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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권태기가 찾아오면 분쟁을 일으켜라

② 연인관계 속 정치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권태기가 찾아오면 분쟁을 일으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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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자리의 역학관계

권태기가  찾아오면 분쟁을 일으켜라

식사, 선물, 이벤트 같은 고전적 방법은 연인에게 꾸준하게 잘 먹힌다.

다음은 심화 단계다. 두 사람이 급속하게 가까워지면서 스킨십도 이뤄지는 단계이자 만족도가 제일 높은 단계이기도 하다. 이때는 그냥 만나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한 지지도가 쑥쑥 오른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방심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럴 때 ‘연애에는 경쟁자가 따른다’는 점을 상기하자.

경쟁자를 물리쳐야 한다는 점에서 연애와 선거는 닮은꼴이다. ‘내 애인에게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공허한 주장이다. 그 사람은 과거에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품고 있을 수 있다. 그건 본인 외엔 모르는 일이다. 연예인 아무개 또는 이상형 아무개라는 형태로 포장된 그것. 여러분은 그 아무개와 경쟁 중이다.

상대방이 누군가를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분개하게 된다. 연애는 자주 자신 속의 분노와 싸우는 과정이 되어버리곤 한다. 경쟁자가 신경 쓰이면 자신의 매력 지수를 높이는 데 열중하는 게 좋다. 그런 상황을 스트레스로 생각하지 말고 즐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쟁자가 없는 연애, 재미없다.

심화 단계에서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선물과 이벤트다. 무슨 무슨 ‘데이(day)’에 인상적인 선물이나 이벤트를 선사함으로써 마음을 전한다는 이 고전적인 방식은 꾸준하게 잘 먹힌다. 평상시 식사와 차를 함께 하는 일에 공을 들이는 것도 효과적이다. 얼마나 자주 함께 식사와 차를 하는지는 친밀도의 중요한 척도다. 많이 먹여야 관계가 부드러워진다. 그런 점에서 연애는 매수다.



선거 현장에서도 금품과 향응 제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은근하고도 뿌리치기 어려운 힘 때문이다. 일단 얻어먹고 나면 다른 사람을 찍을 때 망설여진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징벌적 벌금을 매기는 동시에 고발한 자에게 파격적인 포상을 하는 것이다. 연애에서도 오랫동안 밥을 함께 먹은 사람을 배신하기는 쉽지 않다. 식사 자리에서 웃고 떠들었던 추억의 강렬함,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현명한 강적은 선물이나 향응을 처음부터 거절한다. 일종의 본능적 방어행위인 셈이다. 일단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거나 선물을 받아들였다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한 번, 두 번 우연을 가장해 밥을 같이 먹고 선물을 주고받다 어느새 연인 사이가 된다.

연애와 선거운동에 차이점이 있다면 연애의 경우에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애는 이처럼 불법선거다. 그래서 더 짜릿한지 모르겠지만 불법선거, 연애를 할 때는 맘껏 저지르자. 물론 도가 지나치면 가난을 불러온다.

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방법도 알아둬야 한다. 물량 공세를 펼칠 자신이 없다면, 가치로 포장하길 권한다. 스토리가 담긴 무엇이, 스토리가 담긴 어디가 비용 대비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머리 품이라도 부지런히 팔라는 뜻이다. ‘더 연구하세요!’

국제정치학으로 본 ‘권태’

깨진 연애의 대부분은 권태를 극복하지 못해서다. 사실, 이별보다 더 힘든 것이 권태의 극복이다. 연애의 최대 난제라고 할 만하다. 그나마 결혼한 이후에는 권태기가 와도 결별을 막아줄 수 있는 완충장치가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관계이고 이혼이라는 번거롭고도 야멸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도 억제 요인이다. 그러나 연애는 다르다. 권태를 쉽게 이기지 못하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헤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권태를 극복할 것인가. 국제정치학 이론이 이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다. 첫 번째 기술은 긴장 고조(raise of tension), 두 번째 기술은 국면 전환(change of pace), 세 번째 기술은 긴장 완화(detente)다.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킨 다음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극적인 국면 전환을 꾀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식이다. 국제관계에서 외교적 분쟁을 해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것, 연애에도 의외로 잘 듣는다.

심화 단계를 거치고 나면 연인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진다. 알 것 다 알고 단점까지 완전정복한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권태를 촉진한다. 달달했던 상대방의 매력 요인이 일상이 되면서 지루하기까지 한 상황, 쉽게 깨기 어렵다.

이럴 때는 할 수 없다. 상대방의 가장 못마땅한 그것을 의도적으로 ‘까야’ 한다. 느닷없는 춘계 대공세에 상대방이 당황할 것이다. 한 개그 프로그램의 명언, ‘선생님? 마이 당황하셨어요?’ 바로 그거다.

의도적으로 긴장 수위를 높이면 쌍방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집중도도 높아진다. 상대방이 반격에 나서면 수치는 더 높아진다. 긍정적 신호다. 단, 너무 나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나중에 수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적정선을 잠정적으로 정해두고 일을 시작하는 편을 권장한다.

긴장 고조 국면을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너무 빨리 끝내서도, 너무 길게 끌어서도 안 된다. 안타깝지만 그 시간은 나도 모른다. 사안별로, 쌍방의 심리 상태를 고려해, 그때그때 스스로 판단을 내려 결정해야 한다. 출구 타이밍을 잘 잡는 건 사실 정치 고수에게도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다. 이건 뭐, ‘알아서 하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음, 국면 전환. 이것은 극적일 때 효과가 배가된다. 류현진의 빠른 직구 뒤 느린 변화구처럼 ‘들었다 놨다’ 해야 한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극적 반전. 화끈한 양보. 이를 통해 여러분은 권태를 극복할 변곡점에 이른다. 상대방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잦으면 역효과가 난다.

마지막으로 긴장 완화. 쌍방이 평온한 상태로 접게 들게 하는 것이다. 쉬운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특히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도록 처리를 잘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남성들이 이 부분에 아주 취약하다. 더 쓰다듬어줘야 할 때 ‘이제 됐지?’ 하는 식으로 손을 놓아버린다.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를 일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충분히 다독여줘야 고양이는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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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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