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시지 않고는 목마름을 해결할 길이 없다.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는 사람이 대중가요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충족시켜준다. 추억에 잠기고 싶을 때 추억을, 아픔을 위로받고 싶을 때 위로를 선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언론에 대입될 수 있다.
사람이 원하는 것 채워줘야
사람은 언론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 ‘진짜 언론’은 바로 이것을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예컨대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반칙과 꼼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사람은 이러한 현실을 신랄하게 드러내고 그 속의 본질을 깊이 있게 통찰하는 뉴스를 찾는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고 흐르는 강물을 막으면 그 옆으로 돌아가는 이치다.
종이신문이 지금은 올드미디어 취급을 받고 있지만 18세기엔 혁신적인 뉴미디어였다. 한때 신문은 정치적 종교적 신념에 의해 분열되고 상대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다시 공중에 봉사하는 순기능을 되찾는다.
이때 신문은 광고주와 중산층 독자라는 탄탄한 물적 기반을 얻는다. 전신(telegraph)의 발명으로 사실 중심의 간략한 정보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정파적인 정보가 아닌 공정하고 객관적인 뉴스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1896년 미국 ‘뉴욕타임스’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는 “아침 식탁을 더럽히지 않는 신문”을 표방한다. 광고와 구독료를 매개로 하는 지금의 정론지 모델이 정착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최근의 디지털 혁명은 종이신문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우선 광고 수익이 급감하고 있다. 포털, 블로그, 온라인 커뮤니티, 인터넷 언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신문에 몰렸던 상품광고는 분산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공짜 뉴스를 마음껏 보게 되면서 구독자 수도 줄고 있다.
신문사도 이윤을 남겨야 하는 민간 기업이다. 수익구조가 나빠진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다. 뉴스 제작비용을 줄여나가는 방법을 손쉽게 찾는다. 당장 해외취재비용이 드는 국제 뉴스의 양과 질이 저하된다. 외신기사, 연합뉴스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해외특파원 수를 보면 미국, 중국, 일본 언론은 우리 언론보다 훨씬 많다.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투여해야 하는 탐사보도도 지면에서 축소되는 양상이다.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광고 의존도가 급격하게 높아진 상태이므로 신문이 이들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신 정치적 편파 보도 등 언론답지 못한 태도를 가끔 노출한다. 또한 저렴한 비용으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자극적, 선정적으로 뉴스를 제작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세상과 다르게 가는 뉴스
세상은 어떠한가. 전 세계는 더 밀접하게 통합되고 있다. 양질의 국제 뉴스는 이제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이 되고 있다. 국제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보자면 AP나 CNN 같은 국제 뉴스에 강하고 전 세계에 독자와 시청자를 둔 언론사를 가진 나라가 국제사회 여론을 주도한다. 정부와 기업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신문의 환경감시 기능은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언론으로부터 기대하는 이러한 점과는 다른 방향으로 신문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문은 수익 저하, 뉴스 품질 저하, 위기 심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당연히 저널리즘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자각은 미국에서, 온라인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다.
2007년 7월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장 폴 스티거는 사표를 제출했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월스트리트저널 인수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이해 겨울, 스티거는 한 독지가로부터 1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당신이 원하는 뉴스를 한번 만들어보라”는 주문이었다. 스티거는 정치적 압력이나 경제적 압력에서 자유로운 ‘언론다운 언론’을 만들겠다고 했다.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이렇게 탄생해 2010년, 201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나는 언론이다’와 같은 선언과 실천이 우리 신문에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