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산을 탕진해도, 온갖 수모를 겪어도 배지를 달려는 판인데, 3선(選)의 민주통합당 정장선(53·경기 평택을) 의원은 스스로 배지를 떼겠다고 했다. 선거법에 ‘걸려’ 피선거권이 박탈된 것도 아니고, 지역구에서 사실상 그의 공천을 위협할 인물도 없다. 요즘 화두가 된 ‘쇄신’ 기준에도 부합한다. 난장판 속에서도 18대 국회 상반기 지식경제위원장을 맡아 지경위를 고성과 파행, 정쟁이 없는 ‘3무(無) 우수 상임위’로 이끌었고, 대학생이 뽑은 거짓말 안하는 정치인 베스트 5, 시민단체 선정 6년 연속 우수 국정감사 의원에 선정되는 등 그의 의정생활은 모범적이었다. 중도 성향의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이미지에 나이도 젊다. 그만큼 그의 불출마 선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2012년 1월 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서자 정 의원은 기자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건넸다.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 이후 기사가 너무 많이 나와 불편했습니다. 신문 사설에서도 거론돼 다른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인터뷰를 사양했습니다. 이해해주세요.”
사실, 그와의 인터뷰는 불발될 뻔했다. 기자는 12월 26, 27일 정 의원과 그의 보좌관에게 두 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그의 보좌관은 “죄송하다”는 말로 인터뷰를 거절한 터였다. 딱히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정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크게 보도되자, 다른 의원들의 시선에 무척 곤혹스러워하는 듯했다. 기자는 속으로 ‘너만 독야청청이냐’는, 의원들의 시기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정 의원은 기자에게 문자메시지(SMS)를 보내왔다. 인간적인 세심함이 묻어나는 내용이었다.
“언론에 너무 나가는 느낌이어서 부담돼서 그랬는데, 미안함이 있습니다. 다시 인터뷰하실 수 있으면 하겠다는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이뤄진 인터뷰는 새해 첫날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됐다.
“해돋이 보러 아내와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동안 연말연초가 되면 송구영신 예배하고 지역구 내 해돋이 행사에 참석했어요. 제주도 가면서도 ‘가도 되나’ 싶더라고요. 오랫동안 참 정형화된 생활에 빠져 있었던 거죠. 아내도 그동안 긴장된 생활이 몸에 배었던지 저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더라고요. 아내에게 너무 늦게 (이런 행복을) 찾아준 건 아닌가 싶어요.”
▼ 불출마 선언을 하니 행복이 보였네요.
“그런가요? 아시다시피 불출마 이유는 이미 국회 기자회견에서 밝혔고요.”
그는 2011년 12월 12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다음과 같이 불출마 이유를 밝혔다.
“2010년 말 ‘4대강 사업 예산’을 두고 국회가 난장판이 됐을 때, 제도적 보완장치를 만드는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이런 일(국회 폭력)이 생기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011년) 11월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또다시 단독 처리되고 본회의장에서 최루탄까지 터진 것을 보면서 불출마를 심각히 고민해왔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작금의 상황에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이후 장세환 민주통합당 의원, 현기환 한나라당 의원 등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도 잇따랐다.
그는 기자회견 당시 잠시 울먹였다. 기자와의 2시간여의 인터뷰 도중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두 번 눈시울을 붉혔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여린 감성으로 17년간 선출직만 5번 당선된 그가 참 신기하다고 기자는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국회는 늘 파행이 있었어요. 많은 의원이 그런 생각할 겁니다. 흔히 말해 국회가 국민의 갈등이나 욕구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보람을 느껴야 하는데, 나아진다고 생각하면서도 국민 눈에는 변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국회가 효율성만 따질 순 없지만 너무 비효율적으로 운영됐어요. 국회 파행 속에 법안 수백 건을 한꺼번에 처리하지 않나…. ‘내가 여기 왜 앉아 있나’하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런 게 반복되니까, 한번 떠나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