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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⑫

“중국인들은 신의 하강을 원했다”

홍수전의 태평천국, 유학 가족주의가 만든 중국적 하느님

  • 이혜경│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동양철학 ahoja@hanmail.net

“중국인들은 신의 하강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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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가 바뀌고 청나라 초기까지 예수회는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테오 리치 사후에 중국에 들어온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는 예수회에서 용인했던 유교의 관습들, 즉 공자 숭배와 조상 숭배 등의 예식을 용인하려 하지 않았으며, 이 전례(典禮) 문제에 로마교황청이 끼어들어 결국 청나라 황제는 이를 주권의 침해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18세기 초기에는 거의 모든 선교사가 중국에서 추방되고 포교도 금지된다. 이후 기독교의 중국 포교는 19세기 초반, 런던 전도회 선교사가 중국에 오면서 재개된다. 제1차 아편전쟁 뒤에야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선교의 자유를 얻게 되지만, 광둥(廣東)성의 광저우(廣州)는 외국인특별거주지역으로 외국인의 거주가 허가된 곳이었다. 아편을 비롯해 유럽의 문물을 거래하는 상인들과 함께 선교사들도 섞여 있었고, 이 선교사들은 본격적인 선교활동의 준비로서 성서 번역에 주력하고 있었다. 태평천국의 건국자 홍수전(洪秀全· 1814~1864)과 기독교 교리문답서 ‘권세양언(勸世良言)’의 저자 양발(梁發·1789~1855)은 모두 광저우 언저리에서 살고 있었다. 양발은 번역된 성서를 출판하는 영국인 선교사에게 고용되어 식자공으로서 번역 성경을 접했고, 이윽고 기독교에 귀의해 중국인 최초의 목사가 되었다. ‘권세양언’은 양발이 선별적으로 이해한 기독교로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천지와 모든 생명체를 여호와라는 이름의 신이 창조했으며,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뱀의 간계로 극락세계에서 향락을 누리다 쫓겨났다. 이 사악한 악마(邪魔) 때문에 본래 선했던 인간은 악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여호와는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지상에 내려 보내 죽게 함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하게 하였다. 인간은 죽은 뒤, 세상이 끝나는 날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 계명을 지키고 하느님을 믿고 꾸준히 선을 행하는 자만이 천상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중국 최초의 목사 양발과 ‘권세양언’

양발은 여호와가 중국 고대 경전에서 언급되는 ‘상제(上帝)’와 동일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교와 불교는 허망한 우상을 숭배하면서 재산을 낭비하고 도의를 해친다고 비판하면서도, 유가경전을 인용하며 기독교의 신을 소개함으로써 중국인들이 느낄 이물감을 줄일 수 있었다. 그는 상제를 숭배하기만 하면 “밤에도 문을 닫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는 이상세계”가 도래한다고 설명하면서, 이것이 바로 ‘태평’의 시대이고 ‘천국’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즉 그는 ‘천국’을 ‘태평’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는데, 이 ‘태평’이라는 용어는 유가적 유토피아 ‘대동’(大同)의 또 다른 용어이며, 그가 묘사한 이 태평의 시대는 그대로 유가경전에서 묘사된 대동 세상의 모습이었다.

이 책은 지식인들을 겨냥해 과거시험장 앞에서 배포되었다. 광둥성의 화현(花縣)이라는 작은 동네 출신의, 23세의 청년 홍수전은 과거를 위한 예비시험을 보기 위해 광저우에 왔고, 여기에서 ‘권세양언’을 손에 넣는다. 이 책에서 얻은 이해를 바탕으로 홍수전은 종교단체를 조직하고, 나아가 신정국가를 세운다. 이 나라를 가득 메운 신도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총명했던 홍수전은 가문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를 등에 지고 7세 때부터 사서삼경을 배웠다. 가난 때문에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었지만, 관료가 되겠다는 독서인의 평범한 꿈을 품고 16세부터 과거에 도전한다. 그러나 과거의 예비시험인 지방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했다. ‘권세양언’을 손에 넣은 뒤에도 과거의 문을 두드리는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연이은 낙방에 따른 절망감은 너무 커서, 24세 때 낙방하고서는 40일 동안이나 빈사상태에서 헤맸다. 그 뒤로도 6년의 세월을 더 보내고서야 그는 과거를 통해 세상에 나가는 길을 단념한다.

“관직은 뇌물로 살 수 있고 형벌은 돈으로 면할 수 있으니, 부자들이 당연히 권력을 잡고 호걸은 절망한다”고 절규했다. 그에게는 길을 내주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다.

그의 생존본능은 다른 살길을 찾는다. 그는 6년 전 빈사상태 때의 경험을 기억해낸다. 그때 그는 하늘나라에 가서 상제, 즉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에게서 자신이 지상에서 할 일을 명받았다는 것이 그가 기억해낸 지난 일이었다. 이 수명(受命)을 기억해낸 데는 손에 넣은 지 7년이 되어서야 읽게 된 ‘권세양언’이 계기가 됐다. 먼 친척 되는 사람이 그의 집에 놀러왔다가 그의 서가에서 ‘권세양언’을 발견하고 빌려가 읽었다. 그 책에 감화된 그 사람은 홍수전에게 돌려주며 일독을 권했고, 그 책을 읽은 홍수전은 그제야 6년 전 자신이 꾼 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꾼 꿈은 이러했다. 정확히는 꿈이 아니라 영혼의 여행이었다. 그의 영혼은 하느님이 보낸 천사를 따라 하늘나라에 가서 하느님을 만났다. 하느님만 만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부인,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예수의 부인, 예수의 자식들을 만났다.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하느님은 그의 아버지였고, 예수는 그의 형이었다. 그는 하느님의 둘째아들이었다.

홍수전의 주장에 의하면 이것은 그가 ‘권세양언’을 읽었기 때문에 꾼 꿈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처음 받았을 때 목차만 대충 훑어보았을 뿐, 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 존재를 알지 못했고, 예수나 천상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하느님의 둘째아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아채는 데에 6년이나 지체한 홍수전은 더 이상은 지체하지 않았다. 유일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모든 우상숭배를 척결해야 하는 그는 즉각 공자의 위패를 치워버리고 사당을 허물었다. 그리고 ‘상제를 받든다’는 의미의 ‘배상제회(拜上帝會)’를 조직하고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포교활동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차근차근 군대를 조직해 이윽고는 1850년 중국의 정통성을 잇는 새로운 국가의 출범을 선포한다. 그 나라의 공식 명칭은 ‘태평천국(太平天國)’이었다. 태평천국은 몰락하는 1864년까지 15년 동안 중국 영토의 반 이상을 점령하며 위용을 과시했다. 중국의 정당한 국가로서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자신의 둘째아들에게 내린 명령이었고, 둘째아들은 그 명령을 실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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