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호

“한나라당? 서민 의원 없는데 어떻게 서민 정책 나오겠나”

12월 사퇴 밝힌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1-11-23 1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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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원은 부자, 판·검사, 기업인…체화된 서민 안 보여
    • 한국 정치는 붕당정치… “공천 계층할당제, 자동법안상정제 도입해야”
    • “출마 기자회견 날에 정무수석 제의받고 기분 나빴다”
    • MB 정부 실패는 인사 실패… CEO 대통령은 이제 그만
    • “상임위 활성화, 의장 권한 강화해야 선진 국회”
    • 소장파가 대통령 사과 요구? “공공책임 있는데 ‘서방질’하면 안 돼”


    “한나라당? 서민 의원 없는데 어떻게 서민 정책 나오겠나”
    그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에둘러 말하거나 남의 말을 인용하지도 않았다. 정치하는 사람에게 솔직함은 때론 자충수가 되지만, 듣는 이에게는 신뢰감을 준다. 그래서일까. 그와의 인터뷰는 학사주점에서 편한 사람과 마주 앉아 정치를 논하는 느낌이었다.기자는 11월10일 오후 9시 서울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 6층 회의실에서 권오을(54) 국회사무총장과 마주앉았다.

    권 사무총장은 1991년 34세의 나이로 경북 안동에서 도의원에 당선된 뒤 1996년부터 15~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7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유세지원단장을 맡았지만, 18대 총선에서 낙천했다. 지난해 6월 임기 2년의 국회사무총장에 선출됐다. 도시적인 외모와 흰 머리카락의 세련미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지만, 주먹을 쥐면 툭 튀어나오는 정권(正拳)은 그가 농부의 아들임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9시를 조금 지나 시작한 인터뷰는 쉬는 시간 없이 다음날 새벽 허리춤에야 끝이 났다.

    ▼ 1년 반이 지났는데, 의원을 하다가 사무총장을 해보니 어떻던가요?“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기분이 묘했어요.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자리가 아니었거든요. 공직에 불러준 것 자체로 감사했어요. 국회의원만 하다보니 한 번쯤은 행정 영역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엄밀히 따지면 행정부는 아니지만 국회 살림과 업무를 책임지고 총괄하는 사무총장 자리가 행정을 경험하는 데는 제격인 거 같아요.”

    ▼ 취임 당시 ‘열린 국회, 현장 국회’를 내걸었는데요. 국회 주차장 시스템을 바꿔 욕을 먹지 않았나요(권 총장은 국회 직원 차량은 한강 둔치에 주차하게 하고 국회 내에는 방문객이 주차하도록 주차장 시스템을 바꿨다).



    “처음엔 욕 많이 먹었죠.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저도 당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18대 총선 낙천 뒤 ‘백수’ 시절 운전을 하고 국회를 방문할 때 국회 내 주차장은 항상 ‘만차’였어요. 운전기사라도 있으면 내려서 걸으면 되지만, 자가 운전을 하다보니 그럴 수도 없었어요. 국회 주변을 몇 차례 맴돌다가 문득 ‘국회 주인은 국민’이라는 기본명제가 떠올랐어요. 생각해보세요. 모처럼 국회를 방문한 국민은 국회 주변 주차장 찾느라고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겪어보니 알겠더군요.”

    ▼ 입법지원간담회도 시작했죠?

    “국회사무처와 법제실 직원들이 그 지역 국회의원과 함께 현장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전문가들의 입법제안을 직접 듣고 그 자리에서 법률 검토보고를 하는 ‘찾아가는 입법지원 서비스’인 셈이죠. 2010년 8월부터 지금까지 충남 천안, 전남 여수 등 전국 20곳을 찾아갔어요.”

    상임위 파행… 정치 불신 큰 요인

    ▼ 현장입법지원간담회를 만든 이유는, 역설적으로 국회의원들이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기 때문으로 들리는데요.

    “본연의 임무를 하라는 충고이자 격려죠. 의원 시절의 경험도 작용했고요. 현장에 가면 답이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결정적 이유도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권 사무총장은 앞에 놓인 주스를 반쯤 마시더니 대뜸 기자에게 질문을 했다.

