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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리더십 ③

시련 속에서 ‘불굴의 정신’ 기른 화합의 지도자

  •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명지전문대 총장 kwkim0117@mjc.ac.kr

시련 속에서 ‘불굴의 정신’ 기른 화합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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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양녕대군의 16대손이라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어머니는 이승만이 6세 때 천자문을 떼자 가난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동네 잔치를 열었다. 이런 교육은 그가 엘리트 의식과 왕손 의식을 갖는 바탕이 됐다. 김영삼은 여장부로 소문난 어머니 덕분에 자부심과 우월감이 대단했다. 이렇게 리더에게 우월감을 심어주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강직함을 심어주는 부모도 있다. 이명박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어머니를 꼽는다. 그는 사춘기 때 뻥튀기 장사를 하는 게 부끄러워 밀짚모자를 썼다가 어머니에게 “네 힘으로 일해 돈 버는 것은 떳떳한 것이다. 도둑질한 것도 아닌데 왜 부끄러워하느냐”며 호되게 혼이 났다.

리더의 학창 시절

대부분의 리더는 학교생활이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 처칠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부도 신통치 않았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라틴어와 희랍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루스벨트는 학업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낙제생이었고, 원하던 미술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마오쩌둥도 열등생이었다. 스탈린은 어머니가 원한 대로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그곳에 마르크스 사상을 퍼뜨리다 퇴학당했다. 무솔리니는 학교 성적은 좋았지만 두 차례나 동급생을 칼로 공격했을 정도로 난폭했다. 박정희도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구사범 4학년 때 성적이 73명 중 꼴찌다. 결석도 자주 했다. 김영삼은 통영중학교 2학년 때 한국인을 멸시하고 아이들이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를 싸오면 빼앗아 내던졌던 일본인 교장을 골탕 먹인 일이 있다. 일본인 반장을 때리고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

조지 W 부시는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를 ‘어둡고 습기 찬 듯 축축한 분위기’라고 묘사했다. 그는 여동생의 죽음으로 힘들어했고, 난독증이 있었으며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처도 학교에서 인기가 없었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한 친구가 적었다. 동급생들에게 ‘야심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안철수는 ‘몸치’여서 학창시절 축구를 할 때마다 놀림감이 되곤 했다. 반면 드골과 레닌은 좀 예외여서, 학업을 계속했다면 학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레닌은 감옥에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을 정도로 탐구욕이 강했다.

리더들은 젊을 때 해외 경험을 많이 한 편이다. 간디는 유럽과 남아프리카에서 20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다. 처칠은 세계를 여행했다. 20대 때 종군기자로 쿠바, 인도, 수단, 남아프리카 등의 전장을 누볐다. 장제스는 일본과 소련을 여행했다. 레닌도 여행을 많이 한 편인데 가까운 유럽으로 망명한 적도 있다. 루스벨트도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즐겼다. 존 F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아버지의 지시로 두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각국의 전쟁 준비 실태를 살펴봤다. 이때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터키, 예루살렘, 레바논, 시리아, 그리스 등을 두루 돌아다녔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와 하와이에서 산 경험이 있으며, 유럽과 케냐를 여행하기도 했다. 아웅산 수치는 15세 때부터 인도와 영국 등에서 생활했다.



반면 여행을 거의 하지 않은 리더도 있다. 스탈린은 이란 테헤란이나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나라를 떠난 것을 제외하면 거의 국내에만 있었다. 마오쩌둥도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다. 히틀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도를 빼고는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프랑스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정도다. 세상이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토록 자기집착적인 정치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산전수전 공중전

젊은 날의 해외여행은 자국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낯선 문화와 이념에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된다. 남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이를 조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에 젊을 때의 해외 경험은 중요하다. 이번 대선 후보 중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은 손학규, 박근혜, 정몽준, 안철수 정도다.

리더에게는 굴곡진 삶의 경험도 큰 자양분이 된다. 존 F 케네디는 해군에 입대했을 때 작전을 수행하다 일본 구축함에 받힌 적이 있다. 바다를 표류하고 무인도에서 6일을 버틴 끝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아웅산 수치는 두 살 때 아버지 아웅산 장군을 여의었고, 15세 때인 1960년 인도 주재 버마대사로 임명된 어머니를 따라 인도 델리로 망명을 떠났다.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1988년 미얀마에 귀국한 뒤엔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가택 연금을 당했다. 문화혁명 초기 대학에 다니던 후진타오도 ‘자산계급 반동노선’을 걸었다고 비판받고 두 달 동안 ‘노동개조’를 당하면서, 땅을 쓸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육체노동을 한 적이 있다.

리더들은 이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경우가 흔하다. 처칠은 젊은 시절 공직도 없고 의원직도 없고 당도 없고 심지어 맹장도 없다고 할 정도로 한직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이후 정치 언론 등 각계에서 경력을 쌓았고, 1940년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한 후 영국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로 부상했다. 드골의 경력도 처칠과 비슷한 면이 많다. 드골은 타고난 군인이자 정치가이고 저술가였다. 눌변인 처칠이 노벨문학상을 탈 정도의 문장력을 가진 것과 유사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베르 전투에 참가한 드골은 세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 독일 포로가 된 뒤 다섯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혹독한 고문과 린치를 견딘 뒤 1920년 귀국해 훈장을 받은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 런던에서 방송을 하며 프랑스 국민에게 항전을 촉구했다. 또 북아프리카에서 자유프랑스군을 이끌기도 했다. 1958년 알제리 전쟁 때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은 드골은 이후 10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활동에 초기부터 관여했다. 1919년 그가 제시한 비전은 “세계는 우리의 것이고 국가는 우리의 것이고 사회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말할 것인가?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누가 행동할 것인가?”였다. 전략가적인 기질이 넘치는 그는 한때 국민당과 손을 잡아 농민을 규합한 뒤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중국 전역을 장악했다. 그 후 27년 동안 독재자로 집권하며 의도적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그때 벌어지는 변화를 기회로 삼아 감시와 억압과 통제를 강화해나갔다.

어린 시절 변호사와 학자가 되기를 꿈꿨던 레닌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형이 사형당한 이후 볼셰비키 운동의 리더가 된다. 러시아 내부의 무장 봉기와 국제적인 혁명을 일으키는 데 진력하면서, 동시에 정치 리더로서 엘리트 정당을 창당하는 계획도 세운다. 한때 서유럽으로 망명해 유럽 대륙에 공산당 세력을 키우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박정희는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군내 좌익 소탕 작업이 벌어졌을 때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1949년 강제 예편도 당했다. 1980년 내란 음모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대중의 옥중편지도 그의 굴곡진 삶을 널리 알린 역사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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