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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서울 이젠 동방예의지국 아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

  • 정수복│사회학 박사

서울 이젠 동방예의지국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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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어느 정도 부딪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그 정도 부딪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무심한 얼굴 표정들이다. 예절이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사양지심 예지단야(辭讓之心 禮之端也).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이야말로 예의의 출발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먼저 빨리 가려고 서두르다가 다른 사람을 치고 가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다. 등에 메고 다니는 배낭이나 어깨에 걸친 가방으로 옆의 사람이나 뒷사람을 치고 다니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다. 남의 발등을 밟아놓고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다. 동방예의지국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탈(脫)동방예의지국의 시대가 온 것인가? 아직도 예의를 따지는 노인들은 젊은이들과 격리시켜 노인석을 따로 만들어놓은 것도 눈에 띈다.

파리의 지하철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순서는 전쟁에서 부상한 사람, 장애인, 임산부 다음에 노인이 온다. 그러나 우리는 노인이 우선권을 갖는다. 나는 여기에서 아직도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내세워 연장자를 우대하는 동방예의지국의 전통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지하철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세대갈등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풍경 #3 훈계의 나라

길거리를 걷다보면 휴대전화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씩 보게 된다. 길거리의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서 크게 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경우에는 통화 상대자에게 따지거나 훈계하거나 호통을 치는 경우도 있다. 돈 문제나 감정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을 비난하고 위협하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어느 중년 남자가 휴대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너 말이야, 인생 그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돼!”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은 파리지엔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은 이래라저래라 하는 도덕적 규제가 많은 사회인 것 같다.” 서울에서 종종 듣게 되는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발언은 파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다. 각자 자기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는 것이지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돈 문제나 감정상의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그 사람이 사는 방식 전체를 싸잡아 “너 그렇게 살면 안돼!”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서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근저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으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나 파리 사람들에게는 그런 전제가 없다. 각자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풍경 #4 소음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다녀보면 각각의 도시에 특유한 소리들이 있다. 일단 서울은 파리보다 소음이 많은 도시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자동차 바깥에 확성기를 장치하고 녹음된 내용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자동차가 많다. 중고물건 팔라는 소리, 두부장수가 왔다고 알리는 소리, 아파트 단지 안에 시장이 섰음을 알리는 소리, 산지 직송 영광 굴비가 왔다고 알리는 소리, 영덕 대게가 왔다는 소리….

길거리뿐만 아니라 아파트 실내에도 스피커를 통해 관리사무소에서 알리는 소리가 많다. 오늘은 아파트 전체 소독날이니까 협조해달라, 아파트 관리비 마감 날이다, 겨울철 수도관 동파에 대비해라 등등 아무 때나 자기들 마음대로 방송을 한다. 택시를 타면 운전사 마음대로 남녀 진행자가 나와 낯 뜨거운 소리를 해대는 방송을 크게 틀어놓고 있어 스피커가 가까이에 장착된 뒷좌석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일은 고역이다. 참다못해 소리를 조금 줄여달라고 하면 운전사의 표정은 금방 굳어진다.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 가도 자기들 마음대로 음악을 틀어놓고 있다. 종업원에게 소리를 줄이거나 꺼달라고 하면 어디서 외계인이 왔느냐는 표정이다. 10년 전에 다니던 동네 대중목욕탕에 가보면 때를 밀어주는 아저씨가 흘러간 가요를 틀어놓고 일을 하고 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뉴코아백화점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빵빵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외제 승용차 운전대 앞에는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어리대게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고 있는 중년 남자에게 조심하라는 경적이었다. 그렇다 나는 서울의 이방인이다.

풍경 #5 먼지

서울에는 먼지가 많다. 셔츠를 이틀만 입어도 목이 닿는 부분에 검은 때가 앉아서 갈아입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파리에서는 셔츠를 일주일 입어도 그렇게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아파트 바닥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청소해도 먼지가 날아다닌다. 파리에서는 이틀에 한 번씩 청소를 하면 집의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공사장이 많고 기동성이 높은 ‘다이내믹 코리아’니까 먼지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늙은 도시 파리보다는 젊은 도시 서울이 요란하고 시끄럽고 먼지가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10년 동안 파리에 익숙해진 나의 감각기관들은 서울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눈감고 귀 막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서울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풍경 #6 음식 냄새

내가 파리에서 살던 아파트는 1904년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2002년에서 2012년까지 그 건물에 살았으니까 2004년에 100주년을 보낸 셈이다. 물론 수도, 가스, 전기, 환기시설, 승강기 등은 몇 번에 걸쳐 보수 공사를 했겠지만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금 내가 서울에 살고 있는 아파트는 30년 정도 된 아파트인데 건축업자들과 동네 사람들은 기회만 되면 재개발을 하려고 촉각을 세우고 있다. 오늘날 새로 지은 한국 아파트의 서비스 수준은 세계적으로 최고의 수준에 올라섰다. 그런 아파트들에 비교하자면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거의 수명을 다한 아파트나 다름없이 취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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