타자에게 자신의 구원을 요청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자족할 수 있는 존재다. 이 세계관 안에서 자신의 도덕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은 종국적으로는 만물일체의 경지를 꿈꾼다. 자신의 본성을 어떤 장애도 없이 실현한다면 만물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가 열린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선교의 걸림돌
마테오 리치는 기가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이 사고, 그리고 보편원리인 이가 현실의 개별자에 내재한다는 사고가 선교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이런 세계관이라면 인간 세상과 다른 차원에 있는 신의 존재를 납득시킬 수가 없다. 그는 이성영혼이라는 것은 만물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임을 역설함으로써 인간을 만물에서 떼어내고, 그 인간 역시 신에 의해 심판받아야 하고 신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는 비자립적인 인간으로 규정한다. 리치는 공을 들여 만물일체 이론을 부정하고,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의 대립을 무화시키는 기 개념을 부정한다. 만물일체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한편에서 그는 또한 성선론의 전통 안에서 스스로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대부들에게 영합하기 위한 노력도 한다. 즉 신의 구원을 강조하는 대신에,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하며 인간은 악을 선택하는 자유의지 외에도 선을 선택하는 자유의지 역시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테오 리치는 한정된 숫자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의 사대부 신도를 얻을 수 있었다. 마테오 리치가 사망한 당시에 그 신도 수는 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왕실을 비롯해 사대부들이 그들과 가깝게 지냈던 데에는 기독교보다는 그들이 들고 온 지도나 역법, 혹은 천문이나 수학에 관한 지식에 매료되어서였다.
왕조가 바뀌고 청나라 초기까지 예수회는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 사후에 중국에 들어온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는 예수회에서 용인했던 유교의 관습들, 즉 공자 숭배와 조상 숭배 등의 예식을 용인하려 하지 않았으며, 이 전례(典禮) 문제에 로마교황청이 끼어들어 결국 청나라 황제는 이를 주권의 침해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18세기 초기에는 거의 모든 선교사가 중국에서 추방되고 포교도 금지된다. 이후 기독교의 중국 포교는 19세기 초반, 런던 전도회 선교사가 중국에 오면서 재개된다. 제1차 아편전쟁 뒤에야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선교의 자유를 얻게 되지만, 광둥(廣東)성의 광저우(廣州)는 외국인특별거주지역으로 외국인의 거주가 허가된 곳이었다. 아편을 비롯해 유럽의 문물을 거래하는 상인들과 함께 선교사들도 섞여 있었고, 이 선교사들은 본격적인 선교활동의 준비로서 성서 번역에 주력하고 있었다. 태평천국의 건국자 홍수전(洪秀全· 1814~1864)과 기독교 교리문답서 ‘권세양언(勸世良言)’의 저자 양발(梁發·1789~1855)은 모두 광저우 언저리에서 살고 있었다. 양발은 번역된 성서를 출판하는 영국인 선교사에게 고용되어 식자공으로서 번역 성경을 접했고, 이윽고 기독교에 귀의해 중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권세양언’은 양발이 선별적으로 이해한 기독교로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천지와 모든 생명체를 여호와라는 이름의 신이 창조했으며,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뱀의 간계로 극락세계에서 향락을 누리다 쫓겨났다. 이 사악한 악마(邪魔) 때문에 본래 선했던 인간은 악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여호와는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지상에 내려 보내 죽게 함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하게 하였다. 인간은 죽은 뒤, 세상이 끝나는 날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 계명을 지키고 하느님을 믿고 꾸준히 선을 행하는 자만이 천상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중국 최초의 목사 양발과 ‘권세양언’
양발은 여호와가 중국 고대 경전에서 언급되는 ‘상제(上帝)’와 동일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교와 불교는 허망한 우상을 숭배하면서 재산을 낭비하고 도의를 해친다고 비판하면서도, 유가경전을 인용하며 기독교의 신을 소개함으로써 중국인들이 느낄 이물감을 줄일 수 있었다. 그는 상제를 숭배하기만 하면 “밤에도 문을 닫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는 이상세계”가 도래한다고 설명하면서, 이것이 바로 ‘태평’의 시대이고 ‘천국’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즉 그는 ‘천국’을 ‘태평’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는데, 이 ‘태평’이라는 용어는 유가적 유토피아 ‘대동’(大同)의 또 다른 용어이며, 그가 묘사한 이 태평의 시대는 그대로 유가경전에서 묘사된 대동 세상의 모습이었다.
