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작지만 강한 대학, 기업 맞춤형 교육 시대를 열다

  • 이권효| 동아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철학박사 boriam@donga.com

    입력2012-07-23 1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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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 중 ‘기업 출신’이 80%, 국내외 430개 기업과 주문식 교육 협약, 국내 30대 기업으로부터 냉정하게 평가받은 교재 개발…. 20년 동안 기업 주문형 교육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영진전문대학교의 상황이다. 이 대학은 “인재를 길러내 기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국내 유명 대학조차 ‘가지 않은 길’을 꿋꿋하게 걷고 있는 영진전문대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주문식 교육’을 향한 영진전문대의 뚝심은 교내 표지석에도 새겨져 있다.

    ‘노랗게 물든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한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적어 누군가 더 걸어야 할 길처럼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깊은 숨을 내쉬며 말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선택하였다고. 그래서 내 삶도 이렇게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대표적인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일부다. 소박한 삶을 주로 노래한 그의 시 세계를 생각하면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개척자 정신보다는 망설이면서도 인생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서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의 의도가 어떻든 이 시는 이미 많은 사람이 걸어간 보편적인 길을 가기보다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헤쳐나가는 프런티어 정신을 찬미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대구에 있는 영진전문대는 이 시를 닮았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열어젖히는 측면에서 그렇다. 기자는 이 대학이 펴낸 ‘아무도 가지 않은 길-맞춤형 주문식 교육의 길을 연 영진 30년 이야기’(335쪽)라는 책을 최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책 제목부터 프로스트의 시를 연상시킨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기는 쉽지 않다. 대체로 내용이 빈약하거나 상투적인 데다 자화자찬식 이야기를 늘어놓아 이른바 ‘스토리’가 잡히지 않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비탈진 황무지를 개간해 씨를 뿌리고 정직하게 수확하는 농심(農心)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어느새 넓은 들녘으로 바뀐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가지 않은 길을 열다



    영진전문대는 요즘 특히 대학 교육과 관련해 널리 쓰이는 ‘기업 주문식 교육’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대학으로 유명하다. 기업과 대학교육의 ‘불일치’ 또는 ‘간격’을 최대한 줄여 기업은 신입직원의 재교육 비용을 낮춰서 좋고, 취업하는 학생은 인생 낭비를 막을 수 있어 좋은, 서로를 살려주는 상생(相生)이 바로 ‘기업 주문형 교육’이다.

    영진전문대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세계수준의 전문대학(WCC)’을 비롯해 ‘국가고객만족도(NCSI)’조사 10년 연속 1위,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문대 등 그동안 쌓은 화려한 좌표와 브랜드는 1990년대 들어 개척한 주문식 교육 덕분이다. 주문식 교육은 이 대학이 의지할 곳 없는 망망대해 풍랑 속에서 방향을 잡게 해준 나침반 같은 ‘북극성’이었다. 또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갈 수밖에 없는 ‘길(道)’이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내내 떠올랐다. 주문식 교육이 얼마나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싹을 틔웠는지, 얼마나 절실하게 추진했는지, 또 그동안의 성과를 오히려 작은 성취로 여기면서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지금의 노력을 한 편의 시를 음미하듯 되새김해보고 싶었다. 교육 경쟁력과 관련해 귀 기울일 만한 정신과 에너지가 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과연 어떤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나’하는 교훈을 찾아보고 싶었다.

    항산(恒産)의 철학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든지 창업을 하든지 ‘기업’과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진로는 기업 쪽이다. 일찍이 맹자(孟子)가 적절히 지적했듯 예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이 생계를 위해 일정하게 하는 일이 없으면 올바른 마음가짐도 기대하기 어렵다(無恒産無恒心·무항산 무항심). 그의 유명한 성선설(性善說)을 떠받치는 것도 지금으로 보면 ‘취업’을 통한 안정된 생활이다.

