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찐따 바이러스’ 옮는다 따돌리고 집단폭행·성추행 동영상 돌려보고 교사 자식도 왕따 몰려 자살 시도

충격! 학교 폭력 실태

  • 이영미│다큐멘터리 방송작가 lym99@chol.com

    입력2012-01-20 0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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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로 흉포해지는 학교 폭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따돌림과 집단 폭행, 노예 개념의 ‘빵셔틀’ 등이 일상화된 가운데, 우리 청소년 10명 중 3명은 학교 폭력으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폭력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학교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수도권의 한 여자 중학교

    ‘찐따 바이러스’ 옮는다 따돌리고 집단폭행·성추행 동영상 돌려보고 교사 자식도 왕따 몰려 자살 시도
    학교 행사를 위해 아이들이 모두 학교 건물 밖으로 나간 어느 날. 잊고 온 물건을 가지러 교실에 잠깐 들어온 중학교 3학년 A 양은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인근 중학교에서 넘어온 남학생 두 명에 의해 과학실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한창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인근 학교 남학생들이 어떻게 여학교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과학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두려움에 질린 A 양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가까스로 집에 돌아온 A 양. 울면서 부모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지만, 고민 끝에 부모는 사건을 덮어버린다. 학교의 미온적인 태도도 실망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아이가 느낄 수치심과 왕따 등의 2차 피해가 두려워서였다. 결국 이 소문은 몇몇 학부모 사이에서 은밀히 돌다가, 지금은 거의 묻히고 말았다.

    최근 학교 폭력으로 인한 학생 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그와 함께 이런저런 학교 폭력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선 교사나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요즘 들어 갑자기 학교 폭력이 심각해진 게 아니라고. 그동안 가려지고 밝혀지지 않았던 것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중에는 위의 사례처럼 그냥 묻혀버리는 학교 폭력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폭력 예방 재단’이 2010년 실시한 학교 폭력 전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폭력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 학생은 30.8%, 학교 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 학생은 60.8%, 그 가운데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대답한 학생도 13.9%나 된다. 이쯤 되면, 이제 학교는 더 이상 우리 아이를 안심하고 보낼 만한,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영화 ‘여고괴담’의 한 장면처럼 은밀하고 음침하고, 폭력과 불안과 불신이 만연하는 괴물! 그런 곳이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라는 공간이다.





    # 서울 은평구 한 중학교

    중학교 1학년생 B 군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C 군에게 끊임없는 폭력을 당해왔다. C 군은 매우 교묘한 방법으로 B 군을 괴롭혔다. 어느 날 B 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손등에 난 시퍼런 멍 자국을 보고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 중학교 진학 이후, B 군에 대한 C 군의 괴롭힘의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교사가 없는 시간 등을 틈타 “B와 접촉하면 ‘찐따(과거에는 덜떨어진 남자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요즘에는 ‘찌질한 왕따’를 가리키는 말로 쓰임) 바이러스’가 옮아서 더럽다” 등의 언어폭력을 퍼부었고, 다른 친구를 시켜 B 군의 귀 뒤와 머리 부분을 구타하기도 했다. B 군은 정형외과 치료까지 받았다. 이외에도 성적인 모멸감을 주는 행위를 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롭힘이 계속되자 B 군은 두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다.