이 책은 지식인들을 겨냥해 과거시험장 앞에서 배포되었다. 광둥성의 화현(花縣)이라는 작은 동네 출신의, 23세의 청년 홍수전은 과거를 위한 예비시험을 보기 위해 광저우에 왔고, 여기에서 ‘권세양언’을 손에 넣는다. 이 책에서 얻은 이해를 바탕으로 홍수전은 종교단체를 조직하고, 나아가 신정국가를 세운다. 이 나라를 가득 메운 신도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총명했던 홍수전은 가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를 등에 지고 7세 때부터 사서삼경을 배웠다. 가난 때문에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지만, 관료가 되겠다는 독서인의 평범한 꿈을 품고 16세부터 과거에 도전한다. 그러나 과거의 예비시험인 지방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했다. ‘권세양언’을 손에 넣은 뒤에도 과거의 문을 두드리는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연이은 낙방에 따른 절망감은 너무 커서, 24세 때 낙방하고서는 40일 동안이나 빈사상태에서 헤맸다. 그 뒤로도 6년의 세월을 더 보내고서야 그는 과거를 통해 세상에 나가는 길을 단념한다.
“관직은 뇌물로 살 수 있고 형벌은 돈으로 면할 수 있으니, 부자들이 당연히 권력을 잡고 호걸은 절망한다”고 절규했다. 그에게는 길을 내주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다.
그의 생존본능은 다른 살길을 찾는다. 그는 6년 전 빈사상태 때의 경험을 기억해낸다. 그때 그는 하늘나라에 가서 상제, 즉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에게서 자신이 지상에서 할 일을 명받았다는 것이 그가 기억해낸 지난 일이었다. 이 수명(受命)을 기억해낸 데는 손에 넣은 지 7년이 되어서야 읽게 된 ‘권세양언’이 계기가 됐다. 먼 친척 되는 사람이 그의 집에 놀러왔다가 그의 서가에서 ‘권세양언’을 발견하고 빌려가 읽었다. 그 책에 감화된 그 사람은 홍수전에게 돌려주며 일독을 권했고, 그 책을 읽은 홍수전은 그제야 6년 전 자신이 꾼 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꾼 꿈은 이러했다. 정확히는 꿈이 아니라 영혼의 여행이었다. 그의 영혼은 하느님이 보낸 천사를 따라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을 만났다. 하느님만 만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부인,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예수의 부인, 예수의 자식들을 만났다.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하느님은 그의 아버지였고, 예수는 그의 형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둘째아들이었다.
홍수전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은 그가 ‘권세양언’을 읽었기 때문에 꾼 꿈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처음 받았을 때 목차만 대충 훑어보았을 뿐,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 존재를 알지 못했고, 예수나 천상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하느님의 둘째아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아채는 데에 6년이나 지체한 홍수전은 더 이상은 지체하지 않았다. 유일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모든 우상숭배를 척결해야 하는 그는 즉각 공자의 위패를 치워버리고 사당을 허물었다. 그리고 ‘상제를 받든다’는 의미의 ‘배상제회(拜上帝會)’를 조직하고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포교활동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차근차근 군대를 조직해 이윽고는 1850년 중국의 정통성을 잇는 새로운 국가의 출범을 선포한다. 그 나라의 공식 명칭은 ‘태평천국(太平天國)’이었다. 태평천국은 몰락하는 1864년까지 15년 동안 중국 영토의 반 이상을 점령하며 위용을 과시했다. 중국의 정당한 국가로서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자신의 둘째아들에게 내린 명령이었고, 둘째아들은 그 명령을 실행한 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주는 벼슬이 있고 하늘이 주는 벼슬이 있다’고 구분했다. 하늘이 주는 벼슬은 사람이 주는 벼슬과는 비교할 수 없이 고귀한 것이다. 맹자가 말한 하늘이 주는 벼슬이란 선한 본성이다. 그 의미에서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홍수전은 사람이 주는 벼슬을 얻는 데 실패하고 하늘이 주는 벼슬을 얻었다. 하느님은 그가 바로 중국을 이끌 유일한 정당한 군주라고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글자 그대로 하늘의 아들, 즉 천자(天子)가 되었다.
