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 난 몇 년 전부터 단편 작업을 했는데, 영화를 만들 땐 난 나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난 언제부터였는지 정말 극단적으로 내성적이어서, 사람들에게 말도 못 걸고, 학교에서 어떤 발표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누가 볼까봐 고함도 지르지 못하지. 그래서 어릴 적부터 난 내 그림자를 보는 것이 좋았나? 미국이 날 이렇게 만들었나(웃음)? 하지만 영화작업에만 몰두하면 나의 자아는 어느새 사라지고, 세상 모든 것과 융화를 이루는 그런 기분? 내가 영화감독이 된다면, 내가 지금 그렇게 생각하듯이 남들도 영화감독이 대단하다 생각하겠지?
영화감독 : 영화감독이 뭐 대단한가?
소년 : 내 일상은 재미없어. 난 나 자신보다도 남들을 더 알고 싶어. 옆집 아저씨의 과거도 알고 싶고. 대통령은 인터넷에서 뭘 검색하는지 알고 싶고. 지난주 우리 학교에 전학 온 벨기에 여학생의 생각이 궁금해. 파란 눈에 금발머리. 정말 예뻐. 영어가 서툴지만, 모든 남학생은 그녀의 발음에 무너지지, 모세의 기적처럼 그 파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뭐가 달라 보일까?
영화감독 : 엄청난 감수성이군. 궁금한 것이 많구먼. 영화감독감이야! 벨기에 소녀에겐 말걸어봤나?
소년 : 하지만 나는 건축과에 지원했지.
영화감독 :왜? 영화감독은 어쩌고?
소년 : 영화감독의 길은 너무 위험하잖아? 난 그림을 잘 그리고, 수학 물리 쪽도 잘하니까, ‘딱’이지. 우선 먹고살아야지!
영화감독 :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현실을 택했다? 정말 어른스럽군.
소년 : 난 어릴 적부터 어른이었어.
영화감독 :(웃음) 언제부터?
소년 : 미국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이었지. 열두 살 때 당신은 영화를 통해 뭘 얘기하려 했지?
영화감독 : 어릴 적엔 뭐든 분명했는데, 솔직히 나이가 들며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야. 그동안 정말 많은 일과 사람을 겪다보니, 이제 사람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어쩌지?
소년 : 이 멕시코 속담 들어봤나? “젊은이는 꿈을 꾸고, 노인은 회상한다.” 당신은 꿈을 꾸나? 회상을 하나?
영화감독 : ….
소년 : 난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질 거야. 난 영화를 만들며 나를 발견할 것이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도 많이 낳고, 잘되면 부와 명예와 행복을 누리겠지?
영화감독 : 쉽지 않더라, 그게….
소년 : 어젯밤엔 오스카상 수상 소감을 머릿속으로 읊었지.
영화감독 : 영화학도라면 한 번씩 해본다는 그것을…. 넌 몇 살이지?
소년 : 당신은 어떤 계기로 영화감독이 되었지?
영화감독 : 계기라? 희미해진다. 기억이라는 게….
소년 : 난 확실히 기억 나. 지난달이었지. 정말 말도 안되는, 정말 후진 공포영화를 보던 중 깨달았어. ‘적어도 난 저것보다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영화감독 : (웃음) 누군가의 졸작을 위안의 대상으로 삼으면 좀 위험하지 않을까? 걸작을 만들어야지. 그런 계기로 어떻게 영화감독의 길을 결심하지? 적어도 난 12세 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스타워즈’같은 영화를 만들 꿈을 키웠어. 걸작이지.
소년 : 영화 ‘택시 드라이버’와‘데미안’,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건축가 프랭크 라이트, 음악가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영화감독 : 영화‘대부(The Godfather)’와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바흐…
소년 : 난 최고의 영화감독이 될 거야.
영화감독 : (한숨) 제발 잘되길 바란다. 꿈을 계속 꾸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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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깨달았지만 내 작품엔 태양과 그림자가 많이 등장한다. 나와 대화를 나눈 소년은 어릴 적 나다. 그 소년은 분명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 소년은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지혜롭지 않다. 무엇이 영화감독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노력한다. 아쉬움은 떨쳐버리고, 다음 작품에 몰두한다. 당신도, 고통과 성숙이 반복되는 끝없는 여정 속에서, 당신의 꿈이 잊히려 할 때, 한 번쯤 과거의 자신과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소년이 나에게 속삭인다. 나이는 먹어도, 늙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