    참다못한 B 군의 어머니가 C 군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들은 “우리 아이가 절대 그럴 리 없다. 당신 교사라며? 당신 정도는 어떻게 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며 막무가내식으로 협박했다. C 군의 부모와는 더 이상 말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B 군의 부모는 학교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학교는 교사만 참석한 ‘징계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에게 사회봉사 5일, 상담치료 권고 등의 처분을 내렸다. 결국 B 군의 부모는 C 군을 형사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학교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 폭력을 일선에서 예방할 수 있는 사람은 담임교사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너무 바쁘다. 방과 후 수업, 보충 수업, 학교별 평가에 대비하기 위한 부진아 수업, 생활지도에다가 생활기록부 작성 등 각종 행정 업무까지! 웬만한 소신과 관심이 아니면 내 반에서 어떤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지, 어떤 아이가 집단 폭행을 당하는지 알기 어렵다. 안다 해도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자치위원은 담당교사 외에 의사, 변호사, 경찰관, 학부모 대표 등으로 구성되며, 처리 결과는 모두 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교육청에 보고하면 학교 폭력이 노출되고, 학교 폭력이 노출되면 학교 평가에 불리해지는 것이다. 승진 등을 신경 쓰는 일부 교직원이 되도록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서울 관악구 중학생 D 군

    D 군의 부모는 D 군이 어릴 때 이혼했다. 그 후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란 D 군은 지금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D 군의 소원은 단 하나다. 일진 같은 아이의 곁에 붙어서,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일진은 아니지만, 언젠가 일진이 되리라 결심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D 군은 더욱 거친 행동을 보인다. D 군은 친구가 자기 앞에서 벌벌 떨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 때 비로소 자존감이 생긴다고 했다. 공부도 못하고 부모와 살지도 않는데다 가정 형편도 어려운 D 군. 그런 D 군이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인정받는 때는 폭력으로 그들을 제압할 때뿐이다.

    D 군의 담임교사 E 씨는 D 군과 여러차례 상담을 했다. 먹을 것을 사주고, 때론 같이 손을 잡고 울기도 했다. 그러면 D 군은 그 앞에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잘못했다고 하면서 함께 눈물도 흘린다. 그러나 그뿐이다. 다음 날이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의 돈을 빼앗고, 담배를 피우고, 폭행을 일삼는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기술 시간이었다. D 군이 못이 잔뜩 박힌 널빤지를 친구들에게 휘둘렀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정말이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교과 담당 교사가 D 군을 나무라자, D 군은 “X같이! 학교 안 다니면 되잖아~! XX”이라고 하며, 무단 조퇴를 해버렸다.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이 학교 현장에서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다.

    ‘찐따 바이러스’ 옮는다 따돌리고 집단폭행·성추행 동영상 돌려보고 교사 자식도 왕따 몰려 자살 시도

    친구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물고문까지 저지른 것으로 확인된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가해 학생이 구속, 수감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담임교사는 부랴부랴 D 군을 불렀고, 사건 조사를 철저히 해서 생활지도부에 넘겼다. 그런데 생활지도부 교사가 이런저런 행정 업무로 바빴던 모양이다. D 군에 대한 처벌이 이뤄진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후였다. 그 사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까마득히 잊어버린 D 군은 형식적으로 반성문을 썼고, 특별교육기관으로 보내졌다.

    D 군이 간 곳은 동작교육지원청의 Wee센터. Wee는 우리를 의미하는 We와 교육을 의미하는 education, 감성을 뜻하는 emotional을 합쳐 만든 단어다. ‘우리 함께 감성을 통한 교육을 이뤄나가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부터 위기학생 상담을 강화하기 위한 시범사업으로 Wee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는 Wee센터에서 개인상담, 심리검사, 폭력에 관한 교육, 신체활동과 함께 사회봉사를 하게 된다. 동작교육지원청 Wee센터의 프로그램 중에는 현충원이나 장애인 시설 등을 방문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가해 학생이 프로그램 참여를 거부할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학교 폭력 가해 학생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상담이라고 말한다. 가해 학생은 상담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행동이 피해 학생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가해 학생이 상담에 참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Wee센터는 학교에 그 사실을 통보한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해당 학생을 다시 Wee센터로 보내야 한다. 결국 학생이 가지 않으면 그만인 셈이다. D 군의 경우도 총 5회 상담 중 2회만 출석하는 데 그쳤다. Wee 센터의 한 상담사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상담만이라도 제대로 받는다면 그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갔을 때, 다시 친구들을 괴롭히는 일은 줄어들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 안양 K초등학교 6학년 G 양