당시 중국은 영국을 위시한 유럽제국의 침입 이전에 이미 내부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급격히 늘어난 인구로 농토가 부족하게 되고, 이로 인해 많은 이민과 유민이 발생하고 있었다. 홍수전도 본래의 터전을 떠나 몇 세기에 걸쳐 남하한 객가(客家)인이었으며, 태평천국의 수뇌부 상당수가 객가인이었다. 특히 광둥성이나 광시(廣西)성은 낙후된 지역으로 식량 부족과, 그로 인한 비적의 출몰, 치안부재 등의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이때 등장한 ‘태평천국’은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입을 자격이 있고, 또한 한 가족으로서 모여 살면서 재화 역시 가족처럼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농민들을 유혹했다. 이들은 이미 부패한 청나라 정부가 대적할 수 없는 군사력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점령한 지역의 농민들은 부득불 여기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강요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꽤 엄격했던 집단의 규율을 지켜야 했지만, 여기에 동참하면 적어도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홍수전이 하늘나라에 가서 만난 아버지는 검은 용포에 테가 있는 높은 모자를 쓰고 금빛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이는 도교의 전설에 나오는 옥황상제와 유사한 모습이다. 유학적 교양으로 무장한 중국 지식인들은 인격수양에 집중함으로써 정치적인 역량을 키우고, 그럼으로써 세상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간의 노력 외에 다른 힘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천 년 이상 유학적 기풍이 지배하는 땅이라 할지라도 많이 배우지 못하고 자연의 변덕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대다수 농민은 그 자연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연의 힘은 그 자체로 드러나지 않고, 죽음 뒤의 세계를 지배하는 옥황상제와 지옥을 지키는 염라대왕 등의 인격적 성격을 가진 신으로 형상화된다. 중국 농민에게 홍수전이 얘기하는 상제는 낯선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생사를 주관하기 때문에 늘 두려워하던 그 존재였다. 더구나 ‘상제’라는 유가고전 속의 낯익은 이름으로 불리는 하느님이라면 더욱 그렇다.
“악마는 청나라 만주정권”…정치혁명 이론으로 탈바꿈
‘권세양언’에 따르면 상제는 지상세계를 향해 세 차례 그 위엄과 분노를 보여주었다. 첫째는 세상의 타락에 분노해 40일 밤낮 비가 내리도록 한 것이며, 둘째는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이집트에서 탈출하도록 한 것이며, 셋째는 예수를 보내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도록 한 것이다. 홍수전은 여기에 두 차례의 위엄과 분노의 현시를 보태었다. 즉 넷째는 상제가 천사를 보내 홍수전을 승천하도록 해 사악한 악마를 주멸하도록 지상에 파견한 것이며, 다섯째는 배상제회의 또 다른 지도자 양수청(楊秀淸· ?~1856)을 파견해 모든 사람의 병을 다스리도록 한 것이다.
‘권세양언’의 저자 양발은 아담과 하와를 타락의 수렁으로 빠뜨렸던 뱀을 사악한 악마라고 불렀다. 홍수전은 그 사악한 악마가 바로 만주족 청 정부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이 하늘로 그를 불러 명한 구체적인 내용은 “호로(胡虜· 오랑캐)를 주멸하라”는 것이었다. 홍수전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천국을 중국에 배정”했으며, “중국의 왕은 천하의 왕”이 되게 하셨다. 그런데 지금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가 아닌 ‘호로’가 아버지의 천국을 훔쳤다. 중국의 천하를 훔치고 중국의 의관과 언어를 바꾸고 중국의 여자를 겁탈하는 저들은 그 유래를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 조상은 한 마리 흰 늑대와 한 마리 붉은 개가 교미해 낳은 요괴였다.
