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으로 기업 구성원은 생산 요소이자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됐다.
-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직원들을 믿고 기업을 맡기며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경영 방식으로 성공한 기업들이 있다.
- LG경제연구소가 최근 펴낸 ‘괴짜 기업들의 인사 철학’을 통해 이들 기업의 경영 방식, 인간에 대한 믿음 및 철학 등을 살펴본다.
임원 연봉을 제한하고 팀 주도 채용을 실시하는 홀푸드마켓.
“진행자님, 저희 부장님께 OOO의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어 신청합니다. 그리고 저만 계속 쳐다보시지 말아달라고 해주세요. 딴 짓을 못하겠어요. ^^;;”
애교 섞인 신청 사연을 소개한 진행자가 덧붙인 그 다음 멘트가 더 재미있다.
“네. 신청하신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부장님들의 역할이 그런 거 아닌가요? 직원들 감시하는 거… 하하하.”
그렇다. 회사에서 직원들은 상사에게서 감시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 다른 곳에서는 성인으로 대접받으면서 유독 기업에서만 미성년자로 대우받는데, 이를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왜 그럴까? 조직의 업무를 세분화해 사람들에게 할당하고 그 일을 규정대로 수행토록 감시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조직운영 방식이라는 게 20세기 초반 프레드릭 테일러(Fredrick W. Tayor)의 과학적 관리 이래로 조직 운영에 관한 경영학의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의 업무 환경이 급격하게 달라지고 있다. 전화나 메신저로 업무 협의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메일도 스마트폰으로 장소에 구애하지 않고 확인할 수 있으며, 근태나 일상 업무의 승인이나 경비 결제도 전산시스템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도 전화 연락이 오기도 하고, 집 컴퓨터로 회사 전산시스템에 접속해 회사 메일을 확인하거나 업무를 처리하는 일도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바일화의 진전에 따라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1년 365일 근무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그 결과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요즘 추세에 역행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직원들에게 주말은 주중의 5일 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직원의 건강과 조직 성공을 위해, 모바일 시대에 바람직한 ‘일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일주일 내내 주말인 회사
모바일 시대의 일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는 회사가 바로 셈코(Semco)다. 이 회사는 선박용 펌프 제조로부터 시작해 지금은 하이테크와 서비스 분야까지 진출한 브라질 기업이다. 1994년 연매출 3500만달러에서 2003년 2억1200만달러로 고속 성장을 이뤘고, 지금도 매년 3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 샐러리맨의 천국으로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던 ‘일본 미라이공업의 브라질판’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셈코는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준다. 으스스한 일요일에 일을 하고, 화창한 월요일에는 해변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셈코 계열사 중 재고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 RGIS사 최고경영자 마르시오 바토니는, 화요일 오후면 늘 부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 자식들이 크는 동안 한 번도 학교에 가보지 못했던 화물 배송 담당직원 안토니오 산토스는 최근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손녀딸을 데리러 학교에 갈 수 있다.
셈코의 퇴직 프로그램(Retire-a-Little)도 이름처럼 재미있는 제도다. 사람의 체력은 20대와 30대가 정점인 반면, 60세 전후가 되면 급격하게 저하된다. 반면 경제적 능력과 시간은 50~60세 무렵으로 갈수록 많아지고 20대와 30대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건강할 때는 시간과 돈이 부족하고,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길 때에는 체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 셈코는 일주일 중 한나절 정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퇴직시간을 미리 구매해서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수입은 다소 줄지만 직원은 회사와 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셈코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근무시간에 맞춰 급여를 스스로 정하고, 심지어 사장도 시니어 멤버가 돌아가며 맡는다. 그럼에도 회사는 한마디로 말해 잘 돌아간다.
이런 독특한 경영 방식을 도입한 것은 리카도 세믈러(Ricardo Semler)가 1980년 회사 경영을 맡으면서부터다. 리카도는 하버드대학 MBA를 마치고 도산 직전의 회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미라이공업의 야다마 아키오 사장과 리카도 세믈러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사업체에 합류하기 전에 야마다 사장은 연극에, 리카도는 로큰롤에 미쳤다는 사실이다. 연극에 미쳐 아버지 회사에서 쫓겨난 야마다 사장은 “내가 경영자로서 배워야 할 것은 연극에서 모두 배웠다”고 했다. 막이 오르고 나면 연극은 배우에게 모두 맡겨야 한다는 것.
샐러리맨의 천국이자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가 넘치는 고성장 기업의 경영자로서, 두 사람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마다 사장은 “사람에게는 채찍이 필요 없으며, 당근만 있으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인간은 말이나 소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카도 역시 “인간은 선하고 책임감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는 “마감이 급하다는 걸 뻔히 아는 기자가 한가하게 영화 관람을 할까? 배우가 막이 올라가길 기다리는 관객을 내버려두고 딴 짓을 할까? 어두운 터널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승객을 두고 전철 기관사가 손녀딸을 데리러 학교에 갈까?”라고 반문한다.
