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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그런 거 없다!

내 몸 안의 ‘메멘토’, 그 한계와 도전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그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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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그런 거는 없지만 이런 거는 있다. 기억, 또는 기록과 관련된 합리적 의심 말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인 2001년 작 ‘메멘토(memento)’는 이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메멘토에서 놀란 감독은 기억의 진실성에 대한 질문을 영화화했고, 이어 ‘인셉션(Inception)’에서 기억의 층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영화화했다. 먼저 나온 메멘토가 놀란 감독의 출발점이다.

못 본 분들을 위한 내용 정리. 보험 수사관이던 레너드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다.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 인슐린을 과다 주사해 죽게 한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살해되었다고 생각하고, 범인 존 G를 추격한다. 그는 10분이 지나면 기억을 상실한다. 안타까운 주인공을 둘러싸고 조작과 진실이 교차한다. 저급한 기억 능력을 가진 필자의 처지에서는 심상히 보아 넘길 주제가 아니었다.

주인공은 10분으로 제한된 기억을 연장시키려고 자신의 신체 거의 모든 부분을 메모장으로 이용한다. 손등, 팔뚝, 배, 허벅지 등 곳곳에 필사적으로 기록작업(Documentation)을 한다. 그러나 제한된 신체와 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경험과의 싸움은 사실 무모한 일이다. 그 틈을 비집고 왜곡이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주인공이 필사적으로 진실을 새겨놓은 손등, 팔뚝, 배, 허벅지 등등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사고(史庫), 지금 국가기록원, 각 기업이나 방송국의 아카이브(Archives), 그리고 우리의 일기장과 같다.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약간 다른 나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아포리아(Aporia)라고 한다. 원래는 막다른 골목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대화법을 통하여 문제를 탐구하는 도중에 부딪치게 되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라고 정의하고, 또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관점에서 새로이 탐구하는 출발점이 된다”고도 했다. 흥미롭다. 풀기 어려운 문제이자 막다른 골목인데,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



아포리아

역사의 대상이 되는 과거를 재현(再現)할 수 없다는 데서 역사학의 아포리아는 시작된다. 재현, 말 그대로 다시 보여준다는 뜻이다. 사진으로 남기든, 기록으로 남기든, 과거는 성글게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구멍이 숭숭 뚫린 그림인 셈이다. 실제로 CCTV를 설치해놓아도 필자의 역사학개론 강의시간 1시간조차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 이 아포리아 때문에 좌절과 냉소를 오고갔던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라쇼몬(羅生門)이라는 영화에서 묘사해주었듯, 같은 사건을 놓고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얘기한다. 원래 금석물어(今昔物語, 즉 옛날이야기)의 한 스토리를 영화로 만든 것인데, 줄거리는 이렇다. 어떤 무사가 예쁜 아내를 말에 태우고 산길을 가고 있는데 산적을 만났다. 산적은 이들을 유인해 무사를 나무에 묶어놓고, 무사의 아내를 강간했다. 그리고 무사는 살해됐다. 무슨 다른 관점이 가능하겠나 싶을 정도로 단순한 사건이다. 이 소설을 놓고 구로자와 감독은 같은 사건에 대한 네 대목의 영화를 완성했다. 무사, 무사의 아내, 산적의 관점으로 본다는 원작에, 이 장면을 숨어 보던 나무꾼이라는 인물을 창조해 네 사람이 각각 하나의 사건에 대해 진술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다 진술이 달랐다. 산적 다조마루는 무사의 아내를 강간한 뒤 떠나려고 했는데 무사의 아내가 붙잡으며 내 몸을 버려놓았으니 너 아니면 내 남편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울부짖어서 할 수 없이 결투를 하다가 무사를 죽였다고 했다. 무사의 아내 마사고는 강간을 당한 뒤 남편의 눈에서 느낀 경멸감에 말다툼을 하던 중 남편을 단검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나무꾼이나 죽은 무사의 영혼 역시 진술이 달랐다. 구로자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우리가 객관적 진실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보편적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라쇼몬의 영화사적 의미나 해석은 더 진행하지 말자. 필자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이 정도의 문제제기만으로도 우리 주제와 관련해 할 말은 넘쳐나니까.

여기서 필자는, 역시 ‘각기 보기 나름이야’라는 식으로 객관적 진실에 대한 불가지론(不可知論)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불가지론으로 빠질지도 모르는 아포리아를 붙잡고, 거기서 출발점을 삼은, 이 아포리아를 아포리아답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우리는 역사가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상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기억할 만한 경험이자 그에 대한 탐구를 의미한다. 기억할 만한 경험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단순한 정보일 수도 있다. 역사는 시간의 학문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시간 속에서의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하든 못하든, 수업시간에 졸든 말든, 역사는 세상 모든 존재의 존재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역사의 아포리아는 세상 모든 존재의 근원적 규정성에서 시작된다.

모든 역사는 승자의 역사? 그런 거 없다!

정부 각 부처에서 이관한 공공기록을 보존하는 국가기록원, 나라의 기억을 보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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