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무능한 국가정보원’ 논란

“원장이 이너라인에 의존…정통 정보엘리트 떠나” (MB정권 국정원 고위직 출신자 증언)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2-01-20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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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전횡으로 간부들 눈치 보기 바빠
    • 국정원 “대북정보 능력 강화했고 독단적 인사 안 했다”
    ‘무능한 국가정보원’ 논란

    원세훈 국정원장

    지난해 12월 19일 낮 12시 청와대 구내식당.

    대통령실 직원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통령의 칠순 생일이자 41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아 대통령 내외와 축하 오찬을 하기로 돼 있었다. 이날은 또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지 꼭 4년째 되는 날이었다. 참모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청와대 직원들의 휴대전화에 일제히 문자 메시지가 떴다.

    “김정일 사망.”

    화들짝 놀란 참모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각 방으로 흩어졌다. 북한 조선중앙TV의 ‘특별방송’을 지켜봤다. 이 시각 이 대통령은 오찬장으로 오고 있었다. 수행 참모로부터 같은 내용을 긴급보고받는다. 그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오찬은 김윤옥 여사가 주재해 늦게 진행됐다.



    청와대의 태평스러운 풍경

    앞서 이날 아침 참모들은 업무 시작 전 깜짝 축하파티를 열었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으로 출근하자 기다리고 있던 청와대 직원 200여 명이 일제히 결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일부 직원들은 고깔모자를 썼다. 참모들은 이 대통령 활동사진과 비서관실별 축하 메시지 사진이 담긴 대형 카드를 생일선물로 건넸다. 이 대통령은 “고맙다”며 생일케이크를 잘랐다. 참 화기애애하고 태평스러운 풍경이었다.

    조선중앙TV,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오전 10시에 “오늘 12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특별방송이 있겠습니다”라고 알렸다. 이어 오전 10시 23분, 10시 30분에 특별방송을 거듭 예고했다. 특히 조선중앙TV는 보통 오후 5시부터 방송을 시작하는데 이날은 오전 9시부터 방송을 내보냈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오전 10시 뉴스도 생략했다.

    북한은 그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 재추대 등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미리 알린 뒤 발표해왔다. 더욱이 ‘특별방송’이라는 표현으로 예고한 것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와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두 차례뿐이었다.

    이쯤 되면 12월 19일 오전 청와대, 국가정보원, 국방부, 외교통상부 등 관계 당국은 급박하게 돌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 기관에서 긴장감은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 이날 오전 국정원에서 ‘이상 징후’ 급보가 청와대로 올라갔다면 청와대의 분위기는 달랐을 것이다. 김정일 사망을 미리 감지하는 대북정보력도 가지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정보 분석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넋 놓고 지내온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방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2월 19일 오전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국방개혁법안을 논의하다 낮 12시20분 국방부 상황실로 황급히 달려갔다. 정승조 합참의장은 전방부대 순시 중 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서야 서울로 돌아왔다고 한다.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정원의 고위 간부도 당연히(?) 외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오전 “특별방송 내용이 뭐일 것 같으냐”는 질문에 딴말만 했다. 다른 관계 부처에서도 “6자회담 관련 입장 표명이나 핵문제 정도일 것”이라는 대답만 나왔다.

    이춘희 조선중앙TV의 아나운서는 검은 상복 차림으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 100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며 흐느꼈다. 이때야 당국자들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갔다. 정보라인 고위 인사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한 대북 전문가의 말이다.

    “김정일 사망 후 52시간 동안 북한의 공식 발표 때까지 정부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17년 만에 특별방송을 한다면 적어도 긴장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조선중앙TV를 모니터하고 있던 언론사 기자도 전화를 걸어와 ‘특별방송 시작 몇 십 분 전부터 장송곡 비슷한 음악을 내보내고 있어 이상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자들이 태평하게 있었다는 건 기강해이, 업무태만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이어 이 대북 전문가는 “실무선에서 이상 기류를 감지하고 상관에게 보고한 사례도 있겠지만 결국 국정원장을 비롯한 수뇌부의 ‘직관적 통찰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의 공식 발표 전 정부가 김정일 사망 소식에 깜깜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취재과정에서 어떤 정부 당국자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정원 고위 간부도 한 지인에게 “전혀 몰랐다”고 토로했다는 전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지난해 12월 17일 일본 출장 중이었다. 청와대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첫 외국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데 대한 답방 성격”이라고 했다. 큰 현안을 논의하는 방문은 아니었다. 김정일 사망과 같은 비상사태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내에 없다는 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동네 정보원’

    ‘무능한 국가정보원’ 논란

    2011년 12월 19일 조선중앙TV가 김정일 사망을 알리고 있다.