홍수전은 유일신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중국을 지배하라는 ‘명’을 받은 정당한 중국의 왕으로서, “위로는 하느님을 위해 하늘을 기만한 자들에게 복수해야 하고, 아래로는 중국을 위해 백성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자신의 과제를 선언했다. 이제 “청조의 불결한 기운을 일소해 태평의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날”이 펼쳐질 것이었다. 홍수전과 배상제회는 만주정부를 무너뜨린다는 노선을 분명히 하면서 세상을 향해 ‘하늘을 받들며 오랑캐를 토벌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권세양언’은 “경건한 자는 빈부에 구애하지 않고 만족을 알며 하느님을 섬기는 자”라고 말하며, 현실에 순응하며 하느님을 믿고 계명에 순종하면 천국의 복락을 누릴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홍수전의 배상제회는 단순히 종교생활의 영위에서 끝내지 않고 현 정부인 청 정부를 적으로 지목했다. 악마를 청나라 만주정권과 동일시함으로써 배상제회는 정치혁명의 이론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홍수전은 한편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한편에서는 중화를 지키기 위해 태평천국을 출범시켰다. 농민들은 한편에서는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 한편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생계를 잇기 위해 태평천국의 백성이 되었다. 귀신 섬기는 길과 죽음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사람 섬기는 일도 못하는데 귀신 섬기는 일을 어찌 알겠는가”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답했다. 공자와 공자의 후예들은 자신들이 힘써서 바꿀 수 있는 영역에 자신들의 노력을 집중시켰다. 삶과 죽음 등 고민해봤자 바꿀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에 힘을 빼는 일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전생과 내세를 넘어 억겁에 얽힌 세상을 이야기하는 불교도 중국에 와서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지극히 현세중심적인 선불교로 변화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라고 말하는 노자와 장자를 자신들의 이론적 지주로 삼은 도교도 저세상이 아니라 이세상에서의 영생을 꿈꾼다. 16세기의 마테오 리치가 중국 사대부들에게 선교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이들에게 인간세계와 천상을 나눠 생각하는 관념이 없다는 점이었다.
미지의 죽음에 대한 불안함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불교와 도교, 민간신앙 등이 접합되어 만들어진 염라왕이나 옥황상제 등의 존재를 믿고 그들을 두려워하며 섬겼지만, 죽음 뒤의 영생에 대한 관념은 없었다. 배상제회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그 영혼은 세상의 마지막 날에 다시 하느님 앞에 불려나와 심판을 받고, 하느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천국에 올라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영생이라는 유혹이 아무리 달콤한 것일지라도, 그 무엇보다도 현세가 중요한 중국인의 성향을 압도할 수는 없었다. 배상제회는 하늘의 천국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한편에서 지상의 천국을 만들어냈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이 자신의 둘째아들 홍수전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천상에도 천국이 있고 지상에도 천국이 있다. 천상, 지상 모두 신이신 아버지의 천국이니, 단지 천상에만 천국이 있다고 오인하지 말라. 그러므로 큰형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천국은 인간세계에 있으니, 지금 천부(天父)와 천형(天兄)께서 땅위에 내려와 세운 천국이 바로 이것이다.”
지상의 천국, 그 안에서의 삶
기독교의 하느님은 형상을 가지고 한정된 공간을 차지하는 인격체가 아니다. 그러나 배상제회의 하느님은 형상을 가질 뿐 아니라 가족도 거느리고 있다. 하느님의 첫째아들 예수는 처음 홍수전이 하늘에 갔을 때 홍수전이 말귀를 못 알아듣자 버럭 소리 지르는 존재다. 예수의 부인이자 홍수전의 형수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그런 남편 옆에서 시동생을 다독인다. 하느님은 둘째아들에게 지상의 천국을 건설하라고 명령을 내려 다시 지상으로 내려 보내고, 요괴의 방해라든지 아들의 실책 때문에 지상천국의 건설과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몸소 지상에 내려와 도와준다. 하느님뿐만 아니라 홍수전의 형인 예수 또한 자주 지상을 방문하면서 돈독한 형제애를 과시한다. 하느님은 하늘에서만 사는 존재가 아니며 홍수전이나 양수청은 가끔 하늘나라에도 불려간다.