    어느 날 밤, G 양의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의 방에서 쿵쿵 하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문을 열어보니, 아이가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서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려 치고 있었다. 일단 아이를 끌어안고 진정시킨 뒤 자초지종을 묻자 아이는 놀랍게도 자신이 은따(은밀히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학교에 가면 말 한 마디 안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급식도 늘 혼자 조용히 먹었다고 했다. 단체 수학여행을 갔던 지난 봄. G 양은 혼자 다녔다. 그것이 너무 힘들어 혼잣말을 하게 되었고, 아이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자, 친구들은 G 양이 미쳤다고 하면서 G 양을 더욱 따돌렸다.

    다음 날. G 양의 어머니는 인근 대학병원 소아정신과로 아이를 데려갔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했다. 왕따를 당한 시간이 제법 길어서 아이를 치료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G 양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학교에 알렸고, 학교와 가정은 유기적으로 협력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조처를 취했다.

    왕따 사례로 봤을 때, G 양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다. 부모 모두가 생업에 바빠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거나 결손가정의 아이인 경우 방치되기 일쑤다. 이런 아이들은 친구의 왕따와 함께 부모의 무관심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G 양의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도대체 내 아이가 왜 왕따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심성이 여려 아이들과 되도록 잘 지내라고 가르쳐 왔단다. 아이들과 싸우면 심리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기 때문에 한 대 때리면 그냥 맞고 큰 싸움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게 문제였던 모양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약한 아이를 지목해서 끊임없이 괴롭히더라는 것.

    그렇다면 대체 어떤 아이가 왕따가 되는가. 김붕년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왕따가 되는 아이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존감이 약한 아이, 다른 하나는 흔한 말로 ‘나대는’ 아이, 말하자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등으로 충동 조절이 되지 않는 아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전자의 피해자, 그러니까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존감이 약한 아이의 경우, 그런 성격 탓에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따돌림을 당하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약해지고, 그렇게 주눅 들고 위축돼 말을 더듬거나 실수하면 그게 다시 왕따의 원인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유형의 왕따 피해자는 세심하게 치료해야 한다. 분노와 억울한 감정이 쌓여 있는 아이에게 ‘너는 정신적인 피해를 당했으니 정신과 치료를 받자’고 접근하면 분노가 더욱 쌓인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부모가 ‘지금 화가 나고 억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며 아이의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김 교수는 조언했다.

    # 서울 S 중학교 1학년 F 군

    F 군은 학급 반장이다. 덩치가 좋고 얼굴이 잘생겼다. 리더십도 있다. 아버지는 전문직 종사자이고 어머니 또한 교육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겉으로 봤을 때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다. 그런데 F 군은 같은 반 친구 하나를 왕따시키고 괴롭힌다. 그것도 은밀히. F 군이 직접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대개 다른 친구를 시킨다. 피해 학생의 교복을 벗겨 화장실에서 오물을 묻히게 하고, 피해 학생의 성기를 여학생 앞에 노출시키고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게 한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부모가 문제를 제기해도, F 군의 부모는 전혀 반응이 없다. 아니, 내 아이는 결코 그럴 리 없다고 한다. 되레 당신 아이한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반응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다.

    겉으로 봤을 때 모든 것이 완벽한 F 군의 가정에는 문제가 있다. 부모와 대화가 단절돼 있으며, 시험 성적이 떨어지면 무자비한 구타가 쏟아지는 것이다. 대신 시험 성적이 좋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F 군은 어떤 의미로는 공부하는 기계였던 것이다. 그런 F 군에게 분노가 차곡차곡 쌓였고, 그것을 해소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 대상이 약해 보이는 한 친구였던 셈이다. F 군은 친구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으로 본인의 분노를 해소해왔다.