    결국 대북정보 수집망에 큰 구멍이 났음을 의미한다. 대북첩보를 총괄하는 국정원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 일부 인사는 “동네 정보원”이라고 말한다. 국정원은 지금 엄청난 예산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2011년 국정원 예산은 특수 활동비 명목으로 4963억 원이었다. 이외 예비비 3000억 원과 알려지지 않은 예산 등 1조 원에 가까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 예산이 무더기로 통과될 때 대부분 북한정보 수집에 쓰인다고 보고됐다. 그 많은 예산을 북한정보 수집에 쓰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국민은 답답해한다”고 했다.

    전직 국정원 직원과 대북 전문가는 국정원의 무능과 관련해 이유를 두 가지 맥락에서 찾았다. 첫째는 북한과의 대치를 풀고 대화를 중시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대북정보 수집을 위한 인력과 장비가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인식 부족과 내부 문제로 인해 복구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방법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사람을 상대로 정보를 캐내는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와 최첨단 장비를 사용해 정보를 얻어내는 ‘시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가 그것이다. 북한 내부 인사의 진술로부터 대북정보를 얻는다면 휴민트에 해당한다. 시진트에는 레이더나 통신감청용 장비가 동원된다. 김일성 사망 당시 우리 정보기관은 통신첩보활동으로 관련 내용을 신속히 입수했다.

    휴민트와 시진트를 융합할 때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 고위 인사를 포섭해 김정은이 자주 가는 별장을 알아낸 뒤 인공위성으로 이 지점으로 차량들이 이동하는지를 집중적으로 감시하면 김정은의 실시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휴민트와 시진트 운용에 필요한 예산을 대폭 감축하고 인원과 장비를 줄이는 바람에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무너졌다고 한다. 국정원의 한 직원은 “휴민트는 결국 돈 아니냐. (북측 정보원을 돈으로 매수해야 이 정보원이 고급 정보를 알려준다는 의미로 해석됨) 예산을 줄이면 휴민트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이 괴물로 만들어”

    그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정보요원의 사기를 꺾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 시절 국정원 차장을 지낸 김은성 씨는 김정일 사망 후인 지난해 12월 24일 자신이 몸담았던 김대중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좌파정권 10년간 ‘역사 바로 세우기’ ‘과거사 진상규명’으로 과거 좌익사건을 모두 뒤집어엎어버림으로써 정보기관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했다. 국가정보기관을, 사건을 조작해 민주투사를 죽이고 폭압을 한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국정원은 물론 군·검·경의 공안(公安) 능력마저 축소시켰다”고 했다. 이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원 보고서를 읽을 가치가 없다 하여 무시해버렸다. 독대보고도 중단시켰다. 국정원 보고서를 읽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에게 자랑(?)했다. 국정원 요원들은 일할 의욕을 상실했다. 정보 사용자가 천시하는데 누가 열심을 내겠는가”라고 했다.

    취재 결과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인 1998년 4월 1일 안기부(국정원의 전신)는 대북정보라인 조직개편을 명분으로 서기관급 이상 직원 581명에 대해 사실상 퇴출 조치를 취했다. 특히 대북정보라인을 중심으로 2급 이상 간부 33명이 무더기 퇴직했다. 이 시기 대공 업무 담당 경찰 2500여 명, 기무사 요원 600여 명, 공안검사 40여 명이 해직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해 12월 안기부에서는 300명이 추가 명퇴했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 10개월 만에 북한 담당 인력을 중심으로 900여 명의 안기부 직원이 나갔다는 것이다. 이듬해 1월 안기부는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신규 직원 500여 명을 뽑아 보충했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이 우리 정부를 위해 북한 내부에서 활동하던 정보원 명단을 북측에 통째로 넘겨주는 바람에 보위부에 줄줄이 체포됐다”는 다소 충격적인 증언도 최근 나왔다.

    정보당국은 휴민트 체제가 무너진 후 북한을 오가는 중국인, 조선족에게서 첩보(정확한 정보로 확인되기 전 단계의 정보)를 수집했지만 그 수준이 매우 낮았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 중 일부는 자기 과시나 돈을 더 받기 위해 거짓 첩보를 남발했다. 이 바람에 오히려 혼선이 가중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정보당국이 김정일 사망을 알아내지 못한 일차적 책임은, 북한의 눈치를 살피느라 대북정보 수집체계를 허물어버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돌아가는 것으로 비친다. 노태우 정권 시절 대북 밀사로 활동한 박철언 전 안기부장 제2특보는 “북측과 대화하더라도 대북정보 수집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상대에 대해 많이 알면 대화를 원활히 풀어나가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무능한 국가정보원’ 논란