홍수전의 뒤를 이어 태평천국의 2인자, 3인자가 된 객가 출신 숯쟁이 양수청과 역시 객가 출신인 빈농 소조귀(蕭朝貴)는 홍수전 못지않은 천상과의 인연으로 그러한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즉 양수청은 하느님이 자신의 몸을 빌려 세상에 말씀을 전하러 오신다고 주장했고, 소조귀는 자신의 몸은 예수가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진작에 하느님을 비롯한 천상의 가족들을 만났던 홍수전은 이들의 주장을 인정했고, 그들은 홍수전 다음으로 중요한 구성원이 되어 하느님과 예수의 명령을 전하는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양수청 역시 하느님의 아들이었고, 소조귀는 홍수전의 여동생과 결혼함으로써 하느님의 사위가 된다. 하느님은 천상과 지상의 모든 존재를 자녀로 둔 대가정의 가장이며, 동시에 예수와 홍수전, 양수청 등의 아들을 둔 소가정의 가장이다. 이 가족은 천상과 지상에 나뉘어 살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서로의 거처를 왕래한다. 하느님의 부인이나 예수의 부인도 마찬가지다. 때로 아들과 시동생이 걱정되어 지상에 내려와 살뜰하게 돌봐준다.
태평천국 안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하느님의 자식이며, 그런 의미에서 누구도 굶진 않는다. 이들은 공동창고에 곡식을 저장했고, 공동으로 그것을 사용했다. “세상의 도가 어긋나고 인심이 각박한 것은 이기심 때문”이라고 홍수전은 진단했다. 그러나 천하의 모든 남녀가 형제자매임을 알고 ‘너와 나를 나누는 이기심’을 버릴 수 있게 되면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않고 다수가 소수를 폭압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지 않고 용맹한 자가 겁 많은 자를 괴롭히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었다. 즉 누구나 상제를 믿고 그의 자식임을 안다면 천국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들은 살인, 절도, 금주, 아편 등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효도, 정직과 같은 도덕적 덕목도 엄격하게 요구했다. 이를 어길 시에는 혹독한 처벌을 가함으로써 일벌백계로 다스렸다. 그 처벌은 사후 심판에서도 똑같은 기준으로 행해진다고 고지되었다. 그러한 도덕을 실천한 사람만이 하늘의 천국에 갈 수 있었다. 지상의 천국에서 바랄 만한 삶은 병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배고픔도 없고 추함도 없는 삶이다. 천상의 천국에서의 행복한 삶 역시 똑같이 묘사된다. 영혼으로서 사는 천상의 행복에 대해서, 이들은 육신을 갖고 지상에서 누리는 행복 이외의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지상을 천상보다 하위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상제를 믿는 자는 현세에서의 복과 함께 승천한 후 천당에서도 지상에서 누린 것과 같은 행복을 영원히 향유할 수 있었다.
태평천국은 무엇을 바꾸었는가?
태평천국의 백성들은 그들의 천자인 홍수전과 형제이고 자매다. 즉 그들은 가족이 되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식이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말했다. 집에 쌀이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밥을 굶는 가족 구성원은 없다. 이들은 남자와 여자를 엄격하게 격리했는데, 이 때문에 여자숙소에서는 여자 관리도 등장했다. 여성에게도 사회활동이 허용된 셈이 되었다.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한 가정의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 구성원 사이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유가적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는 평등하지 않다. 아버지와 남편은 경제권을 가지고 아들과 아내를 먹여 살린다.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평등하겠는가. 형제 사이도 평등하지 않다. 대를 이을 장자와 차자 이하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의 대우도 다르지만, 부모가 죽은 뒤 물려받을 유산이 전혀 다르다. 배상제회 농민의 입장에서 볼 때 하느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다는 ‘평등’이 무엇인지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그 확대된 가족 안에서는 유가적 인륜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태평천국에서는 상제인 아버지와 구분해서 나를 낳아준 부모를 육친(肉親)이라고 부르며 ‘효’ 사상을 강조했다. 그들의 어린이 대상 교육서에는 ‘가정의 도’ ‘아버지의 도’ ‘아들의 도’ 등이 실렸고, 그 ‘도’의 실질적인 내용은 유교적 효제(孝悌)와 다르지 않았다. 상제는 형체를 가진 존재이며,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존재라고 생각했던 홍수전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들이 아버지일 수는 없었다. 그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면서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답다”는 ‘논어’의 문구를 이용한다.
