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 새연이(가운데)와 함께 낚시를 즐기고 있는 싱글 대디 배진영 씨.
“캠핑을 좋아하는 싱글 대디입니다. 딸아이와 캠핑을 즐기기 위해 여러 동호회에 가입해봤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좀 그렇더군요. 그래서 아이와 단둘이 캠핑을 가보니 혼자서 노는 아이의 심심함이란. 그걸 보는 제 마음도 좋지 않았지요. 또 싱글의 경우 장비 구축과 해체 등에 어려움이 있더군요. 나와 같은 취미, 같은 어려움에 공감하는 누군가가 또 있지 않을까 해서 아예 싱글 대디와 싱글 맘 캠핑동호회를 만들었습니다. 동호회를 만든 직후 회원들끼리 캠핑 모임을 가졌는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너무 좋은 느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싱글 대디’는 이혼이나 사별 등의 이유로 아이를 혼자 키우는 남성이나 결혼하지 않고 아버지가 된 남성을 가리키는 용어다. 한부모를 돕는 민간단체에서 총무로 일하는 이재현(가명·48) 씨도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다. 3년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이 단체를 발견했다는 그는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회원이 됐다. 하지만 정기모임에 나가 얼굴을 내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날 아들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보러갔다가 근처에서 한부모 돕기 단체 정기모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용기 내 찾아갔다. 싱글 대디와 싱글 맘 10여 명이 모인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복도로 뛰쳐나와 2시간을 펑펑 울었다.
“속이 얼마나 후련하던지…. 그때부터 열심히 모임에 나갔어요. 궂은일도 마다 않고 도왔더니 회장님이 총무를 시키더라고요.”
새로운 가족의 탄생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가족 패러다임은 급변하고 있다. 부부 국적이 서로 다른 다문화 가족, 비혼(非婚) 동거 가족, 조손 가족, 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반려 가족과 더불어 엄마와 아빠 중 한 명이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족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 중 한부모 가족의 경우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 아니라 ‘가족 해체’라는 시선을 받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혼이나 배우자의 가출 등 여러 사유로 자녀를 홀로 키우게 된 싱글 대디를 보는 시선은 더욱 따갑다. 엄마 있는 아이의 아빠가 학교에 급식 당번을 가면 ‘자녀 교육에 관심 많은 자상한 아빠’로 평가받지만, 싱글 대디가 학교에 가면 무조건 ‘못난 이혼남’이 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식 문제에 마음 쓰는 싱글 대디를 이해해주는 회사는 찾기 어렵다. 전셋집을 구할 때도 싱글 대디는 냉대를 당한다. 아이가 다쳐서 몸에 멍이라도 생기면 또 어떤가. 교사들은 아이에게 대뜸 “아빠가 때렸니?”라고 묻는다.
싱글 대디들은 ‘그래서 슬프다’고 입을 모은다. 혹시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져 내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을까, ‘못나서 이혼당한 남자’ 취급을 받지 않을까 쉬쉬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싱글 대디들이 서로 뭉치며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건 그래서 이채롭다.
온라인에 ‘싱글 대디’ 관련 카페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 한동안 싱글 맘 중심의 카페가 활발했는데, 최근에는 여기에 싱글 대디 모임이 가세하는 양상이다. 특히 지난해 여러 개의 카페가 새로 생겼다. 최근 싱글 대디 카페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모임의 중심이 어른에서 아이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 과거에는 단체 여행을 가도 아이 따로 어른 따로 놀았다면, 최근에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놀이문화, 체험문화가 있는 곳으로 여행지를 선택하는 식이다. 싱글 대디 중심의 캠핑동호회가 인기를 모으는 것도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캠핑동호회 카페 회장인 배 씨는 경기도 부천시에서 가구공방을 운영하며 딸 새연이(10)를 키운다. 싱글 대디 6년차인 그는 온라인 ID를 ‘새연아빠’로 할 만큼 딸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여행, 낚시, 캠핑 등을 좋아하는 그는 새연이가 어릴 때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제 같은 취미를 가진 커플 같은 부녀가 됐다. 그는 “캠핑이나 낚시를 가면 아이와 함께 요리를 하면서 대화를 많이 하게 돼 좋다”고 했다. 그가 지난해 9월 개설한 캠핑동호회 카페의 회원수가 29명. 그중 자주 캠핑에 동행하는 열혈 싱글 대디는 7명이다.
편견을 넘어
배 씨나 한부모 단체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이 씨처럼 자신을 감추지 않고 활동하는 싱글 대디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싱글 대디 가구 수가 있다. 통계청의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05년 28만7000가구였던 싱글 대디 가구 수는 2010년 34만7000가구로 21.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싱글 맘 가구 수는 108만3000가구에서 124만7000가구로 15.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여전히 한부모 10가구 중 8가구는 싱글 맘 가구지만, 싱글 대디 가구의 증가세는 매우 가파르다. 그 과정에서 싱글 대디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