    2011년 12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정일 사망에 따른 국가안보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정보기관도 정보망 붕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도 많다.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아 4년이 지났지만 대북정보 수집체계는 별로 개선된 게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은성 씨는 “대통령의 무관심이 정보업무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했다. 한 전직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이 정치적 바람을 너무 많이 탄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국정원 내 특정지역 출신이 피해를 본다. 거꾸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반대편 특정지역 출신이 두려움에 떤다. 정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고위직을 차고 앉아 개혁이랍시고 입맛대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선배가 국익을 위해 궂은 일하다 정권 바뀐 뒤 책잡히고 잘렸다. 이제는 이런 일을 나서서 하지 않으려 한다.”

    “원세훈 원장이 문제”

    기자는 이명박 정권 초기까지 국정원 고위 간부를 지낸 A 씨의 증언을 들었다. A 씨는 진보정권의 국정원 무력화 시도를 비판하면서도 “김정일 사망 때의 무능은 현 정권 국정원의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정보라인이 무더기 퇴출됐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대북 정보력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국정원 내에 전문적이고 집중적으로 대북 정보를 분석하는 파트가 있는데 (진보정권 이전에는) 아주 강했다. 북한 관련 팩트(facts·사실적 정보들)에 정통한 전문가가 많았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서 남북대화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해….”

    ▼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힘을 뺀 것인가.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 핵심부서가 올린 보고에 대해 임동원 원장 같은 사람이 작살을 냈다. 어떻게 하든지 북한을 미화하고…. 우리가 ‘김일성’ ‘김정일’ 하던 것을 뒤에 ‘장군’이라고 직함 붙이고 했던 사람들이 무조건 교류나 대화 쪽으로만 신경 쓴 거다.”

    ▼ 내부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졌나.

    “10년 동안 쭉 그렇게 하니 무너지고 죽을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무슨 수를 쓰든 간에 북한의 동향을 캐칭(catching) 하기 위해 휴민트도 하고 과학 장비도 동원했는데 그런 걸 절대 못하게 했다. 그런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정보수집 능력이) 떨어진 거다.”

    ▼ 지금이라도 다시 하면 되지 않나.

    “과거 통신감청 등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데 북한이 관련시설을 지하화하고 통신도 디지털로 바꿨는데 이건 감청을 못한다.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던 거다. 북한을 따라잡을 시간을 놓쳤다.”

    여기까지 과거 정권을 비판한 A 씨는 이어 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으로 화살을 돌렸다. 그는 “더 중요한 문제는 MB 정부 들어와 뭘 했느냐는 거다”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특히 원세훈 국정원장이 공포통치, 인사전횡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다.

    “MB 정부의 국정원은 북한에 대한 정보력을 강화하고 전문가를 키웠어야 했다. 실제로는 노무현 정부 (요직에 있던) 사람들을 몽땅 몰아서 척결했다. 특히 2009년 2월 원세훈 원장이 온 뒤로 ‘권위주의’양상을 보여왔다. 원 원장이 국정원 인사에서 내부통제체계나 공식라인을 거치지 않고 인사전횡을 했다. 그러니 (간부들이) 눈치 보기 바쁘지. 지금 (국정원) 내부는 엉망이다. 이런 것들이 크게 작용해서…. 책임은 원세훈 원장에게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임할 당시 서울시에서 근무했던 원 원장은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한다. A 씨에 따르면 원 원장은 정보에 대한 전문성 없이 조직을 운영하고 자기 사람에만 치우쳐 지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A 씨는 기자에게 “원세훈 원장에게 문제점이 있다. 책임이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원 원장이 ‘이너라인(inner line)’에만 의존하는 바람에 많은 수의 정통 정보엘리트가 떠났다”는 말도 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도 원세훈 원장의 잘못된 인사가 정보공백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국정원 내 대북정보 담당 부서의 고위층은 물론 중간 간부까지 대거 교체된 것으로 듣고 있다. 원세훈 원장의 인사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했다.

    전직 정보 관계자들은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원세훈 원장이 조직개편과 인사를 자주 했는데 원칙이 없었다” “대북인적정보 라인을 ‘반MB’로 몰아 축출했다” “국정원 내부에서 경남-충청 라인이 득세하고 다른 지역 출신이 배제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이뤄지게 되어 있지만 이 인사위원회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으로 안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를 출입한 국정원 직원이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상당수 직원을 다른 분야로 전환 배치해 전문적 업무에 지장을 초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혀 사실 아니다”

    무능한 국정원 논란과 원세훈 책임론에 대해 국정원의 반론을 들어봤다. 국정원 측에 1월 13일 e메일 질의서를 보냈는데 얼마 후 답신이 왔다. 다음은 질의와 답변 요지다.