    “기자는 바쁘죠?”

    ▼ 네. 그렇죠.

    “기사라는 본업 때문에 바쁘죠?”

    ▼ 뭐, 그렇죠.

    “그겁니다. 국회의원도 너무 바빠요. 그런데 본업 때문에 바쁜 게 아니에요. 의전이 많으니까 바쁜 거죠. 행사에 참석해 축사하고 경조사 챙기고, 사람들 만나다보면 본업인 입법 활동을 못해요. 아니, 정확하게는 입법 활동에 시간 할애를 안 해요.”

    ▼ 그렇군요.

    “국민에게 꼭 필요한 법안은 대부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다뤄집니다. 하지만 우리 의회는 여전히 본회의 중심입니다. 정당 간 이해관계로 법안이 상임위 회부조차 안 되고 4년이 가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는 법안이 회부되면, 상임위는 정쟁의 격전장이 되고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잖아요? 선진국 의회는 상임위 소위원회 중심으로 이뤄져요. 현장에 가보고, 청문회 하고, 결과보고서 내고…. 이런 활동이 원활히 이뤄져야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어요.”

    그의 말처럼, 18대 국회에서도 상임위 파행은 일상사였다. 현재도 그렇지만, 2008년 1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상정을 놓고 50일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진행을 못했고, 미디어 관련법 처리 때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민주당 위원들이 18일간 점거농성을 했다. 지난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4대강 사업예산을 둘러싸고 위원장석 점거로 회의장을 바꿔 예산안을 처리했다.

    “오래전부터 ‘법안 자동상정제’를 대안으로 내놓았어요. 6개월이든 1년이든 법안이 제출된 시점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단 상정을 하라는 거죠. 대정부질문도 1인당 15분씩 기계적으로 돌아가는데, 실제 몇 마디 물어보지도 못해요. 질문 시간은 의석수에 비례해 정당별 시간총량제로 했으면 좋겠어요.”

    ▼ 상임위 파행 문제는 한국 정치의 한계인 듯 보이는데요.

    “말씀 잘하셨습니다. 현재 한국 정치는 의회정치도, 정당정치도 아닌 붕당정치, 딱 그 수준입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정당은 의회를 볼모로 정치를 해왔어요. 정당 간 이해관계에 따라 의회와 의원을 압박해요. 국회 몸싸움도 이런 시스템에서 확대 재생산돼요. 왜냐? 정책 활동보다는 정당 활동과 주요 직책을 맡으면 많이 알려지거든요.”

    소신 발언하면 ‘그래서 공천받겠느냐’ 핀잔

    ▼ 현실적으로 공천 문제 아니겠어요? 소신대로 행동하기 부담스러운 정치구조 말입니다. 권 사무총장도 의원 시절 당론과 달리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고, 앞서 1999년에는 소신행동을 한 이미경 의원 제명에 반대했죠?

    “그랬죠. 그때는 정말 힘들더군요. 소신행동으로 ‘찍히기도’ 했고, 선배 의원들로부터 ‘그래서 공천받겠느냐’는 핀잔도 들었죠.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보수정당인 한나라당도 사고를 바꿔야 합니다.”

    ▼ 보수정당은 뭘 바꿔야 할까요?

    “보수정당은 그 시대를 책임져야 해요. 일자리, 안보, 복지 같은, 그 시대를 책임지는 게 1차적인 책무라고 봅니다. 둘째는 민족의 가치를 우선해야 합니다. 남북통일에 대해 전향적으로 나가야 해요. 부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전쟁 나면 자기 아들을 먼저 전장에 보내는 게 보수정당이 할 일입니다. 요즘 복지 논쟁이 한창인데,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안보이기도 합니다.”

    ▼ 한나라당에서도 요즘 쇄신안이 나오고 있는데요.

