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획일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의 취향과 움직임, 신체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의도하는 방식에 적응하며 변화해가는 디자인이 바로 어댑티브 디자인(Adaptive Design)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대로 맞춰주는 디자인은 궁극적인 개인화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96호는 메타트렌드미디어그룹이 선정한 ‘좋은 어댑티브 디자인 사례’를 게재했다. 누구에게나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어댑티브 디자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 날씨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주택 D*Haus Dynamic, D*HAUS COMPANY
디*하우스(www.thedhaus.com)의 주택 콘셉트 디자인인 ‘디*하우스 다이내믹’은 독특한 외관만큼이나 진보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이 집은 총 4개의 모듈로 구성돼 있으며 각 모듈은 절묘한 메커니즘에 따라 회전해 집의 모양을 바꿔놓는다. 집이 들어선 바닥에는 모듈의 움직임을 표시하는 도형이 그려져 있는데 위에서 보면 마치 미스터리 서클을 보는 듯하다. 햇볕을 향하게 하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창문 밖의 풍경을 바꾸기 위해 건물 자체를 움직이는 키네틱 빌딩(Kinetic Building)의 개념에 모듈 구조를 추가함으로써 변화의 폭을 확대한다. 센서를 탑재해 외부 기온이 낮아지면 각 모듈이 서로 붙어서 열효율을 높이고 더운 날에는 모듈을 넓게 배치해 열전도를 막는다.
● 블록의 형태에 맞춰 그림을 표현하는 장난감 TSUMIKI, PPP
PPP(ppp.aircord.co.jp)의 ‘츠미키’는 블록을 쌓는 형태와 위치에 따라 여러 동물이 나타나는 인터랙티브 블록이다. 프로젝션 매핑과 이미지 인식 기술을 이용한 츠미키는 세 가지 방식을 선보인다. 첫 번째 동물 시리즈는 블록을 쌓는 형태에 따라 토끼, 사슴, 기린 등이 나타난다. 동물 블록을 서로 마주 보게 하면 실제 이야기를 나누듯이 소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숫자 시리즈는 블록을 순서대로 놓으면 사칙연산이 되는 형태를 담는다. 나무는 블록 위로 입체적인 나무 패턴을 그려낸다.
사실 블록은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았을 만큼 평범한 도구다. 블록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누구나 갖고 놀 수 있고 어디에 어떻게 블록을 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츠미키는 블록이 가진 범용성과 창의성을 직관적이고도 인터랙티브하게 표현한다.
● 에너지 소비 패턴을 학습하는 온도 조절 장치 Nest, NEST LABS
애플 아이팟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토니 패델(Tony Fadell)이 설립한 네스트 랩(www.nest.com)이 선보인 ‘네스트’라는 실내 온도조절 장치는 6가지의 센서, 학습형 알고리즘, 직관적인 다이얼형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인식하고 이에 맞춰 실내 온도를 조절해준다.
네스트를 처음 집에 설치한 후에는 사용자가 1주일간 네스트를 가르쳐야 한다. 네스트는 특정 기간 난방, 냉방의 정도를 모두 학습하며 내장된 모션 센서로 사람의 집안 출입을 체크하거나 조명 센서, 습도 센서 등을 통해 온도 조절의 필요성을 스스로 감지한다. 와이파이(Wi-Fi) 모듈을 내장하고 있어 사용자가 실외에서 모바일 앱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 또 네스트가 집 안에 2대 이상 있다면 네스트끼리 서로 교신한다. 사용자의 에너지 소비 패턴을 학습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똑똑한 온도조절 장치는 편리하면서도 실용적인 인터페이스다.
● 용도에 따라 적응하는 리모컨 디자인 Toggle, CARBON DESIGN GROUP
TV가 다양한 멀티미디어 능력을 갖추게 됨에 따라 리모컨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TV로 웹 서핑을 하기 위해선 쿼티 키보드가 달린 리모컨이 필요하다. 하지만 버튼이 너무 많은 TV 리모컨은 왠지 거부감이 든다. 단순하면서도 매끄러운 리모컨 디자인을 사람들은 선호한다.
