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호

댈러웨이 부인과 함께하는 런던 장면들

  •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3-08-22 12: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댈러웨이 부인과 함께하는 런던 장면들

    댈러웨이 부인 <br>버지니아 울프, 최애리 옮김, 열린책들

    2013년 7월 25일 오전 11시,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피카딜리 서커스를 거쳐 트라팔가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 호선형의 거리 양편에 펼쳐진 상점들 위로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을 알리는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런던의 명물 빨간 2층 버스와 시티투어 오픈버스들이 줄을 지어 펄럭이는 깃발 아래를 지나가고, 그 아래 인도에는 아침 나절임에도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여행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나는 열 시간 전 뉴욕을 떠나 밤새 대서양을 건너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고, 하이드 파크 옆 숙소에 짐을 부려놓자마자 거리로 튀어나온 참이다.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이번에는 작정하고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런던의 공원과 아침 거리를 걸어보리라 생각했었다, 댈러웨이 부인처럼.

    꽃은 자기가 사오겠노라고 댈러웨이 부인은 말했다. (…)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 열린 창문 앞에 서 있노라면 무엇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잠시 서서 피카딜리를 지나가는 버스들을 바라보았다. (…) 차를 타고 공원을 가로질러 집에 가던 일, 한번은 서펜타인 호수에 1실링 동전을 던진 것도 기억났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기억은 있는 법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지금 여기 이것, 그녀 앞에 있는 것이었다.

    -‘댈러웨이 부인’ 중에서

    거리, 거리들



    버지니아 울프가 1925년에 발표한 ‘댈러웨이 부인’은 1923년 6월 어느 하루 저녁 파티를 준비하려는 댈러웨이 부인과 같은 날 그녀의 파티가 열리는 시각, 전쟁 후유증으로 환각에 사로잡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셉티머스라는 낯모르는 이웃 청년, 이 두 존재의 서로 다른 하루 행로를 런던의 거리와 공원, 빅 벤의 종소리를 통해 재현한다. 댈러웨이 부인이 처한 현재의 거리와 공원은 과거 어느 한때로 이어지는 시간과 공간의 통로들이다. 그녀가 거리를 걸어가고, 신호등 앞에 멈춰 서고, 공원을 가로지르고, 벤치에 앉고, 공원을 나가는 사이 현재와 과거의 장면들-에피소드들이 영화의 필름처럼 돌아간다.

    우리는 참 바보라니까, 그녀는 빅토리아 스트리트를 건너며 생각했다. 왜 그렇게 삶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삶을 그렇게 보는지, 삶을 꿈꾸고 자기 둘레에 쌓아올렸다가는 뒤엎어 버리고 매 순간 새로 창조하는지 (…) 지금, 이 시간에도, 점잖은 노부인들은 자동차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간다. 점원들은 진열창에서 인조 보석이며 다이아몬드, 미국인들을 유혹하느라 18세기 풍으로 세팅한 연푸른 바다 빛깔 브로치 같은 것들을 진열하느라 바쁘다. (…)

    “난 런던 거리를 걷는 게 좋아요.” 댈러웨이 부인이 말했다.

    -‘댈러웨이 부인’ 중에서

    이 소설은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즈’(1922), 프랑스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8)와 함께 ‘의식의 흐름’ 기법을 구사한 20세기 모더니즘 소설로 꼽힌다.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란 ‘개인의 의식 속에서 감각, 상념, 기억, 연상 등이 계속적으로 흐르는 자유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생각이 합리화하기 전의 의식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심리학의 원리’(1892)에 처음 사용하면서 파급된 심리학 용어로 문학, 특히 인간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고 다루는 소설 장르와 관계가 깊다.

    의식의 흐름이 소설과 접목되면, 거대한 회상의 메커니즘을 통해, 마치 강의 물줄기가 바다를 향해 흘러가듯이 현재와 과거,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이며 장면이 창출되고 서사가 진행된다. 의식 속에 출몰하는 생각들을 서사로 이끌어가려면 장치가 필요한데, 바로 인물을 거리로 내보내는 것이다.

    ‘댈러웨이 부인’과 의식의 흐름 기법 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의 경우,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으로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하루 더블린 거리 헤매기’다.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이 저녁 파티에 쓸 꽃을 사기 위해 빅토리아 스트리트의 집을 나서서 본드 스트리트의 꽃집에 이르는 과정의 소설 전반부는 런던 템스 강 서쪽 웨스트민스터 지역의 거리 순례기라고 할 정도로 거리명들이 수시로 출몰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더블린이나 런던에는 ‘블룸을 따라 더블린 걷기’‘댈러웨이 부인을 따라 런던 걷기’ 같은 프로그램이 문학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공원, 공원들

    2013년 7월 27일 밤 아홉 시, 런던 블룸즈버리 고든스퀘어. 굵은 빗줄기가 어둠을 뚫고 거리에 쏟아지고 있다. 비바람에 맞서 우산 손잡이를 꽉 그러쥐고 공원 입구 안내 푯대와 마주하고 섰다. 거기, 익숙한 얼굴의 흑백사진이 빗줄기에 젖은 채 어둠 속을 향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오전 10시, 나는 다시 이곳을 찾아 그 얼굴과 마주하고 있다. “고든스퀘어 가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남녀가 그곳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담배를 피우는 중에 잠시 들고 있는, 도도한 듯 예민해 보이는 여인은 버지니아 울프다. 그녀가 카메라 렌즈에 잡힌 것은 1923년 ‘시간들 The Hours’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다. 이 ‘시간들’은 ‘집에서’‘파티’라는 제목을 거쳐 2년 뒤 ‘댈러웨이 부인’으로 출간된다. 그녀가 앉아 있는 이 고든스퀘어 가든은 그녀가 살던 집(고든스퀘어 빌딩 46번지) 앞의 아담하고 조용한 공원이다.

