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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배우 열전

아직도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엄앵란-이영옥-강수연 이은 청춘영화 막내 헤로인

  • 오승욱 │영화감독 dookb@naver.com

아직도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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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

밖으로 나가니 빨간 우산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보인다. 토끼 같은 눈망울, 아담한 키, 빨간 머플러에 나팔바지를 입은 여주인공 영자, 바로 이영옥이다. 그녀는 늦은 것을 사과하면서 “급한 일이 있는데 기다리고 있을 파트너가 불쌍해서 잠깐 와본 거다. 친구가 병에 걸렸는데,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할 일이 없었던 병태는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러나 이영옥이 찾아간 곳은 친구가 아닌 교수의 집이었다. 그녀는 교수를 찾아가 학점을 고쳐달라고 떼를 쓴다. 어떻게 해서든 F학점을 면하려던 그녀는 급기야 교수의 집 거실에서 대성통곡을 한다. 난감해하던 교수는 “내일까지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리포트를 써오면 F학점은 면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훌쩍이며 교수의 배웅을 받고 나온 이영옥. 하지만 교수의 집 대문이 닫히자마자 훌쩍이던 얼굴은 금세 생글생글거리고, 기다리던 병태에게 “철학과 학생이니 책을 많이 읽었겠네”라고 말한다. 병태가 그렇다고 하자 이영옥은 토끼 같은 눈을 반짝이며 ‘이방인’을 읽었느냐고 묻고, 병태는 자신 있게 읽었다고 답한다. 그러자 이제는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조른다. 병태는 뭐 아무려면 어떠냐는 얼굴로 해주겠다고 한다. 이영옥과 헤어진 후 병태가 발에서 불이 나게 서점으로 달려가 “카뮈 이방인 주세요”라고 말하며 병태와 이영옥의 첫 만남 시퀀스가 끝난다.

1970년대의 이영옥과 1980년대의 강수연을 보면 한국 청춘영화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 장면에서 여주인공들은 거의 다 당돌하고 생기발랄하게 그려진다. 1960년대 영화 ‘맨발의 청춘’의 엄앵란 역시 수줍은 듯 조신하지만, 그 시대 여성들에 비하면 여간 당돌하지 않다. 엄앵란은 특유의 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건들거리는 신성일을 보고는 귀엽다는 듯 미소 짓는다. 아마 당시 여성들도 엄앵란을 보고 ‘저 여자처럼 쿨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2001년의 전지현은 당돌함과 생기발랄함을 넘어 자신의 확고한 주관이 남자 때문에 변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은 차태현에게 끊임없이 이벤트를 요구한다. 차태현이 난감해하면 바로 이를 앙다물고 눈을 부라리며 “너 죽을래?”하며 협박한다. 차태현의 학교로 약속 없이 들이닥치는 전지현, 화사한 봄 날씨에 어울리게 원피스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었다. 전지현은 “하이힐을 신으니 다리가 아프다”며 차태현에게 신발을 바꿔 신자고 한다. 난감한 차태현이 그냥 맨발로 가면 안 되냐고 하자 전지현은 바로 “너 죽을래?” 하며 주먹을 들이댄다. 차태현의 운동화를 신고 “나 잡아봐라”하며 앞서 달리는 전지현. 차태현은 자신을 보고 킥킥거리는 주변의 시선보다 하이힐을 신은 고통으로 죽을 맛이다. 자기를 잡으러 뛰어오지 않자 전지현은 다시 주먹을 든다. 어쩔 수 없이 전지현을 쫓아가는 차태현. 발을 죄어오는 하이힐의 고통이 이만저만하지 않다.

1970년대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이영옥도 약속 없이 병태의 학교를 찾아간다. 남녀공학인 병태의 학교는 여대생 이영옥에게는 신기한 공간이다. 여대와는 달리 그 무렵 남자들의 대학에는 시대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마침내 병태를 찾아내는 이영옥. 병태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공을 몰고 상대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병태. 골문을 향해 슛을 날리는데 공이 아니라 병태의 운동화가 골대를 향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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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 │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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