카본디자인그룹(www.carbondesign.com)에서 이러한 욕구를 충족해줄 리모컨을 디자인했다. ‘토글’은 아주 심플한 디자인이면서 TV 리모컨, 쿼티 키보드, 게임 패드, 터치패드의 기능을 가졌다. 토글 리모컨은 표면의 격자 케이스를 상하좌우로 밀고 당겨 리모컨 용도를 네 가지로 바꿀 수 있다. 표면 케이스를 위로 밀면 격자 무늬를 통해 쿼티 키보드가 보이며 이를 터치해 입력한다. 밑으로 내리면 터치패드 모드로 바뀌며 마우스와 멀티터치 기능 등을 사용할 수 있다.
● 용도가 제한돼 있지 않은 카펫 겸용 소파 Karpett, 5.5 DESIGNERS
바닥재 전문 기업 타르케(Tarkett)는 카펫이 됐다가 테이블, 의자로도 변신이 가능한 복합 가구 디자인을 선보였다. 타르케가 바닥에 관한 다양한 디자이너 정신으로 무장한 디자이너 6명을 초대해서 개최한 전시회에서 5.5 디자이너스(www.cinqcinqdesigners.com)는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카펫을 선보였다. 돌돌 말린 상태에서는 등받이가 있는 벤치 의자가 되고 깔개를 펴면 이부자리가, 한번에 쫙 펼치면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돗자리가 된다. 바닥재라는 평면적인 소재지만 돌돌 마는 행위를 통해 입체적인 제품 경험을 만든다.
● 사용성을 정의하지 않은 디자인 UF/O, ARCHETYPES
벨기에 디자인 회사인 아키타입스(www.archetypes.be)의 디자이너 파비아 프란첸(Fabien Franzen)은 용도나 목적이 불분명한 제품 콘셉트를 선보였다. ‘UF/O’라는 제품명은 정의되지 않은 기능/사물(Undefined Function/Object)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디자이너가 제품의 활용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제품에서 디자이너는 사용자 스스로가 창의성을 발휘해 제품을 사용하게 한다. 사용하기에 따라 그릇이 될 수도 있고 책상 위 인테리어 소품이 될 수도 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듈화된 디자인을 통해 디자이너와 사용자의 전통적인 관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역할을 갖는다.
● 자세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소파 Cay Sofa, ALEXANDER REHN
영국의 디자이너 알렉산더 렌(www.alexanderrehn.com)은 자세를 바꾸면 형태도 바뀌는 자연스러운 ‘케이 소파’를 프로토타입으로 공개했다. 이 소파는 앉거나 눕는 자세에 따라 형태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은 휴식을 취할 때 꼿꼿하게 앉아 있기보다는 눕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며 이리저리 자세를 바꾼다. 형태가 고정된 가구에서는 제대로 된 안락함을 누리기 힘들다. 불규칙하게 꺾여 있는 부분들을 조절하면서 자세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찾아간다. 이처럼 사용자의 자세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소파는 사용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 모듈로 다양한 사용성을 제공하는 디지털카메라 Digimo Camera, SANG-IK LEE
디자이너 이상익(designblizzard.com)의 콘셉트 디자인 ‘디지모’는 작은 크기의 카메라 모듈과 스크린이 탑재된 리모트, 카메라에 부착할 여러 개의 액세서리로 구성돼 있다. 리모트는 스크린이 탑재돼 뷰파인더의 역할을 대신하며 무선으로 원거리에서 촬영할 수 있다. 카메라 크기가 작기 때문에 스케이트 보드, 자전거에 부착해 역동적인 촬영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원거리 촬영을 통해 장애물의 제약이 없는 자연스러운 앵글을 담아낸다.
또 모듈을 조합해 3D로 촬영하거나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사용할 수도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모듈화는 기존 카메라의 사용성에 대한 제한을 없애고 사용자에게 높은 자유도를 선사한다. 앵글의 제약에서 벗어나서 촬영자가 어려운 촬영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피사체를 장시간 관찰할 때 더욱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