    런던 체류 닷새 중 이틀을 이 고든스퀘어를 배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국주의 왕조국가 영국을 소설을 통해 비판한 지성인,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인권을 주창한 페미니즘의 선봉자로 대변되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쓰기란, 정상과 비정상(신경증) 두 세계를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오가야 했던 쐐기풀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철저히 ‘자기만의 작품’이 아니던가. 하긴, 구원의 글쓰기가 아닌 작품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마시며 공원 저편 블룸즈버리 그룹의 주축인 버지니아 울프와 경제학자 케인스가 살았고, EM 포스터가 드나들었던 고든스퀘어 빌딩 46, 50, 51번지를 차례로 건너다본다. 햇살이 일으킨 현기증 때문인지 울프가 창문으로 내다본다는 착각에 빠진다. 환청인가. 멀리 빅 벤의 시종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신호라도 되는 양 나는 고든스퀘어 파크의 문을 나선다. 어디로 갈 것인가. 하이드 파크? 아니면 리전트 파크!



    그는 발길을 돌렸다. (…) 어디로 간다지? 어디면 어때. 그럼 리전트 파크 쪽으로 좀 올라가 볼까. (…) 찬란한 아침이기도 했다. 완벽한 심장의 고동과도 같이, 생동감이 길거리를 뚫고 지나갔다. (…) 어렸을 땐 곧잘 리전트 파크를 거닐곤 했었다. -이상한 일이야. 어린 시절 생각이 자꾸만 나다니. 아마 클라리사를 만났기 때문이겠지. 여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과거에 살거든, 하고 그는 생각했다. 여자들은 특정한 장소에 애착을 갖지. (…) 리전트 파크는 환히 기억하고 있었다. 곧장 가는 긴 산책로, 왼쪽에는 풍선을 사던 작은 집, 어딘가 명문이 새겨져 있던 기묘한 조각상. 그는 빈자리가 있나 둘러보았다.

    -‘댈러웨이 부인’ 중에서

    소리, 소리들

    이 소설에서 공원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거리들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이다. 소설의 출발점인 빅토리아 거리는 버킹엄 궁과 웨스트민스터와 인접한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이어진다. 댈러웨이 부인과 더불어 소설의 또 다른 중심인물인 셉티머스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작가가 유년기를 보낸 하이드 파크 북쪽의 리젠트 파크다.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를 차례대로 만나고 스치도록 등장시킨 피터 월시는 빅토리아 거리에서 리젠트 파크까지 이동한다. 이 피터라는 인물은 30년 전 그녀가 리처드 댈러웨이와 결혼하기 전의 첫사랑이다. 모험심이 강하고 도발적인 캐릭터인 이 인물이 인도에서 잠시 돌아와 댈러웨이 부인, 아니 클라리사를 방문하고 나오는 과정에서 소설의 회상 영역은 객관적으로 확장되면서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다.

    거리와 공원에서 줄기차게 진행되는 여러 인물의 상념을, 곧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하나의 주제로 바로잡아주는 장치가 필요한데, 버지니아 울프가 고안해낸 방법은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다. 정시, 15분, 30분, 45분에 울리는 이 종소리는 끝없는 과거 회상에 빠진 인물들을 현실로 데려오는 구실을 한다. 런던 사람들이 여왕을 섬기듯 모두 이 종소리 아래 살아가고 있는 듯, 소설의 시간과 공간을 종소리가 지배한다.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라는 두 중심 인물 사이사이 피터 월시, 루크레치아(셉티머스의 아내)는 물론 꽃집 여자, 익명의 거리 행인들까지 각자의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각자의 음색과 음역을 표출하면서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입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교향악처럼 다성적인 울림이 절묘하다. 눈으로 상상으로 런던 곳곳을 여행하고 싶다면, 댈러웨이 부인과 함께하는 소설 여행을 권한다.

    웨스트민스터에 살다보면-얼마나 되었지? 20년도 넘었어-이렇게 차들이 붐비는 한복판에서도, 또는 한밤중에 깨어서도, 간혹 특별한 정적 내지는 엄숙함을 느끼게 되지. (…)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정지의 순간, 빅 벤이 시종(時鐘)을 치기 직전의(독감 때문에 그녀의 심장이 약해져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조마조마함. 아, 마침 종이 치네! 종소리가 퍼져나간다. 음악적인 예종(豫鐘)이 울리고, 이어서 시종이 친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종소리가 겹겹이 묵직한 원을 그리며 공중으로 흩어져간다.

    -‘댈러웨이 부인’ 중에서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