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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상층부 지시에 의원은 분자…독립된 역할 못했다”

4선 도전 접고 떠나는 정장선 의원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상층부 지시에 의원은 분자…독립된 역할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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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2006년에 3억4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사면서 진 빚(1억6000만 원)을 다 갚아 그나마 마음은 홀가분하다며 웃어 보였다. 지난해 둘째 아들이 등록금이 비교적 싼 한국기술교육대에 합격한 것도 다행이라고 했다. 지난해 3월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정 의원 재산은 3억9800만 원이었다.

“생계를 고민해야 하지만 걱정은 없어요. 의원을 하면서도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해 생활이 불편할 건 없어요. 의원 시절에도 공항 VIP룸은 거의 이용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 집안이 어려워 허리띠 조여 매는 건 자신 있어요(웃음). 두 아들과 집사람도 잘했다고 하고….”

3남1녀 중 둘째인 정 의원은 군 부사관이었던 아버지가 제대를 하고 운전을 했지만 생활은 넉넉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은 서울서 공부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 중동고에 입학했지만, 당시 이산(離散)의 아픔이 커 지금도 ‘기러기 아빠’는 싫다고 했다.

▼ ‘가장’의 불출마에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해병대에 있는 큰아들과 집사람은 잘했다고 해요. 그동안 교사인 집사람이 남편 뒷바라지한다고 고생 많았는데 ‘홀가분하다’더군요. 둘째 아들은 ‘노력했는데 잘 안 돼 정치를 그만두려 한다’고 했더니, ‘그럼 정치를 계속해 바꿔야 하지 않느냐’고 하기에 순간 잠시 흔들렸어요.”



정 의원 역시 학부모였다. 자녀 얘기를 해보라고 했더니 교육문제부터 풀어놓았다.

“공부 좀 하는 애들은 기숙사 생활을 시키는데 아이들이 적응을 잘 못했어요. 우리나라 교육은 경쟁과 성적을 너무 강요해요. 졸업 후에도 무한경쟁 속에 살잖아요. 큰아들이 부산대 러시아학과에 다녔는데 제가 추천했어요. 지경위원장 하면서 러시아를 둘러보니 러시아는 자원과 농업 부문에서 굉장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더군요. 지방에서 생활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지방의 아픔도 체험해보라고 했어요. 둘째 아들은 자동차 튜닝 마니아여서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한국기술교육대에 입학했고요. 자기가 좋아하고 또 블루오션이잖아요. 학부모들을 만나면 자녀를 중동이나 인도네시아, 브라질 같은 블루오션의 전문가로 키우라고 해요. 무조건 서울로 몰리는 것도, 미국과 중국, 유럽에 관심을 갖는 시대는 아닌 거 같아요.”

이쯤해서 기자는 그동안 그의 정치 역정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대통령비서실 정무과에서 일했고, 1995년 제4대 경기도의회 의원에 선출된 뒤 한 차례 연임하고, 2000년 4월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했다.

▼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하기 전 민주정의당 공채로 당료 생활을 했죠?

“그건 별 의미가 없어요. 대략 2년 했나? 그때 이한열 씨 사건도 있었고….”

그는 더 이상 당료 생활에 대해선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다.

5년 도의원 생활에 빚 6000만 원

▼ 언제부터 출마를 생각했나요?

“노태우 정부에서 정무과장을 하면서 당시 지방자치법을 만들었어요. 미국과 일본, 유럽 모델을 연구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도쿄(東京)에서 지방으로 내려가자는 운동’이 활발했어요. 그걸 보면서 지방자치에 대해 눈을 떴죠. 평택시장에 출마하려고 했는데 1995년 5월 평택군, 평택시, 송탄시가 합쳐져 도농복합형 통합시가 되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무소속으로 도의원에 출마했죠. 1998년에는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소속으로 출마했어요. 무소속의 한계도 느꼈고, DJP 공동정부여서 선택했어요. 5년간 도의원을 하니 빚만 6000만 원 생겼어요. 보좌진도 없으니 혼자 조례 만든답시고 밤새도록 평택을 누비고 다녔죠. 지역 환경신문도 만들고 토론회도 개최하고, 지금 생각해봐도 그땐 참 열심히 했어요(웃음).”

▼ 2000년 4월에는 새천년민주당으로 출마했죠?

“당시 민주당 이인제 선거대책위원장이 간곡히 부탁했어요. 그전까지는 시장만 생각하고 있어 총선거가 언제 있는지도 몰랐어요. 아마 한나라당과 자민련 후보는 있었는데, 민주당 후보가 약하니까 저를 후보로 영입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돈이 없었어요. 생활비 한번 제대로 가져다주지 못했는데 참 미안하더라고요. 마침 카드사에서 SMS가 왔는데, 신용으로 1000만 원 대출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어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1000만 원을 대출해 뛰어들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 3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나요?

“많죠. 주한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평택항 건설, 경제자유구역 같은 굵직한 일이 많았어요. 평택의 격변기에 국회의원을 해 솔직히 힘들었고요. LH공사가 경기침체와 재무구조 악화를 이유로 경제자유구역 사업 시행을 포기한 것과, 쌍용차 무급휴직자 복직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맘에 걸려요. 다음 의원이 잘 풀어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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