    요즘은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입학 자원 감소 우려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해당 대학의 취업경쟁력을 면밀히 따지는 경우가 많아 대학의 분위기도 예전과 사뭇 다르다. 상아탑이 사라진다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고, 우골탑(牛骨塔)이라며 학비 마련에 부모 허리가 휘는 현실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아탑이든 우골탑이든 결국 대학 졸업이 취업(직장)으로 이어지느냐 만큼 절실한 문제는 없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결국 졸업생의 ‘항산(恒産)’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진전문대의 어제와 오늘에는 이 ‘항산’에 대한 강한 신념이 스며 있다.

    ‘대학교육이 지나치게 공급자(대학)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걱정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기업 쪽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 안에서 ‘우리가 과연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를 교육하고 있는가’ 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을 때였다. 당시 정부가 주요 기업 경영자들과 마련한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오랫동안 재교육을 시켜야 해 손해가 너무 많다. 기업과 대학교육이 이렇게 동떨어진 것은 심각한 문제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이 무용지물 같은 졸업생을 배출하는 게 아니냐는 한숨이었다.

    영진전문대를 설립한 최달곤(75) 초대 총장은 다음 날 이 내용을 다룬 신문기사를 보고 무릎을 쳤다. 그는 “바로 저것이 내가 그동안 온갖 방법을 통해 추구하려던 교육방식이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실무 능력을 갖추도록 졸업생을 가르치는 교육, 그것이 기업과 대학의 협동이며 바로 저런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회고했다. 주문식 교육을 도입하고 기초를 닦은 그는 2008년 퇴임했다.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대구 북구 복현동에 자리한 영진전문대 캠퍼스 전경.

    따라가면 ‘마이 웨이’는 없다

    영진전문대는 1977년 영진공업전문학교로 출발했다. 팔공산 인근 대구 북구 복현동 복숭아밭을 밀어내고 들어섰다. 교명 영진은 ‘오래도록 변함없는 자세로 발전해나간다’는 뜻으로 ‘영(永)’과 ‘진(進)’이라는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영원히 진화하면서 큰길(大道)을 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허허벌판에 들어선 후발 전문대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1차도 아닌 2차 모집 대학이어서 1차 떨어진 학생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보잘것없는 대학에 지나지 않았다. 정원을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홍성태 전 부학장(현 영진고 교장)은 “그때부터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나 교수 스스로 경쟁력을 확실히 키우지 않으면 무너진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1981년부터 시행된 대학 졸업정원제(정원보다 많은 신입생을 선발한 뒤 졸업 때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는 제도)는 신생 전문대 학생 모집에 큰 타격이었다. 하지만 영진전문대는 ‘직업보도과(직업교육을 도와 이끌어주는 부서)’를 본부에 설치해 산학협력에 주력했다. 교수들도 기업을 돌아다니면서 ‘현장’에 눈을 떴다. 주문식 교육은 이때부터 싹튼 셈이다.

    1990년대에 들면서 영진전문대는 기업에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주는 방식의 교육에서 완전히 벗어나 4년제 대학과 확실한 차별화를 꾀하는 ‘사즉생’(死卽生·죽기를 각오하면 오히려 살 수 있음) 상황과 마주했다. 교수 채용과 학생 모집, 교육 과정 등 전문대 운영에서 기존의 모든 관행을 완전히 도려내야 하는 절박한 위기의식이었다. 1992년 추진한 ‘학과 발전 5개년 계획’은 바로 그 출발점이다. 학과별로 10년 후에도 살아남을 방안을 만들었는데, 그 핵심은 ‘산업체가 바로 활용하는 인력 배출’이었다. 추진 상황을 매해 12월 공개 발표하도록 했고, 필요한 예산은 최대한 지원했다. 교직원들은 안이한 현상유지나 선례를 답습하는 교육방식은 곧 폐교에 이르는 길이라는 벼랑 끝 심정으로 기획에 매달렸다.