    김붕년 교수는 학교 폭력 가해 학생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먼저 품행장애 같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유형이 있다. 이런 가해자의 경우 뇌 발달 면에서 유전적인 특성이 있으며, 사이코 패스로 성장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심리상담과 함께 약물치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울 S중 F 군은 이와 다른 유형으로, 가정에 문제가 있으며, 어려서부터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가해자다. 이 경우는 아이의 문제이기보다 부모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 모두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을 받아야 나아질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 학교 폭력 해법은?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 폭력 문제의 해법으로 성적 위주, 서열 위주 교육 정책을 바꾸고 인성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든다. 그러나 이런 원칙론으로는 지금 학교 현장의 절박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피해 학생의 학부모들은 가해 학생에게는 자신의 행위가 ‘형법’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저촉되는 분명한 범죄행위임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상당수 가해 학생이 재미로, 별다른 죄의식 없이 학교 폭력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강경한 피해 학부모는 필요하다면 형사처벌도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형법 제9조다. 형사미성년자에 대해 규정한 이 조항은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로 돼 있다. 만 14세가 되지 않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경우 어떤 행위를 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는 이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입장은 조심스럽다. 이사라 교과부 학교폭력근절팀 연구관은 “현장의 요구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인권 등의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실효성 있는 피해 학생 보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는 ‘피해 학생의 보호와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가해 학생을 전학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가해 학생이 학교의 전학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해 학생과 학부모가 전학을 가지 않겠다고 버틸 경우,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에 대해 이사라 연구관은 “보다 강력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의 전학이 학교 폭력을 막는 데 실효성 있는 조치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서울 관악구 E 교사는 “전학을 보내면 일단 학생이 한풀 꺾이기 때문에 소기의 효과는 거둘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 학교 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교 측이 사건을 은폐하지 않도록 할 대책 마련도 요구된다. 최근 드러나는 사례에서 보듯, 교장이나 교감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고 해당 사건을 교육청에 보고하는 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 학교 폭력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교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가해 학생과 그 부모가 함께 특별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가해 학생과 학부모의 동반 특별교육 이수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8항에도 ‘자치위원회는 가해 학생이 특별교육을 이수할 경우 해당 학생의 보호자도 함께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관련해 김붕년 서울대 교수는 “가해 학생과 부모가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은 학교 폭력 재발 방지에 매우 효과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1월 초 미국 플로리다 주 칼리어카운티 법원은 왕따 피해자가 가해 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에 대해 정당방위라고 판결했다. 현지 언론은 이날 판결이 플로리다의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라는 법에 따른 것이라며, 이 법은 위협을 느꼈다고 판단하는 사람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규정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는 이 판결에 우리나라 많은 학부모의 이목이 집중된 건, 그만큼 우리 학교 현장이 폭력에 물들어 있기 때문 아닐까.

    # 취재 후기

    필자는 학교 폭력을 취재하기 위해 일선 교사와 학부모를 면담했다. 피해 학생 쪽이든 가해 학생 쪽이든 학부모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오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을 잊을 수 없다. 현직 교사인 이 학부모의 자녀는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이후 아이의 표정이 우울하면 가슴이 무너진다는 그는 자다가도 몇 번씩 일어나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숨소리를 확인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집에 있는 긴 끈도 모두 치워버렸다. 그를 통해, 학교 폭력이 궁극적으로는 가정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필자에게 말했다. 아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양보하라고 가르쳤다고. 누가 한 대 때리거든 그냥 맞아주라고 했다고. 참는 게 이기는 거라 했다고.

    필자에게는 이번에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이 있다. 그 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가르쳐왔다. 누가 널 한 대 때리거든 두 대를 때리라고. 코피가 나도 상관없다고. 만약 네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엄마가 책임지겠다고!

