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호

“국가안보 관련된 일이면 직위 안 가리고 맡겠다”

김병관 전 국방장관 내정자 사퇴 후 첫 심경고백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3-08-21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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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내가 한 일…남 탓할 것 없다
    • 지명 철회 부탁하자 ‘대통령 힘들게 한다’며 거절
    • 김장수 안보실장 몇 번 만났지만 구명 요청 안 했다
    • 전작권 전환 연기하고 연합사 존속해야
    “국가안보 관련된 일이면 직위 안 가리고 맡겠다”
    김병관(65) 씨가 국방부 장관 후보에서 물러난 지 4개월 만에 입을 열었다. 인터뷰에서 김 씨는 “명예에 손상을 입었지만 다 내가 한 일이니 남 탓할 것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엘리트 군인이었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다가 반 년 만에 그만뒀다. 이듬해 육군사관학교에 수석 입학해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군 생활은 대체로 평탄했다. 부하들은 그를 전사(戰史)에 밝고 전술전략에 능통한 영민한 지휘관으로 기억했다. 많은 사람의 예상대로 대장에 오른 그는 1군사령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 요직을 지냈다. 최고위직인 참모총장은 못 했지만 그만하면 성공한 군인의 전형이라 할 만했다.

    국방부 장관 낙마는 성공한 군인의 명예를 짓밟았다. 가족이 입은 상처도 컸다. 그의 부인은 “(장관 지명 후 사퇴까지의) 40일간이 평생 살아온 기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부부는 큰아들 집으로 피신했으나 언론의 집요한 취재 공세를 피할 수 없었다. 만삭의 몸으로 카메라 플래시를 받은 그의 며느리는 미숙아 출산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고통을 겪었다.

    예비역들의 투서

    군 고위직 출신의 촉망받던 안보 전략가가 한순간에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한 데는 언론의 집중포화가 큰 구실을 했다. 공직자 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그토록 많은 의혹이 여러 매체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비리 의혹 중 일부는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니었다. 자질이나 능력 검증과는 거리가 먼 사소한 시비도 있었고 오해에서 빚어진 엉뚱한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감정을 자극한 도덕성, 자질 시비는 끝내 그를 주저앉혔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채 자진사퇴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군 안팎에선 그의 낙마와 관련해 음모론이 나돌았다. 특정 군 인맥의 ‘공작’이 있었다는 소문이었다. 일부 언론은 이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있나요.

    “그런 건 사퇴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다 내려놓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좀 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요. 하지만 미움이 있었으니 그랬겠지, 하고 넘겨버렸습니다.”

    노란 셔츠를 입은 그에게서 관록이 주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청문회를 전후해 언론과 야당에서 제기한 그의 비리 의혹은 20건이 넘는다.

    ▼ 다 끝난 일을 두고 새삼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는 없겠지요. 다만 사퇴 후 처음 언론에 등장하는 것이니만큼 한 번쯤 정리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끝없이 의혹이 제기됐지요. 자고 나면 또 새로운 것이 나오고. 의혹이 20여 건이나 제기된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 그게 반대논리의 핵심이었어요.”

    ▼ 핵심 쟁점만 짚어보지요. 장관 후보자에 대해 그토록 엄청난 양의 의혹거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 건 드문 일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봅니까.

    “내가 직접 그 원인을 조사한 적은 없습니다.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를 종합하면 예비역들이 야당 의원들한테 투서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어떤 의원이 ‘군대생활을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많은 불평이 쏟아지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한테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수십 만 예비역, 현역 장교 중 일부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개인 견해 아니겠느냐’고.”

    ▼ 예비역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을까요.

    “증거가 확실치 않아 그렇게 말할 순 없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일부 예비역이 그렇게 한 것 같아요.”

    ▼ 장관 자리 경쟁 때문에 특정 세력이 움직인 건지, 아니면 개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때가 되니까 움직인 건지….

    “장관 후보가 안 됐다면 아무리 불만을 가졌더라도 안 터뜨렸겠지요. 개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장관 후보에서 무조건 떨어뜨리겠다고 나선 사람들 같아요. 그리고 군내 정보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이 왜곡돼 언론에 나오더라고요. 어떤 것은 기무사 자료로, 어떤 것은 헌병 자료로 보이더군요.”