이런 회사를 보면서 “과연 그런 실험적인 경영 방식이 얼마나 오래갈까?”하는 의심도 든다. 이런 물음에 해답을 제공해주는 회사가 있다. 바로 고어(W.L. Gore · associates)사다. 고어사는 이처럼 남다른 독특한 경영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한 지 이미 50년이 넘은 회사다.
미국 델라웨어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고어사는 1958년에 설립돼 2010년 기준 매출액 26억달러, 직원 수 9000명에 전 세계 30여 개국에 50여 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비상장 기업이다. 우리에게는 ‘고어텍스’라는 기능성 의류로 잘 알려져 있다.
고어사에는 보스가 없다. 단지 옆에서 후원하는 스폰서가 있을 뿐. 공식 직함은 사장과 재무담당 임원, 딱 두 사람만 있다. 그마저 외부와의 관계 때문에 불가피하게 만든 자리다. 고어사의 현 사장인 테리 켈리(Terri Kelly)는 직원들이 뽑은 사장이다. 신입사원은 자신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할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고어사 구성원들도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며 적응하는 데 몇 개월이 걸린다.
보스가 없는 이상한 기업
그럼에도 이 회사는 31년 이상 연속 흑자 기록에 1969년에 600만달러이던 매출이 1990년에 6억6000만달러로 증가하면서도 부채 없이 성장했다. 그리고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이 발표하는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에 1984년부터 지금까지 연속 선정되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고어사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물 경제(present economy)’라고 압축할 수 있다. 선물 경제란 제품 챔피언이 사업 아이디어를 갖고 동료들에게 그 가치와 성공 가능성을 설득해 사업팀에 참여해주기를 요청하고, 그에 동감하는 동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헌신을 제공한다(서로에게 선물한다)는 의미다.
연구원 데이브 마이어스(Dave Myers)가 엘릭시르(Elixir)라는 기타줄 사업을 제안한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전선 피복으로 사용되는 자사의 재료로 자전거 바퀴살에 실험적으로 코팅을 해본 결과 보호 작용을 훌륭히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기타줄에 적용하기로 하고, 음색이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동료를 모았다. 팀에 합세한 동료들의 헌신적 노력을 바탕으로, 사업팀은 3년 후 경쟁사 제품보다 음색이 3배나 오래가는 제품을 개발했다.
직원의 창의성을 촉진하고 팀워크를 장려함으로써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다른 기업들에 고어사는 닮고 싶은 모델이다. 실제 고어사의 독특한 경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 많은 회사의 임원들이 고어사를 방문한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가 회의만 품고서 되돌아간다. 왜일까?
첫째, 고어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다. 고어의 리더들은 명령을 내릴 부하가 없고, 자발적으로 따르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거나 적으면 자연히 자신의 권한도 줄어든다. 관료제 조직에 익숙한 리더들에게는 이런 점이 불안스럽고 못마땅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연구대상은 되었지만 모방할 대상은 아니다.
둘째, 고어사의 경영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민주주의 정부가 독재 정권보다 삶의 질의 측면에서 낫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시간과 비용 면에서는 최선의 국정운영 방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과 비슷하다. 스피드가 중요한 사업이나 엄격한 관리가 요구되는 하이테크 제조업 조직과는 맞지 않는다.
셋째, 경영자는 대부분 관료주의의 낭비를 줄이는 일에 찬성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해당한다. 간접 조직과 계층 축소 등은 할 수 있지만 업무에 대한 자신의 통제권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창업자 빌 고어의 믿음과 철학
고어사가 이 같은 매우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경영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은 창립자 빌 고어의 철학 덕분이다. 빌 고어는 듀폰사에서 16년을 근무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빌 고어는 조직의 계층이 개인의 창의성을 억누른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두터운 공식 계층을 가능한 피하려고 했다. 또한 한 사업장 내 인원이 150~200명을 넘지 않도록 회사 방침으로 정립해, 구성원들이 서로 친밀한 분위기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1967년 빌 고어는 격자 조직이라는 수평적인 조직 구조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를 다듬어 1976년에는 ‘기업 철학 :격자 조직’이라는 문서를 전사에 배포했다. 그리고 종업원(employees)이라는 말 대신에 동료(associates)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임금 인상도 보스가 없으니 자연히 동료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정하는 제도로 발전하게 됐다. 이러한 경영 방식들은 빌 고어의 철학에서 출발해 이후 조직을 움직이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런 독특한 경영방식은 기업 속성상 고객의 선택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산출물과 성과로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도 없고 지속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사례로 살펴봐야 할 기업이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이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홀푸드마켓은 1980년에 설립되어 2010년 기준 매출액 90억달러, 직원 수 5800여 명에 북미와 영국 지역에 300여 매장을 운영하는 유기농 식품 전문 유통업체다.
