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연기로 확인된 존재감 전도연

한국 여성의 욕망과 불안 뿜어내는 ‘칸의 여인’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입력2013-02-21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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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배우. 전도연의 연기는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다. 심은하·고소영 같은 화려함은 없었지만 연기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했다. ‘해피엔드’는 여배우의 노출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단박에 깨뜨렸다. ‘밀양’에선 고통을 피처럼 뒤집어쓰고 허우적거려 관객을 사로잡았다. 전도연은 21세기 한국 여성의 욕망과 불안을 처음으로 설득력 있게 연기해냈다. 이다지도 처절하게 옷을 벗은 여인이 또 있을까.
    연기로 확인된 존재감  전도연

    2007년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

    1990년대 초, 나는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서 집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TV ‘토요명화’를 통해서만 영화를 보는 시대는 이제 굿바이였다. 나는 당장 이소룡 영화와 왕우 영화 등 온갖 무협영화 비디오테이프를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사 모았다.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한번 상영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나는 왕우의 저 멋진 혈투 장면을 ‘갖고’ 싶었다. 방법은 단 하나, 내 머릿속에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극장 안에서 한 영화를 일곱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1980년대만 해도 부자 친구 집에 가야만 구경할 수 있던 베타 방식의 비디오 플레이어는 VHS 방식으로 전환된 1990년대 들어 각 가정에 보급돼 비디오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 극장가를 휩쓴 에로영화들은 점차 극장에서 사라졌고, 대신 동네 비디오 가게의 최고 흥행물로 변신했다. 여전히 동물을 사랑하는 부인들의 인기는 사라지지 않아 ‘젖소 부인’ 시리즈가 ‘애마 부인’ 시리즈의 후계자로 등장했다.

    비디오 시장은 극장 손님을 빼앗아 갔지만, 한국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비디오 판권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줬고, 한국 영화계가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영화의 질은 점차 좋아졌다. 더는 한국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가는 게 창피하지 않게 됐다. 20대 젊은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가는 아름다운 광경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1970년대 한국 영화 제작비의 거의 모든 부분을 좌지우지했던 지방 흥행업자들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대신 삼성, 대우, 현대 같은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투자대비 이익을 내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깨달은 대부분의 대기업은 투자한 지 4~5년 만에 철수했다. 하지만 모두 떠난 건 아니었다. 일신창투 같은 투자회사가 한국 영화 제작에 새롭게 뛰어들었고, 1990년대 말에는 롯데, CJ 같은 대기업이 영화전문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뭔가 부족했던 고소영, 심은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 제작사, 지방 흥행업자가 영화 제작비의 전부를 부담했기에 당연히 그들이 기획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영화기획사라는 것이 생겨나 문화가 바뀌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새로운 인재들이 영화계에 뛰어들었고, 이들이 개발해 만든 영화가 늘어났다. 신문광고에만 의존하던 영화 광고는 영화사의 전문 홍보실, 영화 홍보 전문 회사들을 통한 홍보로 점점 바뀌어나갔다. 특히 영화계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들의 파워가 대단했다.

    한국 영화는 1990년대 들어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새로운 세대의 여배우들이 나타났다. 고소영이 대표적인 경우다. 1970년대에 태어난 젊은 남자 관객들은 고소영의 미모에 빠져들었다. 고작 CF 한두 편에 출연했을 뿐인 그녀에게 영화계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러던 중 ‘결혼 이야기’(김의석 감독, 1992)등 관객들의 기호와 감성에 맞는 영화를 만들던 1950~60년대생들을 주축으로 한 영화 제작사 ‘기획시대’가 고소영을 주연으로 야심 찬 기획을 시도한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컴퓨터그래픽(CG)을 이용한 영화 ‘구미호’(박헌수 감독, 1994)였다. 미남 신인 배우 정우성과 미녀 신인 배우 고소영의 조합은 영화 촬영 초부터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수준 낮은 CG , 엉성한 스토리, 특히 고소영의 어설픈 연기에 관객은 실망했다.