    백지 상태에서 새 출발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영진전문대 학생들이 교내 반도체 공정센터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주문’이라는 말은 무엇을 만들어달라고, 어떤 일을 해달라고 요구 요청 의뢰 부탁 청구하는 것이다. 미리 주문해 만든다는 뜻에서 ‘맞춤’도 같은 뜻이다. 공급자는 수요자의 주문이 들어와야 비로소 일을 할 수 있다. 제품을 만들어 잔뜩 쌓아놓아도 주문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으면 공장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주문자와 공급자의 요구가 맞아떨어져야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연히 드는 의문은 주문식 교육을 도입한다고 해서 기업이 박수를 치면서 얼씨구나 하겠느냐는 점이다. 전국 처음으로 수요자(기업)를 위한 맞춤형 주문식 교육을 하겠다고 해서 어느 기업이 곧이곧대로 믿어줄 것인가. 더군다나 4년제 대학이 넘치는 현실에서 영진전문대는 이름도 없는 작은 대학에 불과했다. 의욕은 좋지만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이 같은 시도를 설령 기업이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 대학이 주문식 교육으로 기업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는 유능한 졸업생을 배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주문식 교육이라는 이름만 있고 실질은 형편없다면 영진전문대는 오히려 감당할 수 없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산업체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수를 채용합시다.” 1992년 11월 영진전문대는 ‘산업체 현장근무 5년 이상인 분 혹은 산업체에서 정년퇴임한 분으로 전공분야 강의 및 산학 유대 강화에 기여하실 분을 모십니다’는 내용의 교수 채용 공고를 냈다. 지금은 산학협력 차원에서 기업체 출신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학 교육에 참여하지만 당시만 해도 기업체 경력자를 최우선으로 우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1993년 공채1기 교수로 채용된 최영태 교수(63·신재생에너지전기계열)는 “꼭 필요한 교육 방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한 이후 20년 동안 현대그룹 등 여러 기업체에서 일한 최 교수는 “대학교육과 기업실무에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늘 느꼈다”고 말했다.

    지금도 전체 교수 200여 명 중 기업체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은 교수 비중이 80%가량이다. 하이닉스반도체 연구소에서 22년 근무한 엄재철 전 상무가 2009년 정보통신계열 교수로 부임한 것을 비롯해 삼성전자 생산기술 분야에서 21년 근무한 연규현 전 이사,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에서 14년 근무한 한동후 전 실장 등이 영진전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1994년은 영진전문대로서는 가장 의미 깊은 해다. 제2의 개교라고 할 ‘기업 맞춤형 주문식 교육’이 마침내 출발선에 섰다. 그해 6월 전 교직원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새마을연수원에서 합숙을 하면서 ‘주문식 교육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폐교’라는 정신무장을 했다. ‘이젠 정말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하자. 그동안의 교육과정을 모두 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다시 출발하자. 산업체 현장을 철저하게 체험하면서 기업이 무엇을 원하는지 완벽하게 분석하고 대처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1995년 12월 영진전문대로 공문이 날아들었다. 주문식 교육을 위한 계열별모집 전공 코스제 도입 시범학교로 지정됐음을 알리는 교육부 장관 명의의 공문이었다. ‘귀 대학이 승인 요청한 학사운영 개선방안을 검토한 결과 전문직업인 양성 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발전에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되어 시범대학으로 지정하오니 충실히 운영해주시기 바랍니다.’ 1996년부터 ‘계열별 모집’이 시작되고 ‘기업맞춤형주문식교육’이라는 용어도 공식적으로 사용됐다.

    주문식 교육이 기업의 인정과 신뢰를 받게 된 계기는 바로 ‘기업맞춤형 교재개발’이다. 4년제 대학의 교재를 흉내 내서는 기업의 신뢰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업과 함께 교육교재를 만들고 기업이 교재를 평가하도록 하자’는 것을 새로운 교재 개발의 기준으로 삼았다. 1995년 교재편찬위원회를 구성한 뒤 10년 동안 6억 원을 투입해 전공별로 ‘살아 있는’ 교재를 개발했다. 지금도 교재 개발 과정에 해당 기업 간부가 참여하고, 교수가 일정 기간 해당 기업에서 연수를 하기도 한다. 개발한 교재는 관련 기업 전문가 5명이 심사를 해 50점 만점에 40점 이상 받아야 교재로 채택된다.