    “파워팩 로비 안 했다”

    ▼ 이미지를 가장 안 좋게 한 게 유비엠텍이라는 무기 중개업체 고문을 지낸 일이지요?

    “그게 결정적이었죠.”

    그가 유비엠텍 비상근 고문을 지낸 시기는 2010년 7월~ 2012년 6월이다. 유비엠텍은 독일 MTU사의 엔진을 국내에 독점 공급하는 회사다. MTU사 엔진은 세계 최고의 품질로 정평이 나 있다. 많은 나라가 자국 무기에 MTU사 엔진을 장착한다. 한국 육군과 해군에도 MTU사 엔진으로 움직이는 무기가 적지 않다. 지난해 방위사업청은 K-2 전차에 국산 파워팩(엔진+변속기)을 장착한다는 계획을 일부 수정해 MTU사 파워팩을 제한적으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김 씨의 로비 때문이라는 게 언론이 제기한 의혹이다.

    그는 이 같은 의혹을 일축한다. 자신이 유비엠텍에 입사한 것은 K-2 전차와 관련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2010년 유비엠텍에 입사하기 몇 개월 전에 K-2 전차 파워팩을 국산 제품으로 조달한다는 방침이 정해졌기 때문에 영향을 끼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둘째, 지난해 방사청이 MTU사 파워팩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유비엠텍에서 퇴사한 지 6개월 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유비엠텍에 들어갔으며 무슨 일을 한 걸까. 그에 따르면 당시 유비엠텍은 MTU사 엔진의 국내 생산을 추진 중이었다. 합작생산 공장 설립이었다.

    “MTU사 엔진은 세계 최고입니다. 합작회사를 국내에 세우면 기술도 이전받고 부품 정비 서비스도 원활해지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합작회사 설립에 대한 조언만 한다는 조건으로 입사한 거죠. 그리고 유비엠텍은 무기중개 회사라기보다 도입한 무기나 장비를 정비해주는 일로 돈 버는 회사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11년 초 MTU사가 영국 롤스로이스와 합병되면서 일이 틀어졌다. 새 이사진은 한국 내 합작생산 공장 설립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합작회사 설립이 물 건너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퇴사했다는 것이다.

    ▼ 4성 장군 출신이 무기 계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에 종사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 있었지요. 전례가 있나요.

    “없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가 안 됐을 뿐이죠.”

    ▼ 하여간 파워팩 로비를 한 적은 없다는 거죠?

    “내가 입사하기 전에 이미 국산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나중에 국산제품에 문제가 생기니 방침이 바뀐 거죠. 앞으로도 파워팩 국산화가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MTU사 기술이 워낙 독보적이거든요. 따라갈 수가 없어요.”

    4성 장군 출신의 도덕성

    ▼ 장기적으로는 국산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려울 거예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봐요.”

    ▼ 실효성이 없다?

    “예. 지금 국산화를 추진하는 회사에선 펄쩍 뛰겠지만요.”

    독일 수준의 엔진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설사 만들어내도 투자비를 회수할 만한 수요가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 제기된 의혹 중 스스로 인정하는 게 있다면.

    “음….”

    그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답변했다.

    “글쎄요. 여러 차례 위장전입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다음 2사단장 시절 위문금을 통장에 넣어두고 장병 복지에 사용하도록 했는데 규정대로 처리하지 못한 점을 후회합니다. 그밖에는 몰아치기 위해 제기한 의혹이 많아….”

    ▼ 큰 범주로 묶어보면 부동산, 재산 증여, 주식 등이지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 된다고 봐요. 증여세 다 냈고요.”

    ▼ 그런데 자식들에게 집을 증여하고는 다시 전세계약을 해 자식들은 그 돈으로 다른 집에 전세 들고… 뭐가 그렇게 복잡합니까.

    “청문회 안 나가는 사람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청문회에 나가니 시비가 생긴 거지. 애들이 결혼해 집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되니 그랬던 겁니다. 우리 부부가 계속 이 집(서울 노량진 우성아파트)에 살아야 하니 자식들에게 전세를 든 것으로 해 (자식들이) 그 돈으로 집을 구하게 한 겁니다. 그걸 두고 ‘교묘하다’고…. 법적으로는 못 따지니 ‘장군이 그럴 수 있느냐’고….”

    ▼ 교묘하다는 건 법 위반은 아니라는 얘긴가요.