부자 사이의 질서뿐만 아니라 군신 사이의 질서 역시 유가적 가치관에서와 다를 바 없이 중요했다. 태평천국은 한참 동안 남녀를 격리하고 부부도 사적으로 만나지 못하게 했다. 이는 성적인 문란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홍수전은 구약에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 근친상간 부분을 삭제할 정도로 거기에 심한 거부감을 드러냈으며, 백성들에게 정숙함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그 정숙함의 규범을 자신에게 적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주저 없이 자신의 여자를 늘려가 마지막에는 88명의 측실이 있었다고 한다.
남녀 격리해 성적문란 방지…홍수전 자신은 88명 측실 둬
그는 가족 사이의 불평등을 도덕적인 우열의 차이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즉 하느님의 자녀 가운데, 성인, 어리석은 사람, 완고한 사람 등이 있는 것은 타고난 품성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어리석은 서민은 지도자의 감독하에 농사를 지어 지도자 계층을 먹여 살려야 하고, 공훈이 있는 신하는 대대로 급여를 주고 관직까지 세습하게 했다. 도덕적인 품성에 따라 인간의 등급을 나누고 나아가 사회적인 역할을 나누는 것은 유가적 발상 그대로다.
즉 이들의 지상천국은 결코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다. 초기에는 신 앞의 평등이라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그조차 실제적 의미는 사유재산을 금지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물자소비를 보장받는다는 의미에 불과했다. 그러나 권력이 공고해지고 지도부의 특권이 더욱 분명해져 갈수록 노골적으로 불평등을 당연시했다. 후반부에 가서는 “귀천은 상하로 나뉘어야 하고 제도는 존비를 판별해야 한다”는 ‘태평천국 예제’를 반포해 행동규범으로 삼는 데 이르렀다
사회적 불평등이 기존의 사회와 다르지도 않았고, 그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유학 안에서 인간의 차이는 도덕적 능력의 차이이고, 도덕적 능력의 차이는 그대로 사회 안에서 분업의 근거가 되며, 분업은 계급과 직결된다. 태평천국 역시 현실의 불평등은 도덕적 우열의 차이라고 주장했으며, 그 도덕적 우열은 개인 탓이라고 주장했다. 즉 ‘귀천은 모두 나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불평할 수 없는 불평등이었다.
태평천국군은 건국 15년 만에 청군과 외세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졌다. 유럽열강 측에서 보자면 태평천국이 장차 중국의 유일한 주인이 될 만한 정권이라면 이들을 인정하고 이들과 교역을 추진할 생각도 있었다. 홍수전은 중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오랫동안 하느님을 섬겨온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형제자매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서로 싸워서는 안 되는 관계이며, 나아가 외국인들도 태평천국이 청을 주멸하는 데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홍수전 자신은 유일한 지상천국의 천자였고, 그 외국인이 누구든 하느님의 자손이라면 마땅히 홍수전의 신하가 되어야 했다. 홍수전은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종속관계를 요구했다.
증국번은 “태평군은 중국문화 전통을 파괴하고 오랑캐의 사교를 강요한다”며 민병부대를 조직해 태평군 토벌에 나섰다.
