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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인터뷰

“한미 FTA 앞장섰던 정동영의 변신…이념도 무상, 정치도 무상”

갑옷 벗은 검투사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한미 FTA 앞장섰던 정동영의 변신…이념도 무상, 정치도 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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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美 민주당의 FTA 반대 논리 깨려 했다
  • ● FTA 저지 범국본? 친미, 매판자본 얘기하는데 설명 되겠나
  • ● 내가 ‘이완용’? 이념 색깔 발언이겠지
  • ● 나는 경제논리 생각하는 사람, 자유와 평등 문제는 정치인 몫
“한미 FTA 앞장섰던 정동영의 변신…이념도 무상, 정치도 무상”
그날따라 유독 서울 도심 광화문 칼바람이 매서웠다. ‘귀가 잘려나갈 듯한 추위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칼바람과 귀가 잘려나갈 듯한 추위도, 잠시 뒤 만날 인터뷰이의 별명에 걸맞은 날씨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왼쪽으로 턱을 살짝 올리며 기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매서웠다. 약간 고집스러워 보이는 각진 턱과 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면, 분명 ‘왜 째려보시나’하고 말했을 것이다. ‘강대국 독무대’라는 국제통상 협상장에 나서는 검투사 얼굴로는 제격이라고 기자는 생각했다.

김종훈(60)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2011년 12월 30일 갑옷을 벗었다. 2007년 8월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장을 받은 뒤 4년 4개월 만이다. 재임 중 그는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과 인도·유럽연합(EU)·페루와의 FTA를 잇따라 발효시켰고, 한미 FTA 수석대표를 맡아 협상을 주도했다. 지난해 11월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야 험난했던 콜로세움을 빠져나왔다. 37년 외무공무원 생활도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지난 정권에서 유임한 유일한 장관급 공무원이다. ‘대통령보다 오래한 현직 최장수 고위 공직자’라는 영예를 얻었지만, 동시에 ‘매국노’ ‘이완용’ ‘을사 5적’이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들었다. 건국 이래 그처럼 논란의 핵심에 선 외무공무원도 없었다.

1월 5일 오전 서울 당주동 외교통상부 별관에서 만난 그는 홀가분해 보였다. “내일 아내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밝았다.



▼ 통상 분야에서 참 오래 일하셨죠?

“보자, 1993년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을 하면서 통상 분야에 뛰어들었으니 제법 했네요. 2000년 통상교섭본부 지역통상국 국장과 2006년 한미 FTA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 이후 통상교섭본부장을 했잖아요? 문민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네차례 정권에서 통상 일을 했네요. 아이고, 참….”

‘15소년 표류기’에 심취한 골목대장

▼ 예전과 지금, 변화가 있나요?

“그럼요. 국제통상 분야에서 우리나라 위상은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주로 관세, 통관 현장, 뭐 이런 게 통상문제가 됐는데 요즘은 제도를 규범화하는 논의가 대세입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국제 간 통상은 ‘트레이드 바이 룰(Trade by rule)’, 즉 ‘규범에 따른 통상을 하자’가 정착됐잖아요? 그동안 한국은 늘 남이 만들어놓은 룰을 적용받았는데, 최근 들어 우리가 ‘룰 메이킹’에 적극 참여하고 있어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G20 일원이 된 것도 그래요. 우리도 국격(國格)에 맞게 행동해야죠.”

어린 시절 김종훈의 별명은 ‘골목대장’이었다.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를 읽고, 분지인 고향 대구를 떠나 더 넓은 바다를 꿈꾼 골목대장. 친구들과 배를 타고 무인도로 가서 공화국을 만들 생각에 한때 해양대 입학을 꿈꿨다. ‘정식’ 선장은 아니지만 ‘통상의 바다’를 만들고 헤쳐나가는 걸 보면, 어쩌면 그는 꿈을 이룬 인물일지 모르겠다. 한쪽에선 ‘FTA 표류기’를 주장하지만. 슬슬 인터뷰 주제를 한미 FTA로 돌렸다.

▼ ‘김종훈’하면 ‘한미 FTA’가 떠오르는데요. 한미 FTA, 참 오래 걸렸죠?

“제가 2007년 8월에 통상교섭본부장 임명장을 받았어요. 2006년 2월 한미 양국이 FTA 추진을 발표하고 나서는 한국측 협상 수석대표로 나섰죠. 제가 본부장 되기 전에 이미 FTA가 타결(2007년 4월) 됐는데, 그 뒤 절차가 이렇게 오래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 본부장 임명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언질은 없었나요?

“한미 FTA 타결하고 청와대로 가서 설명을 드렸죠. 그 다음 날 협상 타결 발표를 했을 겁니다. 하여튼 수고했으니까, 뭐, 좀, 뭐….”

▼ 뭐, 좀, 뭐?

“‘일(협상)도 뭐 나쁘지 않게 했다’ 이런 평가도 있었고…. 그해 7월 중순부터 ‘본부장을 하면 자네는 잘할 거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 외에는 특별히 저를 불러서 하신 말씀은 없어요.”

그는 ‘한미 FTA 협상을 그나마 잘했다’고 본 김현종 전 본부장이 자신을 천거한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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