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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16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

몰락하던 왕조 부활시킨 그라운드의 ‘잭 웰치’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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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 토레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때는 1964년이다. 당시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명포수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964년 타율 3할1푼2리, 홈런 12개를 기록하며 올스타에 처음 뽑혔다. 이듬해인 1965년에는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1969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한 뒤에는 야구 인생의 황금기를 맞는다. 3루수로 보직을 바꿨음에도 토레 감독은 1971년 타율 3할6푼3리, 홈런 24개, 137타점의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그야말로 선수 생활의 절정기를 만끽했다.

토레 감독은 선수 생활 말년에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왔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뉴욕 메츠에서 활동한 그는 통산 18시즌을 뛴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 동안 타율 2할9푼7리, 통산 25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포수, 1루수, 3루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었음에도 어느 포지션에서건 수준급의 성적을 냈다. 현역시절 9차례나 올스타에 선발될 정도로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타에서 무능한 지도자로

토레 감독은 1977년 시즌 중 뉴욕 메츠의 선수에서 코치로 변신했다. 이후 1981년까지 메츠 감독으로 활동했지만 그 기간에 낸 성적은 형편없었다. 감독으로 재직한 5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은 고사하고, 5할 승률을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다. 결국 1981년 시즌 중반 감독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1982년 토레 감독은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명장인 바비 콕스 전(前)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의 뒤를 이어 애틀랜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1982년 한때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차지했지만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3연패해 탈락했다. 이후 성적은 더 나빠졌고 그는 감독 부임 2년 만인 1984년 해고당했다.

결국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토레 감독은 무려 5년간 미국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인 ESPN에서 야구 해설자로 활동해야만 했다. 오랫동안 야인(野人) 생활을 하던 토레 감독은 1990년 드디어 메이저리그 복귀 기회를 잡았다. 자신의 선수 생활 동안 황금기를 보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수장(首長)이 된 것. 하지만 1995년까지 6시즌 동안 그는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미국 야구계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역시 명감독이 될 수 없다”며 토레의 지도력을 폄하했다. 무려 세 개 구단에서 잇따라 실패를 맛본 그를 데려갈 팀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최고 인기팀 사령탑이 되다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

뉴욕 양키스 선수들이 7월 1일 양키스구장을 찾은 조 토레(맨 오른쪽) 전 감독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토레 감독은 1996년 메이저리그의 최고 인기 팀인 뉴욕 양키스의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그의 영입을 주도한 사람은 ‘보스(The boss)’라는 칭호로 유명한 고(故) 조지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구단주였다.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1973년부터 2007년까지 34년간 양키스를 소유하며 무지막지한 권력을 휘둘렀다. 감독, 단장, 선수, 스태프 등 구단 내 누구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쳤다. 평소 옷차림이나 사생활 등 야구장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간섭이 심했다. 빌리 마틴 전 양키스 감독은 그로부터 무려 5번이나 기용됐다 해임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토레 감독이 양키스에 발을 담그기 전 10여 년 동안 여러 팀을 전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이 토레의 영입에 의문을 표시했다. 심지어 뉴욕 주요 언론들은 고집불통 구단주가 무능력한 감독을 선택했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일부 언론은 ‘멍청한 조 토레(Clueless Joe)’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토레 감독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단에게 “나를 믿으라”는 판에 박힌 말 대신 “너희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증명해 보이겠다”는 다짐으로 무명 지도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던 선수단의 불안을 잠재웠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게는 “너는 곧 살아날 것”이라며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선수들과 신뢰를 쌓아간 그는 199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꺾으며 뉴욕 양키스에 우승컵을 안겼다. 1978년 우승 이후 18년 만의 쾌거였다.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뛸 듯이 기뻐했고 뉴욕 언론도 앞 다퉈 그를 칭송했다.

1996년의 우승은 토레 감독 개인에게도 재기의 발판이 됐지만 지금도 양키스의 상징으로 군림하는 주장 데릭 지터(38)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그해 처음으로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지터는 타율 3할1푼4리, 홈런 10개, 78타점을 기록하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메이저리그 신인상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그는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해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는 4할1푼2리의 타율을 올리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선 4할1푼7리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넘쳐나는 유망주 중 한 명이었던 지터는 이를 통해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고 지금도 미국 야구계를 대표하는 선수로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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