청나라 조정은 태평천국을 진압할 능력이 없었다. 태평천국의 확대를 보다 못해 일어선 것은 곳곳의 뜻있는 유가 사대부였다. 결과적으로 태평천국을 정리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은 증국번(曾國藩·1811~1872)과 그가 조직한 대규모 민병부대였다. 만주족을 주멸하겠다는 한족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서양외세의 압박을 받고 있는 태평천국을 한족 사대부가 진압한다는 것은 정당해 보이지는 않았다. 증국번은 청조가 만주족의 조정이긴 하지만 유교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문화를 전면적으로 계승한 왕조라고 인정하고, 태평군은 중국문화의 전통을 파괴하고 오랑캐의 사교(邪敎)를 사람들에게 강요하므로 토벌해야 한다고 자신의 명분을 정리해낸다. 유학자로서 중화주의를 지키기 위해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명분을 세운 것이다. 태평천국은 청 조정을 오랑캐로 지목하고 정당한 중국을 회복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었다. 태평천국과 유가 사대부 모두 중국의 정통을 지키고 잇는다고 생각했지만 각각이 해석하는 중국은 달랐던 것이다.
태평천국의 몰락
외국연합군이나 증국번의 군대가 없었다면 태평천국은 얼마나 더 유지되었을까? 알 수 없다.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1856년 태평천국은 엄청난 내홍을 겪는다. 결과적으로 홍수전 아래의 2인자, 3인자, 4인자가 모두 죽었다. 사정인즉 이러했다. 명목상 태평천국의 1인자는 홍수전이지만, 실제로 하느님의 말씀을 일상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은 양수청에게 빼앗겨버렸다. 하느님은 때때로 양수청의 몸을 이용해 방문하여, 홍수전의 불효를 꾸짖기도 하며, 어떤 때는 직무태만의 죄를 물어 장형 40대를 내리기도 했다. 홍수전이 내린 결정들을 뒤집기도 했고, 실제로 모든 결정을 좌지우지했다. 양수청인지 하느님인지의 전횡은, 홍수전의 측근인 두 명의 부하를 요괴라고 지목하면서 사단이 났다. 하느님에게 크게 꾸중을 들은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홍수전과 공모해 양수청과 그의 추종자 수천 명을 처형했다. 이어 과잉학살을 비난하는 내부 목소리를 잠재우고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홍수전은 그 일을 주도했던 자신의 측근도 처형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된 홍수전은 자신의 혈육만을 의지하게 된다. 내각에 남은 다른 신하들은 홍수전 혈육들의 의심과 방해를 못 이겨 홍수전의 곁을 떠나면서, 홍수전은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된다.
태평천국이 겪은 이러한 내홍은 우연적인 사고가 아니라, 태평천국이 갖고 있는 근원적인 약점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하느님을 만났다는 홍수전의 경험은 하느님의 권위를 등에 엎고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었지만, 그 힘은 양날을 가진 칼이다. 홍수전이 만난 하느님을 양수청이라고 만나지 못할 것이 없다. 누구나 하느님의 자식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모든 형제의 평등한 세상이라는 이상을 품고 시작했던 이들의 지상천국운동은 그 정신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평등을 실현하겠다고 권력을 쥔 수뇌부들은 그 권력이 가진 달콤함에 빠져 자신들의 꿈을 잃어갔다. 좋은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권력으로 실현할 수 있는 탐욕 때문에 그 제도구상은 사장되었고 그저 하느님의 말씀을 남용하면서 각자의 욕심을 채울 뿐이었다.
태평천국이 연합군에 의해 무너져 내리기 1년 전 홍수전은 병명불명으로 만 50세의 생을 마친다. 자살이라는 설도 있다. 홍수전의 뒤를 이어 권좌에 앉은 홍수전의 아들은 청의 순찰대에 체포되어 열다섯 번째 생일을 앞두고 처형되었다.
중국 지식인들을 지배했던 정주성리학의 세계관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극대화된다. 이들이 자신을 고귀하게 만들고 타인을 배려하는 데는 어떤 반대급부도 필요 없다. 이들은 자신이 타고난 선한 본성을 실현할 뿐이다. 이들은 선하고 고귀하게 생겼기 때문에 그저 생긴 대로 사는 것뿐이다.