    “한나라당은 서민 정당이라며 서민 정책을 ‘연구’하죠. 그런데 정작 서민에게 맞는 정책은 아직 못 봤어요. 왠 줄 아세요? 한나라당에 서민 의원이 없어요. 삶 속에서 체화된 서민 의원이 없는데 어떻게 올바른 서민 정책이 나오겠어요? (의원) 대부분이 유학하고, 부자고, 기업인이고, 판·검사 했는데…. 물론 이런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서민 의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지하철을 타봐야 대중교통의 문제점을 알고 대안을 제시하죠.”

    ▼ 가난했다고 말하는 의원은 많은데요?

    “내가 얘기할까요? 우리 같은 50~60대 중에는 어릴 때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다 그랬어요. 가난한 게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게 위선적이고 작위적인 겁니다. 서민 생활이 체화된 의원이 없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현금영수증 발급받는 의원이 있습니까? 한나라당에 농민 국회의원이 있습니까? 그래서 공천을 할 때도 계층별로 할당해야 공당으로서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 계층별이라고 하면?

    “전체 틀을 정해놓고, 공천 대상자를 농민 출신 30명, 법조계 15명, 교육계 10명, 노동계 5명처럼 계층별로 할당하자는 거죠. 그리고 철저하게 현장 사람을 공천하는 겁니다. 현재는 노동계 인사가 필요하면 노동법을 전공한 교수를 공천하는 식이에요. 그건 아니죠. 현장을 아는 노동자를 공천해야죠. 그래야 당은 그 계층에 맞는 살아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고, 또 그들을 설득해 표를 얻을 수 있어요.”

    그는 여전히 한나라당 쇄신에 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와 무상급식 논쟁에서도 배울 게 많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당에서 무상급식 주장하면 여당은 의무급식을 주장하면 됩니다. ‘무상’은 거저 준다는 의미가 강하니까 ‘의무’로 바꿔 나라가 책임지는 거죠. 이는 보수정당으로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해요. 예산에 따라 학년별로 단계적으로 추진하면 됩니다. 급식이나 반값 등록금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로 봐야죠. 50대 기성층으로서 20~40대에 참 미안합니다. 우리는 힘들어도 열심히 일하면 집 장만하면서 애들도 키웠어요. ‘신동아’ 11월호 기사(대한민국 40대 보고서)에도 나왔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취직도 안 되고, 신혼집 구하려면 한숨만 나오고, 육아로 고통 받는 2040세대의 고민을 누가 챙겼나요? 당에 서민 의원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겪어봤어야지 알죠. 서울시장선거는 결국 상식의 손을 들어준 거라고 봐요.”

    ▼ 박원순 시장이 시민의 요구를 잘 ‘캐치’했네요.

    “맞아요. 민주당에 입당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국민이 기존 정치권에 분노한다는 것을 간파한 거죠. 민심을 잘 읽은 거죠.”

    기자는 17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로 화제를 돌렸다. 대구·경북지역은 여느 지역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지만, 그는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MB, “선배 좀 도와달라”

    ▼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는데요.

    “한번은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이 나라를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컸어요. 유능한 기업가가 관료국가의 비능률, 비효율을 한 번쯤 경영논리로 일소했으면 했어요.”

    ▼ 그건 명분인데, 실제 캠프에서 요청도 많았죠?

    “박 후보 캠프에서도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이 후보 캠프에서는 이 대통령이 직접 세 번 부탁했고요. 두 번째 요청까지는 답을 못 했어요. 당시 손학규 후보도 있었거든요. 마지막 세 번째 부탁할 때는 편하게 ‘선배 좀 도와달라’고 하시더군요. 앞서 말한 대로 평소 기대도 있어 지지선언을 했어요.”

    ▼ 바람대로 관료국가의 비능률, 비효율은 일소됐다고 봅니까?

    “거 참(웃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가 최근 출간한 책 ‘꺼벙이의 꿈-오으리의 정치 20년’ 152쪽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은 책 요약.

    “지금 와서보니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은 진짜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기업경영은 이익 창출이 목표다. 적자가 있는 조직은 없애면 된다. 그런데 국가는 미우나 고우나 함께 가야 한다. 반대파라고 자를 수 있나? 앞으로 국가경영은 철학과 시대정신이 있는 정치인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가 대통령은 한 번의 경험으로 마무리하는 게 옳다.”