    ▼ 현 정부 들어 노무현 정부 때 중용됐던 인원을 한직으로 보냈나.

    “과거 정부 중용됐던 대북정보 전문 인력을 한직으로 내보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과거 정부의 대북정보 전문 인력이라는 것은 구(舊) 대북전략국 인력으로 보이는데 대북전략국은 주로 남북회담 및 공식적인 대북 지원업무를 담당하던 조직으로 대북정보 역량과는 상관이 없다. 그리고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은 대북전략국 기능을 북한정보 분야에 모두 이관해 운영 중이다. 인력도 대부분 북한정보 분야와 관련된 부서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다. 또한 국정원은 조직의 기능적 재편과 함께 인원·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대북공작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따라서 과거의 대북정보 인력이 한직으로 밀려나 대북정보역량이 약해졌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 현 정부 들어서도 국정원의 휴민트가 붕괴되었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현 정부 출범 직후 서훈 전 3차장 등 정무직이 교체되었지만 이는 정권교체 시 ‘책임정치’ 원리에 따라 정무직 교체가 수반되는 데 따른 통상적인 것이다. 국정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더욱이 대북 휴민트 라인을 ‘반(反)이명박 세력’으로 몰아 축출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서훈 전 3차장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또 서훈 전 3차장은 대북 협상 분야 전문가로, 대북정보 수집·공작을 담당하는 본질적인 의미의 휴민트 업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 후임으로 북한정보실장 등을 역임한 대북 정보통인 한기범 전 3차장이 임명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휴민트가 와해되고 대북정보가 약화되었다는 논리는 근거가 없다.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이 대북 협상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상당수 대북 정보라인이 노출되어 휴민트 역량이 약화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 정부 들어서는 과거 정부 시절 위축되었던 휴민트 역량을 단순히 이전 수준으로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대폭적인 인력·예산 투입 등을 통해 훨씬 강력한 휴민트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상태다.”

    ▼ 중국 소재 북한 간부들이 김정일 사망 발표 이전 긴급히 본국으로 귀환했다고 한다. 이러한 북한과 중국의 특이동향을 감지해 김정일 사망 발표 이전에 김정일 사망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에서도 핵심 실세를 제외한 고위층조차 공식발표 전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정상적 활동을 전개했다. 총리 최영림, 부총리 김낙희, 세습체제 구축 핵심인물인 당 비서 김기남이 12월 17일 평남 숙천군을 방문해 ‘농업지도체계 확립 50회 중앙보고회’에 참석했다. (12월 18일 노동신문). 중국을 방문 중이던 북한 전자공업상 한광복은 12월 15일 장더장 중국 부총리와 면담하고 사망발표 이튿날인 12월 20일 귀북했다. 중국도 총리나 국무위원이 김정일 사망을 전혀 모른 채 지방시찰 또는 해외순방 일정 을 소화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12월 18~19일 장쑤성으로, 대북관계의 핵심인물인 다이빙궈 외교담당국무위원은 12월 19일 아침 미얀마로 출장을 갔다.”

    “실·국장 설명 듣고 인사했다”

    ▼ 북한이 김정일 사망을 발표하는 12월 19일 오전까지도 국정원이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다.

    “북한의 예고 방송 때 아나운서는 검은 상복이 아닌 자주색 저고리의 평상복을 착용하고 있었고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를 유지했다. 민간단체는 단순 추정만으로도 공표할 수 있지만 국정원이 무작정 공개할 경우 국내 주가폭락이나 외국인 자금 이탈과 같은 금융시장 혼란, 생필품 사재기 등 사회적 동요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세계 각국은 북한의 발표 전까지 몰랐고 그 이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은 휴민트뿐인데 과거 공산주의 독재국가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최고 지도자 사망’과 같은 중대 사안은 극히 제한된 인원들에게만 통보한다. 설령 북한 내부의 휴민트가 김정일 사망을 즉각 인지했다 하더라도 외부와의 모든 통신이 감청당하고 사람의 왕래가 철저히 통제되어 있는 북한과 같은 사회에서는 이를 평양에서 외부에 알리는 데에만 며칠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망 사실은 김정은 및 일부 최측근만 알고 있는데 이들을 휴민트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보기관은 알아도 말을 못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원세훈 원장의 이너라인이나 인사전횡 관련 주장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인사는 원장의 고유권한이지만 독단적으로 할 수 없다. 해당 국·실장의 설명 없이 그 많은 인원에 대한 인사자료를 원장이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또 “(원 원장) 취임 이후 대북 정보력을 강화했다. 충실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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