물론 이런 세계관 안의 자존감이 모두의 것은 아니었다. 가족의 안위를 돌보는 것도 벅찬 보통 서민에게는 그 세계관이 부여한 자존감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먹고사는 게 해결돼야 선한 마음도 내보일 수 있었고, 눈앞의 보답이 있어야 더 선해질 수 있었다. 홍수전이 세상의 어지러움을 진단하면서 이기심을 그 원인으로 짚어낸 논조는 묵자(墨子)의 것과 닮았다. 묵자는 유학의 차등애가 이기심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면서 내 가족, 내 고장, 내 나라를 앞세우는 마음을 버리고 내 아버지나 타인의 아버지나 똑같이 사랑할 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말은 나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구나 잘하는 일임을 인정하고 전제한다. 나의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남의 아버지를 사랑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애든 써야 하는 일이다.
인간의 동기(同氣)가 된 하느님
묵자는 그 평등한 사랑을 실행하도록 하기 위해 하늘에 신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신은 인간의 행위를 평가해 상벌을 내린다. 인간은 그 신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평등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묵자는 애쓰지 않은 채 저절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평등한 사랑을 위해 하느님을 등장시켰지만, 그 상벌은 현세에서 실행된다. 그들은 기독교처럼 영혼과 내세를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배상제회에서는 두 종류의 천국을 인정했다. 기독교가 말하는 영혼들이 올라가 살 천상의 천국 외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 땅 위에도 하느님의 명을 받아 천국을 건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천상과 지상은 차원이 다른 두 곳이 아니라 1층과 15층처럼 한 세상에서 단지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장소처럼 보인다. 수시로 천상의 가족이 지상에 내려올 뿐 아니라 지상의 가족 역시 수시로 천상에 올라간다. 분가해 사는 아들집을 방문하는 부모와 가끔 부모의 집을 방문하는 아들의 왕래와 다를 바가 없다.
홍수전은 세상 사람들의 성씨는 각각 다르지만 그 수많은 성씨도 처음에는 하나에서 나왔다는 논리로 육신의 차원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혼의 차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한 핏줄이라고 주장한다.
“영혼으로 말한다면 각각의 영혼은 어디에서 생기고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모두 황상제의 일원지기(一元之氣)를 품부(稟賦·천성적으로 타고남) 받아 태어나는 것으로, 이른바 하나의 근본이 흩어져 만 가지 다름으로 되고, 만 가지 다름은 모두 하나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일원지기’ ‘하나의 근본’ ‘만가지 다름’ 등은 중국 기철학 전통에서 만물이 하나의 뿌리임을 증명하면서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마테오 리치가 그처럼 무너뜨리고 싶어했던 기일원적 세계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인간의 육체는 기로 이루어졌다. 홍수전에 의하면 영혼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근원은 다르지 않다. 홍수전은 “하늘과 사람은 하나의 기이며 리는 둘이 아니다”라는 말도 한다. 또 인간의 영혼은 한 줄기 정밀한 기이고 상제의 영혼은 최선의 정밀한 기라는 말도 한다.
상제는 기독교의 유일한 실체로서의 신이 아니라, 만물 가운데 최선의 상태에 있는 존재인 것이다. 중국 전통에서 이런 인물은 성인이라 불렸다. 성인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있는 인물이었다. 성인과 평범한 사람이 본질에서 하나인 것처럼, 배상제회의 신과 인간은 본질에서 하나다. 신과 인간은 동기(同氣)이며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은 동기간(同氣間)의 사랑이다.
중국인의 너무나 강한 현세 중심적 사고는 하늘에 살던 신마저 지상으로, 인간 쪽으로 끌어내렸다. 유학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한 가족주의는 하느님마저 한 가족으로 만들고, 그 하느님 역시 강한 가족주의 정서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 하느님은 자식을 위해 모든 편의를 돌봐주는 아버지로서 아들의 집을 수시로 드나든다. 하느님이 드나들며 보살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지상천국이었다. 이들 중국인은 인간의 승천이 아니라 신의 하강을 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