    고소영은 1997년 ‘비트’(김성수 감독)에 정우성의 여자친구 로미 역으로 출연했다. ‘비트’가 상영된 후 젊은 남자들 사이에선 한쪽 눈을 뒤덮는 머리카락과 지포 라이터가 열풍을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10여 년 전 홍콩 영화 ‘영웅본색’이 몰고 온 이쑤시개 씹기, 라이터 불 입으로 빨아들이기와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비트’의 고소영은 정우성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1994년, TV 연속극 ‘마지막 승부’의 여주인공이 시선을 모았다. 심은하였다. 같은 해 그녀는 TV 연속극 ‘M’과 ‘숙희’에 출연해 아름다운 외모와 연기력을 지닌 여배우로 기대를 모았고 다음 해 바로 영화에 진출했다. 제목은 ‘아찌 아빠’(신승수 감독, 1994).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다. TV에서와는 달리 그리 예쁘지도 않았고 연기도 별로였기 때문이다. 1996년 정우성과 심은하가 나온 ‘본투킬’(장현수 감독, 1996)도 별 재미를 못 봤다.

    두 편의 영화에서 실패한 심은하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였다.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고소영과 심은하가 여배우 후보로 거론됐다.

    심은하의 발탁 소식에 많은 이가 반신반의했다. 전작에서 보여준 형편없는 연기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신인 감독이 주연 배우들을 자기 마음대로 캐스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8월의 크리스마스’ 시나리오는 멜로드라마가 너무 심심하다는 이유로 충무로의 누군가는 “이런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장사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공언했을 정도였다. 망설이던 한석규가 출연하기로 결심하자 심은하가 영화 출연을 승낙했다.

    심은하의 촬영 첫날, 시나리오 작가였던 나는 현장에 있었는데 나이 드신 스태프 한 분이 심은하 옆으로 다가가 예의를 갖추면서 “전작처럼 연기를 하면 안 된다.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았다. 스태프 모두가 심은하의 연기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랬던 심은하는 자신의 촬영분 3회 만에 “아, 다림이는 저런 여자였구나!”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며 현장을 설득하고 모두의 사랑을 받는 여배우로 거듭났다.

    전도연의 재발견 ‘해피엔드’

    1990년대 중반 이후 심은하가 한국 영화계 최고 여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 그늘에 가려 있던 여배우가 있었다. 1990년 존슨앤존슨 화장품 CF에서 청순한 소녀 이미지로 눈길을 끌고 뒤이어 TV 드라마 몇 편에 출연한 전도연이었다. 넓고 시원한 이마와 밝은 웃음이 매력적인 배우였지만, 너무 아기 같은 얼굴이었고 작아 보였다. 심은하, 고소영, 김희선 같은 미모의 여배우들이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고 있을 때 전도연은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전도연의 첫 영화 출연작은 ‘접속’(장윤형 감독, 1997). 당시 전도연은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우였다. 아무도 그녀의 연기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전도연은 한 남자를 짝사랑하는 역을 설득력 있게 해냈다. 그러나 ‘접속’은 분명 전도연보다는 한석규에게 더 관심이 쏟아진 영화였다.

    전도연의 두 번째 출연작은 ‘내 마음의 풍금’(이영재 감독, 1998)이었다. 전도연은 선생을 짝사랑하는 소녀 역을 맡았다. 전도연은 외모에서 풍기는 소녀 같은 이미지 때문에 두 편의 영화에서 성공했지만, 연기 폭은 너무나 좁게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미성숙의 느낌이 강했다. 그것은 독특한 개성이면서 동시에 한계로 비쳤다. ‘약속’(채희주 감독, 1998)에서도 전도연은 조폭 두목과 사랑에 빠진 여의사 역을 맡아 미성숙의 이미지를 버리려 애를 썼지만, 모두들 박신양의 영화로만 생각했을 뿐 전도연에게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때까지 그녀의 연기에서 기억나는 것은 그저 활짝 웃거나, 수줍은 듯 웃거나, 큰 눈에서 수정 같은 눈물방울이 굴러 떨어지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이듬해, 전도연은 모험을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저 멀리 아파트 복도 끝에서 한 여자가 카메라를 향해 걸어온다. 활동적인 전문직 여성들이 즐겨 입는 고급 양장 바지 차림이다. 당당하게 걷는 그녀는 전도연이다. 그때 화면의 왼쪽에서 한 여성이 들어온다. 뒷모습이지만 늘씬한 다리가 드러나는 투피스 차림이다. 성숙한 여성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녀가 전도연을 지나쳐 간다. 전도연과 그녀가 비교된다. 성숙해 보이려 눈 화장도 짙게 하고 옷도 차려입고 심지어 키도 비슷했지만, 전도연에게선 뭔가 미성숙의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전도연이 들어간 곳은 내연의 남자 주진모의 집이다. 장면이 바뀌면 뒤엉켜 서로의 혀를 탐닉하는 두 남녀가 화면에 가득 찬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관객들의 눈앞에 섹스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미성숙하고 청순할 것만 같은 전도연을 떠올리던 관객들의 허를 찌르며 영화가 시작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신인 감독 데뷔작의 첫 장면에서 여배우의 가슴을 보여주고, 돈벌이를 위한 섹스신이 아니라 남녀 사랑의 밀도를 표현하기 위한 농밀한 섹스신을 성공적으로 담아낸 것도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여배우 전도연의 연기였다. 소녀 같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연기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과감하게 도전한 그녀의 배우 정신 때문이었다. ‘해피엔드’(정지우 감독, 1999)를 보는 순간 나는 그녀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