    피해 학생 학부모의 눈물 앞에서, 부끄럽게도 필자는 안도하는 마음을 가졌다. 적어도 내 아이는 만만해 보인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지는 않겠구나 하고. 그리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왕따의 고통으로 인해 자살까지 시도한 아이의 엄마 앞에서, 내 아이는 왕따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물색없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인 건 아닌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본 한강. 차가운 햇빛이 반사된 한강의 여울이 내 가슴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인권위 상담사례 통해 본 ‘학교 폭력에 손 놓은 학교’ 실태

    “친구한테 맞았다고요? 그냥 합의하세요!”


    ‘찐따 바이러스’ 옮는다 따돌리고 집단폭행·성추행 동영상 돌려보고 교사 자식도 왕따 몰려 자살 시도
    학교 폭력 피해자 중 상당수는 학교 측의 사건 대처 방식에 분통을 터뜨린다. 인권위가 학교 폭력 관련 상담 내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일부 학교는 가해자의 명백한 폭행이나 따돌림을 인지하고도 ‘친구 사이의 장난’ 정도로 치부하며 방치했다. 사건 무마를 위해 가해자와의 합의를 종용하거나 나아가 적극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A 씨는 2009년 초등학교 3학년 딸이 가슴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해 병원에 데려갔다가 깜짝 놀랐다. ‘폭행에 의한 흉부 타박’이라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오른쪽 복부에서는 혈종도 발견됐다. 알고 보니 딸은 2학년 초부터 거의 매일 화장실에 끌려가 매를 맞고 있었다. 가해자는 상급학년 여학생이었다. A 씨는 즉시 이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알렸지만, 학교 측은 증거가 없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진단서를 끊어 내밀어도 ‘가해자와 합의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학교장에 대한 면담 요청이 거부당하고, 악몽에 시달리던 딸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및 정신발달지연’으로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자 결국 A 씨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이후 비로소 학교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정신병원 퇴원 후 학교 복귀를 돕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중학생 B 양은 지난해 학교 수련회에서 같은 반 친구 6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신고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위협도 받았다. 가해자들은 이후에도 폭행 장면 촬영 영상을 돌려보며 공공연하게 B 양을 비웃었다. B 양이 담임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동영상 유포를 막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교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B 양의 부모는 “교사의 태도 때문에 아이가 더 큰 상처를 입었다”며 인권위 문을 두드렸다.

    “다른 학교 가도 또 맞을 것” 막말

    고등학생 C 군의 어머니도 인권위를 찾았다. 지난해 전학을 간 C 군은 새 학교에서 30명 정도의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육과 학생 4명에게 매를 맞았다. 턱뼈가 부러지고 이가 흔들릴 정도로 크게 다쳤다. 그러나 피범벅이 된 채 양호실에 누워 있는 C 군을 보고 교장은 박수를 치며 “네가 우리 학교 역사를 새로 썼다”고 비아냥댔다. 학교를 찾아간 부모에게도 “교육을 잘못한 것 같다. 엄마를 보니 알겠다. 다른 학교를 가도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학교장이나 교사가 학교 폭력에 부적절하게 대처할 경우 인권위는 피해자와 학부모의 인격권 침해 등을 검토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2005년 4월에는 인권위가 학교장과 담임교사 등에게 피해자에 대한 사과 및 정기적인 학교폭력 예방교육 실시를 권고한 일도 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생이던 D 군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뒤통수를 맞는 등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이를 알게 된 부모가 두 차례 담임교사를 찾아가 보호와 재발방지를 부탁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후에도 D 군이 매를 맞다 기절하는 등 피해가 계속됐다. 부모가 다시 학교를 방문해 전학을 위한 교장 추천서를 써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역시 학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D 군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약 6개월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학교장과 교사가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를 게을리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앞으로 학교 폭력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계획이다. 윤설아 인권위 사무관은 “최근 일선 학교에서 학생 간 폭력 및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교사의 학생 체벌, 교사의 권리 훼손 등이 잇달아 벌어지면서 학교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학생, 교사 등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12월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연구 기획안’을 구성했다. 교육당국과 교원 및 학부모단체, 일선 교사, 학생 등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인 정책권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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