    “법에 안 걸리게 얄밉게 했다는 거지요.”

    ▼ 2000년 사들인 서초동 반포아파트는 한 번도 거주한 적이 없어 투기 의혹이 제기됐지요.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던 때인데 집이 좁아 들어가 살 수 없었어요. 그 집을 전세 내놓고 그 돈으로 계속 전셋집을 옮겨 다녔지요. 그러다 빚 좀 내서 이 집을 산 겁니다. 애들한테 증여를 했으니 이제 반포아파트 한 채만 남았죠.”

    일부 언론은 그가 반포아파트를 팔아 차익 8억 원을 챙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나중에 누가 얘기해줘서 알았다. 보도 당시 알았다면 제소했을 것”이라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 나올 일 했으니 내 책임”

    “국가안보 관련된 일이면 직위 안 가리고 맡겠다”

    김병관 씨의 서재에는 전사와 전술·전략에 관한 책이 많다.

    ▼ 마지막에 결정타가 된 것이 KMDC 주식 아닙니까. 청와대에서도 그게 터지자 힘들다고 판단했다는데요.

    “(갖가지 의혹 제기로) 달궈진 상태에서 탁 터지니까 그랬던 같아요.”

    ▼ KMDC 회사 자체는 문제가 없나요.

    “지금은 다 거덜 났죠.”

    ▼ 주식 살 때 그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잘 몰랐어요. 자원 개발하는 회사인데 광구를 받았다고 하니까 잘되겠다 싶어 아는 사람들과 함께 구입한 겁니다.”

    중소업체인 KMDC는 2011년 미얀마 정부로부터 해상광구 4곳의 탐사개발권을 따내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이명박 정부 실세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이 회사 이영수 회장은 2007년 이명박 후보 대선캠프에서 활동했고 지난해엔 박근혜 후보 캠프의 외곽조직을 이끌었다. 이 회장과 김병관 씨는 남다른 친분이 있다. 이 회장은 자유총연맹 총재 특보를, 김 씨는 부총재를 지냈다. 김 씨는 이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세계종합격투기연맹 고문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엔 이 회장이 이끌었던 국민행복실천연합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 이영수 회장과 친한 사이죠? 자유총연맹도 같이 하고.

    “자유총연맹과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는 KMDC 증자에 참여해 3000만 원어치의 비상장 주식을 사들였다. 지금은 깡통주식이 됐다고 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한 푼도 못 건졌다”는 것.

    ▼ 주변에 피해자가 많겠네요.

    “다들 손해 봤겠지. 그렇지만 사기당한 건 아니지. 자기들도 수익을 기대하고 샀다가 손해 본 거니 누굴 탓할 수도 없죠.”

    그는 “청문회가 끝나고 나서 터진 문제라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위장전입이니 하는 건 전부 부인이 한 일이라고요.

    “뭐 집사람이 생각한 것도 있지만 내 판단으로 한 것도 있어요. 같이 의논해 결정한 것도 있고.”

    그는 “그런 걸 밝히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부인을 감쌌다.

    “나는 군생활 하면서 돈 벌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기회가 되면 노후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 이익을 가장 많이 본 게 일산 땅 140평(462㎡)입니다. 30배 뛴 상태에서 팔았으니까.”

    ▼ 사람들은 4성 장군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 기준에 비춰보면 어떻습니까.

    “안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겠지요. 그것보다도 현재의 기준으로 옛날 일을 재단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아요. 변명 같지만요. 어쨌든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말이 나올 일을 했으니 내 책임인 거죠.”

    “대통령 전화 없었다”

    “국가안보 관련된 일이면 직위 안 가리고 맡겠다”

    지난 3월 국회 청문회장에 앉은 김병관 씨.

    ▼ 사퇴 당시 청와대 측과 교감이 있었나요.

    “그것 없이 물러났겠어요? 개인 때문에 정부조직법 통과가 늦춰지고 국회와의 관계가 틀어져서야 되겠느냐고 하더군요.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알고 싶었는데 그건 말해주지 않고. 그래서 이 정도로 틀어졌다면 들어가 일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자진사퇴는 안 하려 했습니다. 그만큼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후보 지명 철회를 해달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대통령을 너무 힘들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생각한 끝에 사퇴하기로 결심한 거죠.”