    어둠과 빛을 연기한 여배우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의 스토리를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 여배우는 섹스신을 연기해야 한다.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섹스신이 필요하다면 감독은 연출하고 여배우는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1970~80년대에 여배우들을 이용해 불필요한 섹스신을 찍어댔던 한국 영화계의 트라우마가 영화 일을 하는 우리들의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신인 정지우와 전도연은 그것을 과감하게 걷어내버렸다.

    영화 속 전도연은 더 이상 나무 뒤에 숨어 짝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을 훔쳐보곤 수줍게 미소 지으며 달콤한 사랑을 꿈꾸는 소녀가 아니었다.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은 두 남자, 남편 최민식과 내연의 남자 주진모를 자기 앞에 세워놓고 둘이 서로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 세월 거세돼온 여성의 권력의지를 각성하고 미소 짓는 여자를 연기했다. 다가올 2000년대 한국 여성들의 욕망과 결핍을 표현하는 여배우로 거듭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들의 변화와 자각이 두드러졌다. 서비스산업이 발전하면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하는 일이 생겨났고, 여성들은 그 분야에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남성보다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똑같은 일을 해내는 여성 노동자를 자본도 선호했다. 출근길 전철에 탄 남성과 여성의 수가 대등해졌다. 여성 전용칸만으로는 여성을 수용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랫동안 남성들의 세계였던 이곳에서 돈을 번 여성들이 자기계발서를 사 읽고, 나는 무엇이고 뭘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요가를 하고 헬스를 하고, 성형수술을 하고, 멋진 남자들과 섹스를 한다.

    하지만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녀들의 욕망과 불안은 뭘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은 이러한 2000년대 한국 여성의 욕망과 불안을 처음으로 설득력 있게 연기해냈다.

    ‘해피엔드’는 벗는 연기를 하는 여배우는 제대로 된 여배우가 아니라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콤플렉스를 단번에 깨뜨렸다. 전도연은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을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여배우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해피엔드’ 이후 전도연은 박흥식 감독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에서 일과 연애에 지친 보습학원 선생 역을 해냈고, 유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선 전직 권투선수인 조폭 애인에게 눈이 시퍼렇게 멍들도록 매를 맞지만 끝내 속내를 감추고 남자들 엿 먹일 궁리를 하는 전직 라운드걸이자 가수 지망생, 겉으로는 맹하고 푼수 같은 범죄자 역을 해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감독, 2003)에서는 정절을 지키는 여자에서 사랑에 눈을 뜨고 비극적인 최후를 향해 가는 조선시대 여인 역을 해냈고, 박흥식 감독과 다시 만난 ‘인어공주’(2004)에선 어머니와 딸 역을 동시에 해내며 어머니의 풋사랑을 이야기했다. 전도연은 빛과 어둠 두 가지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는 2000년대 대표 여배우로 떠올랐다.

    2000년대 이후 전도연은 심은하, 고소영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었다. 결혼과 함께 스스로 여배우의 길을 버린 심은하, 연기자로서의 삶보다는 CF에 간간이 출연하며 존재감만 확인해주는 존재가 된 고소영과 달리 모두가 인정하는 배우로 살아남았다. 여배우는 미모로 시작하지만 결국엔 연기로 자기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을 전도연은 제대로 증명해 보였다.