    ▼ CEO 대통령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했는데요.

    “중소기업은 죽든 말든 대기업들은 내부거래를 통해 일감을 몰아주고 다시 부를 대물림해주잖아요? 대기업 자녀들이 왜 빵집을 합니까? 운동경기에도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있잖아요. 기업도 격이 있습니다. 이게 지켜지지 않으면 제도적으로 보완을 해야죠. 내가 원했던 관료국가의 비능률, 불합리는 일소도 못했고, 오히려 국민을 편 가름해버리는 그런 결과가 됐어요. 안타까워요.”

    ▼ 18대 총선을 앞두고 낙천했는데요, 이 후보 지지로 지역 민심이 나빠져서인가요?

    “(안동은) 박 전 대표 강세지역이니 그 여파도 컸죠. 그보다는 당시 집권당 사무총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낙천했다고 봐요.”

    권 사무총장이 요약한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이는 당시 낙천한 다선 의원들의 주장과도 비슷하다.

    “2008년 2월4일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그날 저녁 청와대 류우익 비서실장으로부터 정무수석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타이밍이 안 맞았다. 기자회견을 했고 4선 여당의원으로 안동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나? 정권 핵심은 이때 ‘건방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내부 견제가 들어왔다. 영남에서 자기가 한나라당 맹주라고 생각하는 핵심인사는 자기보다 앞설 수 있는 사람의 싹을 모두 잘라버렸다. 이 세력들은 공천심사위원회에는 대통령의 뜻이라고, 대통령에게는 공심위 뜻이라며 일을 진행했다. 물론 이 일을 한 핵심인물은 자신의 텃밭에서 선거에 나가 낙마하는 대가를 치렀다.”

    ▼ 당시 이방호 사무총장에게 서운했겠군요.

    “지역 패권 다툼에 칼자루를 쥔 사람이 망나니춤을 춘 겁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이명박 정권을 망쳤어요. ‘공천학살’이니 뭐니 해서 그 앙금으로 정권 초기 2년 동안 이명박 정부는 아무것도 못했잖아요?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었지만 친이(親李·친이명박)계는 100명 안팎입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의원을 포함하면 친박(親朴·친박근혜)계는 60여 명 아닙니까? 친박계는 같은 편이지만 적극적이지 않아요. 힘이 모아지지 않으니 결국 미디어관련법 처리 등에서 강행처리도 어려웠고, 정권 초기 국정운영을 지원하지 못했죠. 결국 MB정부 초창기 실패는 인사 실패, 두 번째는 공천 실패였는데 모두 인사 실패였어요. 물론 이 대통령 책임도 있어요. 최종 결정을 내렸으니까.”

    “이명박 정부 망친 사람은 이방호”

    선거판, 특히 공천과 관련해서는 언제나 뒷말이 무성하다. 없는 말도 만들어내는 게 선거판이다. 낙천과 관련해서는 권 사무총장 개인 책임도 있을 터. 이 문제는 기사 말미에서 살펴보자.

    ▼ 출마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로 정무수석 제의를 고사한 건 조금 이해되지 않는데요.

    “2008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박형준, 정두언 의원을 만났습니다. 그땐 선거에 지쳐 있어 입각 문의를 했는데 1주일 뒤 연락이 왔어요. ‘입각은 없으니 선거 준비하라’더군요. 그래서 내려가서 죽기 살기로 선거에 임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기자회견 다하고 (정무수석 제의) 전화를 받았으니 제 기분이 어떻겠어요? 정무수석도 저보다 앞서 몇몇에게 먼저 제의했거든요. 그 일 있고 나서 괘씸죄가 작용했겠죠? 낙천에도 영향을 줬을 거고요.”

    ▼ 낙천 후 미국으로 가셨죠?

    “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불편한 사람이란 걸 그때 느꼈어요. 수양이 덜 된 측면도 알았고요. 정치를 하려면 주변에서 ‘말 잘 듣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도 있어야 하고, 밑질 줄도 알고, 속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주변 사람을 못 챙겼고, ‘혼자 잘난 척하더니 고소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때 제 주변을 많이 돌아봤습니다.”