    스스로 주문하고 수요를 창출하라

    전문대 교육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이 같은 노력이 알려지면서 1996년 박세일 대통령사회복지수석비서관이 영진전문대를 방문해 주문식 교육을 ‘교육개혁’의 중요한 계기로 삼는다. 이어 하이닉스반도체 등 주요 기업들이 ‘영진의 주문식 교육이야말로 기업과 대학이 상생하는 최적’의 모델이라고 평가하면서 ‘주문’이 이어졌다. 하이닉스반도체 인사담당자는 “영진전문대 출신은 업무 능력이 확실히 달라 ‘생산직’이 아니라 ‘기술사무직’으로 직종을 전환했다. 능력이 뛰어난 만큼 당연히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현재 영진전문대는 320여 개 국내기업과 107개 외국기업과 주문식 교육 협약을 맺었다. 산학협력을 한 기업도 1700여 곳이나 된다. 주문식 교육으로 유능한 인재를 공급해줘 고맙다며 장학금을 주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모두 우직하게 밀고나간 주문식 교육의 결실이다.

    지금은 기업의 주문을 받는 ‘수동적’ 방식을 넘어 기업이 갖추기 어려운 첨단장비 200여 가지를 학교에 갖춰 활용토록 하고 기업의 제품 기획 수출까지 지원해 기업을 발전시키는 ‘능동적’ 방식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초정밀 가공에 필요한 초음파 가공기(6억 원)나 미세절단기(8억 원) 등은 웬만한 중소기업에서 자체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장비들이다. ‘쌍방형’ ‘상생형’ 주문식 교육으로 ‘영진’이라는 이름값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영진전문대는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다. ‘주문식 교육의 완성이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이다. 그동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주문을 하는 것이다. 수요자-공급자 틀을 넘는 주문식 교육을 개척하려고 한다. 그 새로운 실험이 내년부터 선보이는 ‘입도선매(立稻先賣) 명품교육’이다. 논에 자라는 어린 벼(기술 장인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고교생)가 반듯하게 성장해 풍성한 결실을 이루도록 하루라도 빨리 뒷바라지하려는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교육방식은 우선 컴퓨터응용기계계열과 전자정보통계열에 각 20명을 올해 8월부터 선발해 기숙사에서 교수 1명이 학생 5명을 전담해 취업까지 책임지는 소수정예 교육이다. 학비 부담 없이 오직 최고의 기술인재를 향한 꿈을 가꾸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영진전문대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끊임없이 성장시키는 기업맞춤형 주문식 교육의 정체성이고 에너지다.

    인터뷰 | 최재영 영진전문대 총장

    “리더십까지 갖춘 융합형 기술인재 키우겠다”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원활한 취업을 통해 기업 활성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봅니다.”

    최재영(47·사진) 영진전문대 총장은 “대학과 기업은 넓은 뜻에서 하나의 캠퍼스라는 공감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2월 제3대 총장에 취임한 그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거쳐 2002년 영진전문대 교수로 부임해 경영기획부총장을 지냈다.

    최 총장은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 교육도 끊임없이 개선돼야 기업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나란히 성장할 수 있다”며 “교직원과 학생이 한마음으로 새롭고 강력한 주문식 교육의 정신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그동안의 성과에 적당히 안주하면 미래는 우리를 외면할 것”이라며 “어제와 오늘의 성취는 내일을 위한 냉정한 채찍으로 삼아 시대를 이끄는 뚝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총장은 “영진 출신이 기업맞춤형 업무에 우수하다는 평가를 넘어 리더십도 갖춘 융합형 기술인재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주문식 교육’의 뚝심 대구 영진전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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