    “보고 있냐?”

    2007년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출연한다.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이창동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마저 실패한, 증오와 절망에 몸부림치는 여주인공을 연기할 여배우는 누구일지 궁금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맑은 하늘이 화면에 가득 찬다. 아마도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그곳.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선의 주인공은 관객이기도 하고 여주인공 전도연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 하늘 아래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죽은 남편의 고향에서 아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리려 했던 전도연은 새로운 고장의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여자 취급을 받는다. 죽은 남편의 고향을 찾아온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죽은 남편과의 금실도 썩 좋지만은 않아서, 남편은 바람을 피웠던 것 같지만 그녀는 애써 부인한다.

    전도연은 왜 이곳으로 찾아온 것일까. 그녀는 과부의 몸으로 낯선 고장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이 좀 있는 척도 하고, 상가 여주인들과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도 가고, 지역 시의원의 집 거실에서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서울에서 상심한 그녀가 이곳 밀양에서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녀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은 아들이 유괴당하고 살해되면서 박살난다. 결국 그녀는 기독교로 도피하면서 새 삶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새 삶을 살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가 필요했던, 아직 뭔가 불안하고 결핍돼 있던 그녀는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면 불안과 결핍이 사라지고 충만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살해범은 그녀가 용서하기도 전에 신에게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그녀는 “어떻게 당사자인 내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네가 용서를 받을 수 있냐”며 절규한다. 신이 뭔데, 나를 따돌리고 저희들끼리 용서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도연은 야외 부흥회장에서 목사가 설교를 하던 중에 가수 김추자의 히트곡‘거짓말이야’를 틀어 예배를 방해하고 부흥회장을 빠져나오며 하늘을 힐끗 쳐다보며 묻는다. “보고 있냐?”

    그녀는 자신에게 집요하게 전도한 집사의 남편인 장로를 유혹해 갈대밭에서 섹스를 시도한다. 남자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녀는 속삭인다. “보고 있냐?”

    고통의 대가 ‘칸 여우주연상’

    전도연은 신과 대결하는 여자다.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교인들의 집에 돌을 던지고, 자신을 짝사랑하는 송강호에게 위악을 떨고 끝까지 간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보고 있냐!”라고 속삭이며 목과 이마에 핏대를 세운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고통의 클라이맥스다. 이쯤 되면 이 영화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두려워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신에게 도전하고 끊임없이 싸움을 거는 여주인공과 그것을 연기하는 전도연을 보면서 관객인 나는 고통받는다. 전도연은 여주인공의 고통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같이 고통스러워한다. 한국 영화에서 이처럼 처절하게 고통을 피처럼 뒤집어쓰고 허우적거리는 여주인공을 본 적이 있던가.

    이창동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연기를 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 억지로 꾸며내지 말라는 얘기다. 배우들은 이창동의 주문에 막막해하며 그와 일한다. 전도연 역시 그런 주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영화의 중반에 이르면 연기를 포기하고 여주인공의 심연 속에 들어가 고통 받는 것처럼 느낀다. 그 고통의 대가로 그녀는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다.

    저런 힘든 역을 했으니 좀 쉬겠지, 했는데 다음 해 전도연은 ‘멋진 하루’( 김희수 감독, 2008)에 출연한다. 소품이었지만, 뜬금없이 헤어진 애인 하정우에게 몇 년 전에 꿔준 돈을 받으려는, 상심한 2000년대 여성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이어 ‘밀양’만큼이나 여주인공의 감정 진폭이 크고, 노출 수위도 높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에 보란 듯이 출연해 온몸에 시너를 뿌리고 고급 샹들리에에 목을 매고 분신하는 2000년대 한국 여성의 기괴한 지옥도를 표현해낸다.

    어찌 보면 전도연은 무섭다. 저러다가는 하얗게 타버릴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모텔 종업원으로 출연해 그녀가 나오는 신에 잠깐 얼굴을 내민 적이 있다. 전도연 일행을 방으로 안내하다가 그녀가 하는 말을 엿듣고 경찰에 신고하는 역이었는데, 만약 지금의 전도연이 등장하는 신에 출연하라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도저히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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