    ▼ 이후 대통령이 따로 전화한 적은 없나요.

    “대통령과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대통령에게 직접 여쭤보는 것도 적절치 않은 것 같았어요. 사퇴 이후엔 대통령과 관계가 없으니 전화 올 이유도 없죠.”

    ▼ 어차피 그런 식으로 물러날 거라면 다소 억울하더라도 좀 더 빨리 물러나는 게 모양이 좋지 않았을까요.

    “나 스스로 사퇴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잘못을 다 인정하는 꼴이 되니. 차라리 잘라주기를 바랐지. 위장전입이나 주식 문제가 있긴 해도 물러나야 할 만큼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 결정적 하자는 아니다?

    “부적격 사유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 낙마 과정에 군 출신 청와대 고위인사와 이모 전 대장 측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뭐 그런 얘기가 인터넷에 돌던데, 잘 모르겠습니다.”

    ▼ 주변에서 들은 얘기가 있을 텐데요.

    “들었지만,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게 아니니까.”

    ▼ 막판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한테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얘기도 들리던데요.

    “대놓고 부탁하거나 거절당한 적은 없어요. 두어 번 찾아가 뵙긴 했죠. 청문회 답변을 내 맘대로 할 순 없으니 내용을 조율하려고요. 얘기가 잘됐습니다.”

    ▼ 이모 전 대장이 먼저 장관 후보로 거론됐다는 얘기도 있었지요.

    “그런 얘길 듣긴 했습니다만, 사실인지는 모르겠어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 김관진 국방장관과는 사이가 어떤가요. 결과적으로 김 장관이 덕을 본 것 아닌가요(웃음)?

    “김 장관은 많이 도와주려 했지요. 서너 번 같이 식사하며 대화도 많이 나눴고요. 상황이 그렇게 되니 청와대에서도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거죠.”

    ▼ 장관 후보로 발탁된 배경이 뭔가요.

    “잘 모릅니다. 어느 날 당선인 측에서 접견하자고 연락해와 만났죠.”

    ▼ 그게 언제죠?

    “발표 나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전작권과 주권은 무관”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은 없다고 했다. 그가 현 여권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전역 이듬해인 2009년 12월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회 국방분과위원장을 맡으면서다. 지난해 5월엔 예비역 장성과 영관장교들을 모아 국방안보 정책을 연구하는 한가람포럼을 만들었다. 또한 자유총연맹, 한미안보연구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등 안보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다. 이어 대선캠프에 참여해 대외협력특보를 맡는 한편 국민행동특별본부, 상생코리아, 코리아네트워크 등의 대선 조직에 몸담았다.

    ▼ 김장수 안보실장보다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가깝다는 게 세간의 평가죠? 정책이나 인맥으로 봐서.

    “뭐 정책이 특별히 다른 건 없었습니다. 어느 걸 강조하느냐의 차이지.”

    ▼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해선 김 실장과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나요. 남 원장과는 같고.

    “그건 그렇죠. 나는 (전환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연합사도 존속해야 하고. 남재준 원장 견해도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미의 군사협력체제가 무너지나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지요. 한미동맹은 계속되겠지만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대처가 다를 수밖에 없죠. 현 체제에서는 미군 연합사령관이 전쟁 수행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전쟁에서 지면 곧 미국의 실패죠. 그런데 연합사가 해체되면 미군은 도와주는 처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요. 미국의 의지가 반영될 가능성이 적어요. 자기들 책임이 아니니까. 이게 결정적 문제예요. 지금은 북한이 일을 벌이고 싶어도 미국과 붙어야 하니 함부로 못 움직이죠. 그러나 한국군이 작전권을 가지면 진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연합사는 도발이나 전쟁을 억제하는 구실을 하는 겁니다.”

    ▼ 전작권 전환 찬성론자들이 내세우는 군사주권 명분보다 실리가 중요하다는 얘긴가요.

    “주권과는 상관없어요. 연합사 체제에서도 한미 간 의견이 다를 경우 한국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군 지휘부는 연합사령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요. 연합작전을 하더라도 주권 범위 내에서 하는 거지요.”

    ▼ 전시엔 연합사령관이 작전권을 행사하는데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부담스럽긴 하지만 협정을 깨면 돼요. 연합작전은 우리가 원해서 하는 거지 미국에 의해 끌려가는 게 아니거든요.”