    ▼ 19대 총선에 출마하실 계획인가요?

    “현재로서는 그럴 계획입니다.”

    ▼ 사무총장 직을 사퇴하셔야겠네요?

    “당장이라도 내려가 주민들을 만나고 싶죠. 그런데 공직자로서 소임이 있잖아요? 한미 FTA 처리 문제와 내년 예산안 심의를 마무리 짓고 내려가야죠.”

    ▼ 예산 처리 법정기일(12월2일) 이후가 되겠군요.

    “네.”

    그는 이 대목에서 잠시 헛웃음을 치더니,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고향에 가면 주민들이 많이 물어요. ‘아직도 이명박이냐?’고요. 그럼 저는 ‘내가 친이(親李) 아닙니까’ 하거든요. 그러니 친한 사람들은 저보고 선거에 악영향 미친다며 ‘친이’라고 하지 말래요. 고향이 ‘친박’ 정서인 것도 있으니까. 저는 손해를 봐도 ‘친이’라고 해요.”

    ▼ 왜요?

    “정서상으로도 안 맞고, 선거 공학적으로도 안 맞는 거 같아요. 좋든 싫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판단했으니까요. 섭섭하다고 서방질할 수 있나요.”

    ▼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통령 사과까지 요구했는데요.

    “그래서 더 짜증이 나요. 저도 대통령 비판을 하지만, 대통령을 선택한 의원들도 공공책임이란 게 있어요. (대통령을 비판하는) 소장파들 중에서는 서울시 부시장 한 사람도 있는데, 대통령 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걸 보니 제 정서와는 맞지 않더라고요. 싫으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죠. 세상은 다 알거든요.”

    새벽이 다가올수록, 그가 입을 가리며 짧은 하품을 하는 횟수도 늘었다. 그의 앞에 놓인 주스 한 병과 물 두 잔은 거의 비워져있었다.

    안동의 대동정신을 한국 정치에 접목시켜야

    ▼ 민주당 호남 지역구 의원 중에는 내년 총선에 서울에서 출마하려는 분도 있는데요. 안동을 고집하는 이유는 뭡니까?

    “저는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얘기합니다. 안동이 보수적이라는 선입관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실제 안동에서는 여자도 제사에 참여하고 재산상속에도 남녀차별이 없었어요. 퇴계학은 노비해방, 며느리 재가 허용 등이 포함돼 있고, 안동은 대동정신이 살아 있는 평등사회였어요.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고요. 저는 대한민국이 선진화되려면 지도층의 도덕성이 바로 서야 한다고 봐요. 그런 정신의 맥을 한국정치에 접목하고 싶어요.”

    ▼ 18대 총선 낙천은 ‘친인척 문제’ 탓도 있었던 거 아닌가요?

    “인정합니다. 18대 총선 전에 안동에서 ‘권오을 친인척이 다 해먹는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건 제 불찰이라고 생각해요.”

    기자가 물은 ‘친인척 문제’는 그의 처남이 18대 총선을 앞두고 안동체육관 내 상업시설 사용권을 낙찰받아 보리밥 뷔페식당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권 의원의 ‘빽’으로 가족이 낙찰받았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의 지지율도 떨어져 33%로 내려앉았다. 이 사실을 안 권 의원은 시장에게 연락해 ‘낙찰을 무효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처남은 정당하게 낙찰받은 것을 무효화했다며 행정소송을 냈고, 1,2심에서 모두 승소해 1년 반 만에 식당을 개업했다. 하지만 재판으로 큰 피해를 봤다.

    “그때 기자회견을 통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합법적으로 낙찰받았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어 운영권을 반납하겠다’고 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밝혀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참 억울했죠. 처남하고의 관계도 소원해졌어요.”

    ▼ 그렇군요.

    “여의도에 오래 있으니 저도 서민을 잊었던 거 같아요. 이젠 한 사람을 만나도 깊이 있게 만나야죠. 그동안 저도 기득권층 행세를 한 거 같아요. 제법 많이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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