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자락, 비탈면에 걸터앉은 유리벽 집은 아닌 게 아니라 아름답다. 건물에 들어서면 큰 창이 빛을 모아 자연광만으로도 눈이 부시다. 본관 불각재(不刻齋) 앞 소담한 정원과 별관 중정의 측백나무 뜰, 하늘을 담아내는 거울 연못과 돌다리가 놓인 작은 개울이 곳곳의 창을 통해 내다보인다.
불각재 공간은 깊다. 경사진 지형 위에 건물을 올린 탓에 안으로 안으로 이어진다. 천장은 공유하면서 내부 공간만 분리해 제1 전시실에 서면 한 층 아래 제3 전시실, 또 그 아래 제4 전시실까지 3단계 공간이 들여다보인다. 이곳에서 사미루로 건너가는 길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구름다리다. 복도 한쪽에는 정원으로 이어지는 유리문도 마련돼 있다. 본관과 별관과 정원, 불각재와 사미루와 야외 전시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한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 다니는 재미가 색다르다.
이곳은 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로 꼽히는 고 김종영 작가를 기념하는 공간. 2002년 타계 20주년을 기념해 유족과 제자들이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조각 전문 갤러리로, 김종영 작가의 작업과 더불어 신진·중견 조각가의 작품을 연중 전시한다. 권한나(30) 학예연구사는 “조각의 매력은 공간과 조명,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을 풍긴다는 점”이라며 “우리 미술관은 설계 단계부터 조각 전시를 염두에 두고 벽의 변형 등 재미있는 공간 구성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작품과 관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열린 예술에 대한 지향은 ‘불각’을 조각의 기본으로 삼은 김종영 작가의 철학과도 통한다. 작가는 참된 조각이란 재료가 가진 고유한 감각과 생명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1953년 국내 조각가 중 최초로 해외 공모전에서 입상했을 만큼 널리 인정받은 작가였음에도, 기교를 내세우기보다 자연미를 살리려 했다. 그의 작품이 하나같이 군더더기 없고 소박한 이유다. 권 학예연구사는 김종영 조각의 특징으로 ‘평담함’을 꼽았다. 고요하고 깨끗하며 욕심이 없다는 뜻이다.
작가는 심지어 자신의 작품에 제목도 달지 않았다. 불각재에서 진행 중인 김종영 특별전 ‘곡선(曲線)’의 전시작 앞에는 그의 사후 제자들이 연도별로 분류해 정리한 ‘Work78-14’ 따위의 고유 번호가 붙어 있다.
현재 김종영미술관에서는 ‘곡선’ 전과 함께 작가 사망 30주기 기념전 ‘나의 살던 고향, 꽃대궐’ 전도 열리고 있다. 동요 ‘고향의 봄’의 실제 배경인 김종영의 경남 창원 생가를 소개하는 전시다. 2005년 등록문화재 제200호로 등록된 작가의 생가는 한때 창원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었다. 한마을에 살던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화창한 봄날 그 집을 보던 기억을 떠올려 ‘고향의 봄’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대궐’가사를 썼다. 3월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생가 사진과 영상물, 각종 현판 등 관련 자료가 공개된다.
●위치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3-2
●운영시간 3~10월 : 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11~2월 : 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휴관)
●문의 02-3217-6483
1 김종영미술관 본관 불각재에서는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김종영 작가의 조각 작품이 상설 전시된다.
2 경사진 언덕에 기대앉듯 자리 잡은 김종영미술관 전경. 큰 창 너머로 북한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 카페는 평창동 명소로 손꼽힌다.
3 잘 가꾼 정원과 조각이 어우러져 색다른 볼거리를 주는 불각재 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