    ▼ 미군에 계속 의존하다보니 한국군이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반론도 있죠. 아직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치를 능력이 안 된다고 보나요.

    “그건 우리가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미군 때문은 아니에요.”

    ▼ 정부의 책임입니까, 군의 책임입니까.

    “양쪽 다 잘못이 있죠. 작전지휘권과는 관계없는 문제예요. 우리가 어떤 의지를 갖고 어떻게 전투력을 키우느냐가 중요하지.”

    ▼ 우리 군의 취약점을 든다면.

    “장비와 물자를 많이 보강해야 합니다. 탄약 비축량도 늘려야 하고. 더 중요한 건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인데 그것이 약한 게 사실이에요. 설사 잘 갖췄다 해도 한미연합체제는 유지해야 합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자주적으로 전쟁을 치른다는 명분은 중요하지 않아요. 한미연합체제를 굳건히 해 싸움이 안 나도록 하는 게 가장 좋죠.”

    ▼ 그런데 미국 정부가 전작권 전환에 합의한 데는 그들 나름대로 계산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나요.

    “연합사령관 출신들은 대부분 우려해요. 미 국방부에는 전작권 전환 연기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지만요.”

    ▼ 북한 급변사태 시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가능성이 있죠. 현 연합체제에서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까요.

    “국제적 동의 없이 한국군이 북진하는 건 불가능해요. 침략이 되기 때문에.”

    ▼ 우리로선 침략이 아니라 수복(收復) 아닌가요.

    “국제적으로 보면 제3국으로 들어가는 거니 침공이죠. 미국이나 중국이 방해하면 불가능하고. 국제적 합의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어요.”

    ▼ 일부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북진 무력통일은 허망한 얘기네요.

    “시작도 어렵고 성공도 불가능하죠.”

    작고 효율적인 군대로

    그는 강군(强軍)의 요건으로 국방비 증액과 효율적인 감군을 주장했다.

    “제대로 싸우려면 우선 국방비를 늘려야 합니다. 우리 군은 작전 효율성 면에서 문제가 많아 전쟁이 나면 인명피해가 클 수밖에 없어요. 적절한 투자로 효율적인 군대를 만들어놓으면 피해를 4분의 1로 줄일 수 있어요. 지금 우리 군을 보면 병사들이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상태에서 작전에 투입됩니다. 분대장, 소대장은 병사를 훈련할 능력이 안 됩니다. 간부 수를 늘리고 교육훈련을 강화해야 해요. 또 초급장교 복무기간을 늘려 임무를 감당할 능력을 갖추게 해야 합니다. 훈련은 할지 몰라도 전쟁은 못할 실력이죠. 그런 다음 취사, 청소, 건물관리 등 비전투 분야를 민간에 아웃소싱해야죠. 그러면 전체 병력은 줄지만 전투력은 증강됩니다. 병역기간 단축도 가능해지고요. 작고 효율적인 군대가 되는 거죠.”

    그가 생각하는 강군 건설의 두 번째 조건은 합리적 인사다.

    “진급 체계가 바로잡혀야 합니다. 실력을 갖춘 군인이 진급하고 중용되는 풍토가 조성돼야지, 인사가 줄서기나 인맥에 좌우돼선 안 됩니다. 가장 좋은 제도가 다면평가입니다. 부하와 동료가 가장 정확히 평가한다고 봐요. 그들의 평가를 윗사람 평가와 합치면 그런대로 합리적 인사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 다면평가가 뜻은 좋지만 부작용이 있잖아요. 상사가 소신껏 못하고 부하직원 눈치 보거나 인기영합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지요.

    “그런 부작용 때문에 없앤 건데, 그걸 대신할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 명예회복 차원에서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거나 준비하는 일이 있습니까.

    “명예에 손상을 입은 건 사실이지만, 다 내가 한 일 때문에 빚어진 거니 남 탓할 수도 없지요. 다만 공직에 나서는 사람에 대해 좀 더 다양하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풍토가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국가안보와 관련한 일을 요청받으면 명예회복 차원이 아니라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직위나 직책 안 가리고 맡을 생각입니다.”

    안보 전문가인 그가 과연 박근혜 정부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을지 궁금하다. 그는 “먼저 북한의 위협을 잘 관리해야 하고, 다음으로 통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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