사랑받는 기업 홀푸드마켓
홀푸드마켓 설립자인 존 매키.
홀푸드마켓이 이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지향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증가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홀푸드마켓 자체의 남다른 경영 노력도 한몫했다. 주로 이민자와 소수 민족들로 구성된 홀푸드마켓의 직원은 대부분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받을 뿐 아니라, 매장별로 여러 사안에 대해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봉사활동을 위해 연간 20시간 이상 유급휴가를 쓸 수 있다. 이외에 다양한 제도 덕분에 홀푸드마켓은 매년 포춘지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리스트’에 선정되고 있고, 또한 지속 가능한 기업 목록에도 이름이 오를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부분의 하나가 미국 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보상 정책이다. 홀푸드마켓의 최고경영자 보수는 다른 포춘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 평균 연봉보다 훨씬 낮다. 일반적인 미국 대기업의 경우 스톡옵션의 70% 정도를 임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반면, 홀푸드마켓의 임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스톡옵션은 7%에 불과하고 93%는 직원들의 몫이다.
또한 모든 직원의 급여가 공개되고, 고위 경영진의 임금을 평균적인 직원 임금의 19배로 제한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직원들은 임원의 연봉이 20배 이상일 경우에는 불공정하다고 인식한다. 물론 좀 더 평등 지향적인 한국에서라면 조금 더 보수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일선 직원이 매장에 어떤 제품을 들여놓을지 스스로 결정하고,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각 팀이 노동 시간당 이윤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다음 달 급여가 차등 지급되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업무에 대한 압력이 상사가 아니라 동료에게서 오며, 신규 채용에 대해서도 기존 직원들이 동의해야 이루어진다. 신입 채용 대상자가 한 달 동안 인턴 생활을 한 이후 그 결과를 보고 기존 직원들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만 입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직원들을 믿고 기업을 맡기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그렇다면 이런 조직 운영 방식을 선택한 결과 구성원들의 행동 방식은 어떻게 나타나고, 고객들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4년 전 크리스마스 때 홀푸드마켓의 한 매장에서 결제시스템이 고장 났다. 고객들은 물건값을 치르지 못해 불평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매장 총괄매니저가 나섰다.
“우리가 잘못해서 불편을 드리고 소중한 시간까지 빼앗았으니 손님들께서 고르신 물건들은 모두 공짜로 가져가십시오. 그래도 꼭 물건값을 치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그 돈은 자선단체에 기부해주십시오.”
“임원 연봉은 직원의 19배를 초과할 수 없다”
혼란은 순식간에 감동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고객들은 홀푸드마켓에 대한 입소문을 냈다. 언론도 홀푸드마켓을 ‘고객과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이라 칭찬했다. 홀푸드마켓이 손님들에게 받지 않은 물건값은 약 4000달러였지만, 40만달러 이상의 홍보효과를 거둔 것이다. 그 덕분인지 홀푸드마켓은 다른 기업들보다 매우 낮은 마케팅 비용만을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마케팅 담당 임원이 아예 없다. 그래도 지난 10년간 주식 누적수익률이 1800%로 미국 식품 유통업계 중 최고다.
미국 벤틀리대 마케팅 교수인 라젠드라 시소디아(Rajendara S. Sisodia) 교수에 따르면 유난히 고객의 사랑을 받는 기업들이 있다고 한다. 마케팅에 큰돈을 퍼부어도 고객 만족도나 신뢰도, 직원의 충성도가 크게 높아지지 않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홍보조차 하지 않는데도 종업원과 협력사, 고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수익성도 뛰어난 기업들이 있다. 고객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 그 결과 재무적 성공도 달성하는 기업은 기업의 존재 목적이 단순히 이윤 추구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공동 이익 추구다.
이들 기업의 경영 방식은 앞서 언급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선뜻 흉내 내기 어려운 면이 많다. 그러나 창의와 자율이 요구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이들 기업이 구성원들의 주인의식과 창의를 꽃피운다는 점에서 배우고 싶은 기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들 기업의 세부 제도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를 촉발시킨 경영자의 인간관이고, 나아가 이를 직원들과 함께 구체적인 경영방식으로 만들어나가는 모습이다. 빌 고어는 듀폰 재직시절 기존 조직과 별개로 구성된 태스크팀에서 일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의 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지금의 경영자들도 이처럼 자신이 성장하면서 어떨 때 가슴속에 열정이 꽃피었는지를 되새겨보고,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